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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견실한 제작지원, 독립영화의 지평 넓힌다, 모은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인터뷰

지난 4월, 서울독립영화제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모은영 전 프로그래머가 선임됐다. 2017년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담당했던 모은영 집행위원장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외에도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서울환경영화제, 인디포럼 등 여러 기관 및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역임하며 다양한 프로그램 및 행사를 기획해왔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집행위원직을 맡아 오랜 기간 서독제와 인연을 이어오기도 했다. 지난 3월, 위원장 선임 소식이 발표된 후로 모은영 집행위원장은 “지금처럼 독립영화 생태계가 어려울수록 독립영화의 범주와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음”(<씨네21> 1500호)을 짚은 바 있다. 4억원의 예산이 복구된 후, 올해 51주년을 맞이한 서독제는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해외초청, 제작지원 등 다방면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영화제를 앞두고 바쁘게 준비 중이던 모은영 집행위원장에게 대화를 청했다.

- 오랜 기간 프로그래머로 활동해왔다. 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을 듯한데.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프로그래머 업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동안 존폐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서독제 상황이 어렵지 않았나. 나로 인해 무언가가 크게 바뀐다기보다는 새 인력이 들어온 것을 계기로 작게나마 돌파구가 생기길 바란 결정이다. 많은 도움을 받은 덕에 예산이 4억원까지 복원됐고 그에 맞춰 축소할 계획이던 사업들을 다시 복구하고 확장시키느라 7~9월을 정말 바쁘게 보냈다. 그간 어려운 살림에 정규 인력을 마련해두고 영화제를 꾸려온 것이 대단하다.

- 서독제 집행위원장직에 역임한 지 근 8개월이 지났다. 프로그래머로서 영화제를 꾸릴 때와 다르다고 느낀 점도 있나.

아직 큰 차이는 못 느꼈고, 현재는 서독제의 조직문화와 방향성에 적응하는 기간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어떻게 오자마자 그러겠나. 우선 영화제의 현상 유지에 힘쓰되, 지금 영화계가 어려우니 영화제 내부적으로 한국 및 해외 섹션 모두 확장할 수 있는 시도를 앞으로 해볼 계획이다.

- 올해 슬로건은 ‘영화가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이다. 어느 때보다 관객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읽힌다.

지난해 서독제가 어려울 때 영화인들의 도움도 컸지만 관객의 지지 역시 엄청났다. 결국 영화제는 영화와 창작자, 관객이 함께한다는 걸 다시금 체감했고, 관객과 계속 동행하기 위해 올해는 관객을 더 호명하자고 내부적으로 결론내렸다. 의도치 않게 영화제 프로그램도 영화, 극장에 관한 영화가 많다. <극장의 시간들><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와 해외초청작인 <누벨바그><네 멋대로 해라><사무라이 타임 슬리퍼>등 전부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관에 관한 갈망 혹은 의제가 드러난 것이 아닌지 추측한다. 관객을 위한 굿즈도 마련했는데, 상영작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서 가장 시적인 대사나 지문을 골라달라고 부탁해 노트로 만들었다. 대사가 쓰인 장의 옆 장은 비워둔 채 관객들이 필사 노트처럼 대사를 베껴 쓰거나 영화 티켓을 붙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 관객들에겐 나만의 관람 노트가 생기는 것이다.

- 김태양, 손구용, 이미랑, 이종수 감독이 참여한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촬영 현장까지 직접 다녀왔고 이후 올해 서독제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이미랑 감독을 우연히 만났을 때 <무관한 당신들에게>의 일부를 작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좋은 기획이라 느꼈고 이종수 감독의 촬영 현장에도 들렀을 때 서독제 개막작으로 초청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영화를 만드는 한국 감독이나 관객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과거에는 한국영화의 뿌리를 유럽 영화에서 찾고 현재는 대만이나 일본 영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왜 한국의 선배 감독들의 영화가 잘 호명되지 않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현재와 1950년대를 적절히 이어주는 작품이었다. 언니가 제작비를 후원해줬고 맡길 사람이 없어 애를 업고 촬영해야 했던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도 결국 독립영화다.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동시대 영화감독들이 과거의 영화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휘해 <미망인>의 작업 과정과 유실된 결말에 관해 새롭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연출한 김태양, 손구용, 이미랑, 이종수 감독의 작품마다 각자의 스타일이 담겨 있는 것도 재밌다.

- 올해 1805편이 출품되면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한편 ‘새로운선택’ 섹션은 장편으로 단일화해 장편에 대한 주목도를 높였다.

장편과 단편이 함께 상영되다보면 오히려 단편이 손해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 장편을 내놓는 신인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다만 고루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단편 경쟁을 한 섹션 늘리고 상도 하나 더 신설했다.

- 올해는 여러 창작 지원사업이 신설되거나 확장됐다.

이강길 감독의 뜻을 이어받는 ‘이강길 독립영화 창작지원’은 올해 감정원 감독의 <별과 모래>를 엄정한 심사를 거쳐 장편으로 올렸다. <별과 모래>는 지역영화이기도 한데, 전과 달리 이제는 쿼터를 두지 않고도 지역영화의 성과가 뚜렷하게 보여 영화제 입장에선 큰 의미가 있다. 누벨바그 대표인 김동욱 음악감독이 참여한 영화음악 지원사업이 신설됐고 음악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제작지원을 받아 올해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또 변우석 배우가 후원하는 단편 제작지원 사업 ‘SIFF X 변우석: Shorts on 2025’도 추가됐으며 사업에 선정된 단편들은 개막식 때 시상도 한다. 그 밖에도 류승완 감독이 ‘외유내강상’을 통해 창작자들에게 힘을 보탠다. 상영작 감독 사전 모임을 할 때 제작지원을 받은 감독님들이 후반 제작지원 덕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고, 서독제에 오게 됐다고 말씀하셔서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영화제의 제작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 ‘한일 창작자 간담회’, ‘일본 독립영화, NOW’ 등 일본 독립영화를 다방면으로 소개하는 포럼과 간담회가 열린다.

‘한일 창작자 간담회’, ‘일본 독립영화, NOW’ 등 일본 독립영화를 다방면으로 소개하는 포럼과 간담회가 열린다.현재 일본의 독립영화는 한국과 다른 구조를 지닌 채 자생하고 있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의 <사무라이 타임슬리퍼>같은 경우 상업적인 성공까지 이뤄냈다. 세대교체를 이뤄내고 거장 감독도 탄생한 일본영화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공유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앞으로의 포부를 전한다면.

지난해 서독제를 치르는 도중에 비상계엄이 발표됐다. 평범하게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느꼈는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나니 더 절실한 듯하다. 앞으로도 서독제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바꿔나가고자 한다. 올해 서독제에도 많이들 발걸음해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