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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레와 소통의 방정식, <오늘의 카레> 조미혜 감독

조미혜 감독은 부산에서 영화를 시작해 전주로 삶과 영화의 터전을 옮기며 여러 편의 단편을 만들었다. 부모의 재혼으로 자매가 된 동갑내기 이슬(김도은)과 이진(윤슬)이 정성 들여 만든 서로의 음식으로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되는 <오늘의 카레>는 그의 첫 장편이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 이 영화가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하는 그는 해맑고도 진중하게 위로와 사랑의 힘을 긍정한다.

- 흔치 않은 가족관계의 두 여자 이야기를 써냈다. <오늘의 카레>의 시작은 어디인가.

앞서 장편 시나리오를 쓰며 부침을 겪었다. 진솔하게 내 속에서 꺼내올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제자매는 성장한 뒤엔 위기에서 누구보다 힘이 되어주지만 어릴 땐 묘한 감정이나 질투가 있지 않나. <오늘의 카레>에서 두 자매에게 갈등이 아무렇지 않게 쌓여 있어 서로 머뭇거리며 다가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당위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혈연을 빼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했다.

- 이진이 운영하는 식당은 전주에 실제로 있는 곳이다. 영화의 메인 메뉴가 왜 카레였을까.

카레는 한때 유행하긴 했어도 자주 해먹지 않는 흔한 메뉴다. 집에서 누구나 먹던 음식이 식당에서 대접하는 음식이 되는 과정이 가장 가까운 타인에서 가깝지 않은 다른 타인에게로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과도 맞물린다고 생각했다. 실제 식당 주인은 내 친구인데 대화를 나누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그 친구가 만든 카레도 자극적이지 않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그 공간에 오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관계를 따뜻하게 쓰고 싶었다.

- 단편 <맛을 쫓는 아이>로부터 다시 음식영화로 돌아온 것 아닌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삶의 평범한 진리를 담고 싶었던 이유는.

20대 후반부터 가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었던 듯하다.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이 받아들여줄지, 혹시 부정당하지 않을지가 큰 이슈였나보다. <맛을 쫓는 아이>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그 결핍을 맛을 탐구하는 것으로 채우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니 음식영화로 회귀했다기보다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온 것에 가깝다.

- 이슬이 그린 카레를 손님들에게 대접한 날 “너무 신나요”라는 대사 다음에 모든 등장인물이 피루엣을 도는 장면에서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도 떠올랐다.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영화는 좋은 영화여도 볼 때 고통스럽다. 일본영화도, <카모메 식당>도 좋아하는데 인물의 감정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이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 그러고 싶었던 걸까. 위로를 건네는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가장 크게 바랐다.

- 전작 스타일과 관심사가 다채로워 다음 작품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궁금하다.

폭력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안고 나아가 성장하는지가 내 중요한 테마다. 어렸을 땐 사랑이 그렇게 유치해 보였는데 이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어떻게 구현될지 미지수지만 좋아하는 것과 가고자 하는 방향을 조금 깨달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