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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는 영화적 경험, <지느러미> 박세영 감독

‘통일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에선 ‘오메가’라 불리는 돌연변이들이 오염된 바다를 청소하는 노동을 전담한다. 실내 낚시터에서 일하는 미아(연예지)는 어느 날 아버지가 부탁한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는 한 오메가(고우)와 조우한다. 오메가를 관리하는 공무원 수진(김푸름)은 그런 미아를 주의 깊게 살핀다. 시체스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등에 초청됐던 박세영 감독의 SF영화 <지느러미>가 코리아 프리미어로 서울독립영화제에 상영됐다. <다섯 번째 흉추>이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 <지느러미>는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박세영 감독의 바람에서 출발했다.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경험 또한 바탕이 됐다. “할머니가 코로나19의 초기 희생자셨는데 감염에 대한 불안이 최고조일 때라 정부에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게 했다. 할머니를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했고, 그에 따른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동생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전통주의의 계승이 세대에 따라 쉽게 단절될 수 있고 또 전통적인 이별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남은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가 당시 나의 화두였다.” 미아의 아버지는 존엄성을 지키며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지만 정작 미아는 그것을 수행하고 싶지 않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지느러미>의 주요 서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지느러미고, 지느러미를 소유했거나 이를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지느러미가 썩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지느러미가 달린 ‘오메가’라는 돌연변이를 떠올렸다. 일본이 방사능 물질을 바다에 유기하는 상황으로 인해 물고기뿐만 아니라 인간 변이종도 나올 수 있다는 일각에서의 우려가 아이디어에 반영됐다.” 미아가 오메가, 수진과 각각 마주하는 실내 낚시터는 <지느러미>의 주요 장소 중 하나다. “키치하면서도 감각이 떨어지는 사장님이 최선을 다해 꾸민 듯한 공간을 찾고 싶었다. 낚시터의 미술의 60~70%는 그 공간의 실제 요소들을 그대로 활용했고 네트망 등을 이용해 공간 분리를 한 정도다. 실내 낚시터는 1990년 경제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낚시터에 갈 시간이 없는 회사원들이 건물 지하에 대리만족을 할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시간이 죽은 공간, 노스탤지어를 추한 방식으로 만드는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으로 꾸미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상업영화의 시스템 밖에서도 야망 있는 영화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박세영 감독은 이미 <누가 내 십자가를 훔쳐갔나?>를 포함해 2개의 장편을 연출하고 편집 중이다. 현재는 “피부를 피부답지 않게 찍어보고 싶다”는 목표를 지닌 채 14시간 분량의 에로영화를 집필 중이다. 그외에도 해외여행 도중 박세영 감독의 “팔에 칩을 심으려고 했던 사이비종교와 맞닥뜨린 경험”을 토대로 한 영화, “우생학과 출생률 하락으로 인해 생긴 2030 청년들의 불안감을 담은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박세영 감독의 야망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그 여정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