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에겐 인간을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그에 맞서 싸우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며 고향별로 쫓아 보내기도 했다. 다른 행성으로 탐사를 떠났을 땐 우주선에 무단탑승한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인 후 귀환했다. 영화 속 인간은 인간영역의 최전선에서 지구와 인류를 위해 분투했다. 우리 집과 정든 동네, 식료품 사는 이웃과 선물을 고르는 연인, 우거진 숲과 푸른 바다를 지키기 위해.
미래에 사는 영화 속 인간은 어떤가. 인류를 지킬 마음도 지구를 고쳐 쓸 마음도 없다. 해수면이 상승해 수몰되거나 빙하기가 닥친 도시에 살면서 쓰러진 랜드마크로 옛 명성을 전해 들을 뿐. 그나마 멸망 초기엔 해가 뜨고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더 먼 미래로 가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둠에 갇힌다. 지구는 낙오자의 세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 인간은 끝내 회복하지 못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을 개척해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 앉는다. 복제인간과 우주 개척지, 식민행성을 만들어가면서. 우주 개척지로 갈 때 그들은 무엇을 버렸나. 지구. 그리고 인간. 그 빈자리를 복제의 방식으로 채운다. 고의인지 기술적 한계인지 알 수 없으나 아직 복제되지 않은 한 가지를 남겨둔 채로.
인간성 쟁취하기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러너 2049>는 짐작 가능한 근미래로 시공간이 설정돼 있다. 20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그곳에 복제인간 K가 산다. 그는 인간의 DNA를 기반으로 한 생물학적 레플리컨트로 제조시설에서 완성된 형태로 출시된다. 그는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도록 설계된 신형모델인데 반란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순응코드’가 각인되어 있으며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이유는 자유를 원하고 반란을 시도해서다. 그들은 비밀조직을 만들고 인간처럼 출산이 가능한 레플리컨트의 출현을 혁명의 계기로 삼아 해방운동을 벌인다. 2049년의 복제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 K는 ‘만들어진 존재’지만 레플리컨트에게서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임무를 마치고 귀가한 K는 조이와 저녁 시간을 보낸다. 조이는 AI 홀로그램 여자친구로 사용자의 감정에 맞춰 반응하고 위로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소비재다. 조이는 올림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1960년대 미국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K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튼다. 1966년에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 크게 히트한 곡 Summer Wind. 음악을 들으며 밀어를 나누어도 K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자 조이는 책을 들고 온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장편소설 <창백한 불꽃>. 이 소설은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쓰인다. K는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외상 후 테스트를 받는데 그가 암송하는 텍스트가 이 소설에 나오는 시 999행의 일부분이다. ‘피처럼 검붉은 무無가 하나의 줄기 속에서 서로 연결된/ 세포들 속에 연결된 세포들 속에/ 연결된 세포들의 조직을 짜기 시작했다’
외상 후 테스트를 실행하는 이유는 구형 레플리컨트를 죽이고 눈알을 파내 증거물로 제출해야 하는 작업의 참혹함 때문이다. 반복되는 고위험작업으로 인해 순종형 신모델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검증하는 절차다. 테스트방식을 인간이 쓴 문학작품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복제인간이 인간의 하위개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겠다는 인간의 의지며 안간힘이다. 인간이 부른 노래와 인간이 쓴 시. 그것을 듣고 외우는 신형 레플리컨트.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기준선을 향유로 잡고 이를 흉내 낼 수 있을지언정 획득할 수 없음을 공고히 한다. 기준선 테스트를 훌륭하게 통과한 K에게 직속상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벽 위에 세워졌어. 두 종족을 구별하는 벽. 그 벽이 없다고 했다간 전쟁이 터지거나 학살이 벌어지겠지. 그러니 네가 본 건 없었던 일이야.” K가 본 것은 출산 흔적이 있는 구형 레플리컨트의 뼈다. 질서유지를 위해 진실을 덮으라는 상관의 지시에 K가 질문을 던진다. “태어난 존재는 영혼이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된 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데서 기인한다.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이 기억의 정체는 무엇인가. K는 그것이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증거라 믿는다. 진실을 좇던 끝에 애나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진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K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마저 복제된 대체품이라는 현실과 마주한다.
레플리컨트는 인간다운 삶을 열망한다. 인간은 영원한 삶을 갈망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에 힘들고 위험한 영역으로 감정적 동요 없이 대신 들어갈 존재를 탄생시키기로 한다. 출산이 아닌 생산의 방식으로. 그렇게 생산된 대체품은 해방운동단체를 조직해 인간과 투쟁한다. 그들이 정의하는 인간성의 상징은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 ‘아기’다. 이는 미래를 내다본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아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수학적 정확성.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돼 최근작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린 타로가 만든 <은하철도999>의 시간 배경은 2212년이다. 인간이 지구에 낙오돼 빈민으로 전락한 가운데서도 어린아이들이 허물어진 도시 골목을 활기차게 뛰어다닌다. 우리의 미래가 황폐하리라 예상하면서도 아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지 않았다. 워쇼스키 자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지구 멸망 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2346년으로 시공간이 설정됐는데 노인이 어린아이들에게 지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는다. 아이가 우주를 가리키며 어느 별이 지구인지 노인에게 묻는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을 통해 어느 행성에서든 인간의 이야기가 지속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최초의 SF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조성희의 <승리호>는 어떤가. 2092년에 펼쳐지는 서사의 중심에 강꽃님이 있다. 뇌 신경이 나노봇으로 일부 대체됐어도 꽃님이는 분명한 인간이다. 죽어가는 모든 생명체를 회생시키는 초능력이 있어 인간은 물론이고 버려진 지구까지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블레이드러너 2049>에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태어난 존재’ 애나 박사는 인간이다. 아기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는 인간은 완성형으로 출시되는 레플리컨트와 같을 수 없다.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고 다양한 고난 속에 등장인물을 밀어 넣어도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인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자 돌파구라는 믿음.
눈여겨볼 지점은 자신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앞에서도 K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인간성의 핵심이 출생의 방식에 있지 않음을 증명해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K는 애나 박사에게 아버지를 데려다주고 눈 속에 누워 죽음을 맞는데 이는 타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순간 단순한 레플리컨트가 아닌 윤리적 주체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의 희생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위한 것이며 어떤 출생의 신비보다 강력한 인간성의 증거가 된다. K는 타인을 위한 윤리적 행동을 통해 대체품의 프레임에서 자력으로 벗어나 비로소 인간성을 쟁취한다.
K는 인간과 복제인간, 두 종족을 구별하는 기준을 영혼이라 생각했다. 인간만이 그것을 통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외우며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는다고. 인간성이 복제되지 않은 레플리컨트에게 그것은 향유가 아니라 흉내일 뿐이며 살아서는 넘지 못하는 불가능과 불가침의 영역이다. K는 죽음을 통해 인간성을 쟁취했으므로 살아서 누릴 방법이 없다. 해일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바다에 거대한 방벽을 세웠듯이 인간은 대체품을 만들 때 끝내 넘지 못할 절대의 벽도 함께 만들어놓았다. 인간은 영혼을 가질 수 없는 복제인간을 ‘껍데기’라 멸칭하며 확실히 선을 긋는다.
인간성 습득하기
여기서 우리는 껍데기로 사는 영화 속 인물을 한 명 더 데려올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공기인형> 노조미. 노조미는 인간의 성욕 해소용으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2000년대 후반 도쿄로 짐작되는 도시에 산다. 그녀 또한 ‘만들어진 존재’며 K를 비롯해 21세기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대체품의 잠재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생활 도구로 쓰이는 노조미는 몸속이 텅 비어서 반투명한 그림자가 생기고 빗방울을 맞으면 퉁, 퉁, 소리가 난다. 노조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관찰을 통해 배운다. K와 비교할 때 훨씬 소박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체득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잔잔하고 철학적인 시선 아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서적으로 접근해 탐구한다. 껍데기에 불과했던 노조미는 감정을 배우고 비디오 대여점 직원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생겨버렸습니다. 내게 있으면 안 되는 마음이”
이웃 노인은 마음이 생긴 노조미를 위해 하루살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를 읊어준다. 그는 고등학교 대체 교사였는데 자신은 늘 ‘텅 빈 대체품’에 불과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사실 지구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과거부터 대체품을 써왔다. 대체품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일에도 열중했다. 복제인간을 만들 기술력이 없는 관계로 ‘태어난 존재’를 대체품으로 썼다. 대체품으로 사는 인간은 영혼이 훼손되고 파괴되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껍데기가 된다. 후천적 레플리컨트다. 진짜 인간을 텅 빈 껍데기로 만드는 일은 복제인간을 새로 만드는 일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태어난 존재’를 ‘만들어진 존재’로 변태시키는 일. 인간의 악취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조미는 2049년의 K처럼 시를 읊는다. 껍데기가 암송하는 인간의 시.
‘그저 뿔뿔이 흩어져/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살아가며/ 때로는/ 서로를 혐오하는 것마저 허용하는 관계다/ 이렇게까지 세상의 짜임이 허술한 것은 왜일까?/ 꽃이 피어 있는 곳 바로 근처까지/ 등에의 모습을 한 타인이/ 빛을 가득 몰고 날아오고 있다’
그녀에게 날아온 타인. 고무 살갗이 찢어져 공기가 빠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비디오 대여점 직원이 찢어진 상처에 테이프를 붙이고 공기 주입구에 입바람을 불어넣어 그녀를 살린다. 그 이후로 그녀 안에 다른 게 채워진다. 직원이 불어넣은 건 단순한 공기가 아니다. 숨이다.
노조미는 숨이 돌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행복한 감정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디오 대여점 직원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의 주인이 새 인형을 들여와 노조미로 부르는 걸 보았을 때 그녀는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배운다. 자신은 결국 대체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간과 대체품 사이의 방벽을 넘어 그들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조미가 인간성을 갈망하고 습득할 때 그녀 주변의 인간들은 타인을 대체품으로 다루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다. 인간성의 결핍은 오히려 인간에게서 드러나고 노조미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되짚어주며 인간성의 공백을 메운다.
K가 윤리적 선택으로 인간성을 쟁취했다면 노조미는 사랑하는 감각을 통해 인간성을 습득한다. 그들이 인간성에 도달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죽음의 관문을 통해 완성되는 방식은 같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들에게 향유 할 시간을 주지 않는 대신 최후를 맞는 장면에 애도의 마음을 담는다. 죽음이 아니라 파괴의 형식일지라도 그들과 천천히 작별하도록 배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K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계단에서, 노조미는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파괴된다. 쓰러진 노조미 앞에 민들레가 피어 있다. 노조미는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된 꿈을 꾼다. 태어난 날을 갖는 꿈. 케이크의 촛불을 후, 불어 끄고 이웃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비로소 ‘태어난 존재’가 된 것이다. K와 노조미의 종말을 지켜볼 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엔 인간에 대해, 인간을 닮은 대체품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다는 것을.
인간성 삭제하기
오늘 우리에게 온 최신형 대체품이 있다. 봉준호의 <미키17>. 미키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3D 바이오 프린터로 재구성해 만든 복제체로 죽을 때마다 같은 형체로 다시 복제되어 재가동한다. 기능을 다 하면 교체되도록 설계된 일회용 소모품이다. 그의 죽음은 K나 노조미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애도하는 마음도, 애도할 마음도 없다. 눈 내리는 풍경이나 홀씨가 핀 민들레를 기대할 수 없고 천천히 작별할 시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시신은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는 용광로에 버려진다.
미키가 파괴되는 방식은 왜 다른가. 제작방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미키는 태어나지도,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는 ‘프린트’된다. 인간성에 대해 사유하거나 인간만이 갖는 아우라를 동경할 시간이 없다. 프린트된 지 십 분 만에 용광로로 버려지기도 하니까. 시나트라의 노래를 듣거나 나보코프의 시를 외우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래서 K는 레플리컨트로 불리고 미키는 익스펜더블로 불린다. K는 대체품, 미키는 소모품. 미키는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죽어도 되고, 죽도록 설계된 익스펜더블이자 죽을 때마다 복제돼 자리를 다시 채우는 리플레이스먼트다. 임무 수행 중 손실되어도 전체집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키가 죽으면 이전 기억을 업로드하고 복제과정을 거친 다음 재투입되는 방식으로 순환되므로 이전 기억은 그대로 이어지고 정체성은 단절된다. 이 지점에서 미키17은 딜레마에 빠진다. 여러 번 죽었는데 왜 죽음을 무서워하는지 묻는 미키18에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다시 태어나는 거잖아. 내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지금은 내가 죽으면 나는 끝이고 네가 살아가는 거지.”
미키17는 지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식민행성으로 이주해 익스펜더블이 되기 전엔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천천히 완성된 존재. 인간 시절을 기억하는 상태로 미키18과 마주하게 되면서 자아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고유한 주체성이 지워지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다. 고유한 존재로 삶과 죽음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공포. 기억은 연속돼도 자아의 서사가 이어지지 않는 방식은 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하고 죽음의 존엄마저 부정하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미키가 사는 시대는 2054년이다. K가 사는 2049년으로부터 5년이 흐른 뒤다. 미키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필요에 따라 생산되고 편집되며 삭제되는 기능적 존재로 급격히 전락한다. 영화 속에 살아 있는 대체품들은 우리의 투영체다.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비추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내다보게 한다. 태어난 존재의 가치는 출산 방식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시간과 함께 기억으로 간직할 줄 안다는 데서 생긴다. 먼 먼 미래, 예측 불가능한 기술 사회로 가더라도 ‘간직’한다는 인간만의 행위를 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키에게 이어지는 기억은 간직이 아니라 이식이다. 노래하고 시를 짓는 인간의 아우라를 복제해낼 시대가 과연 올까.
인간성 재정의하기
다른 건 몰라도 복제인간과 복제체가 인간성을 갈망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듯하다. K가 그 마지막 대체품이며 미키는 인간성 삭제 시대의 첫 소모품일지 모른다. 복제가 반복될수록 원본은 희미해진다. 하이퍼리얼리티로서의 복제체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원본을 지우고 있다. 미키 이후에 탄생할 복제체는 인간성을 습득하고 쟁취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인간성에 대한 고민 없이 제 기능을 다 할 것이다. 인간과 다른 기준으로 존엄의 개념을 재정의하면서 주체적으로 서사를 이어갈 수도 있다.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어도 인간과 동일한 대우를 받거나 생물학적 인간이라도 재정의된 인간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미래,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기’에 인류의 명운을 거는 시대, 복제인간이 생물학적 인간을 동경하는 시대는 끝났다. 인간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복기하며 강조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그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영화 속 대체품이 사랑을 학습하고 출산을 시도할 때 영화 밖의 인간은 사랑을 포기하고 출산 의지를 삭제하고 있으니까. 미래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에게 국한된 환각일 뿐, 인간이 소멸한 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지구는 오히려 회복할 것이며 우주는 예정대로 움직일 것이다. ‘만들어진 존재’가 ‘태어난 존재’보다 더 인간다워지면서.
노조미는 인간성의 결핍을 탐색하고 K는 인간성을 찾기 위해 투쟁하며 미키17은 인간성이 지워진 자리에서 무심히 죽어간다. 그들은 다가올 미래의 예고편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의 그림자다. 우리는 이제 영화 속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새로 정의하고 구성할지 질문해야 한다. 인간성이 유일한 윤리 기준일 수 없는 시대, 인간적이고 인간다운 영화란 이제 무엇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