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듣기엔 쉽지만 이만큼 많은 준비와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일도 없다. 아는 만큼 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무엇을 배워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아는 것보다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는 믿음을 주는 말들. 김연우 당선자가 영화비평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몇해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가명으로 이미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고 있던 그는 좀더 분석적이고 날카로운 글쓰기의 필요를 느껴 영화비평을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질 때마다 넓어질 그의 글쓰기 영토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 이론비평으로 택한 영화가 독특하다. 74명의 응모자 중에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와 <빛나는 TV를 보았다>로 쓴 사람은 유일하다. 비평을 쓸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글은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어떤 부분이 나를 움직였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길을 발견하는 편이다. 우선 두 영화 모두 좋았던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아직 이 두 영화로 쓴 글을 본 적이 없어서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역량이 부족해 아직 못 찾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웃음)
- 원고의 바탕이 된 꼼꼼한 자료, 선행 연구조사를 보고 전공자인 줄 알았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퀴어’, ‘호러’ 등 키워드에 관심이 많지만 전공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아는 건 아주 한정적이고 지식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글을 쓸 때 조심스럽고, 모든 과정이 공부가 된다. 원칙이 하나 있다면 모르는 건 쓰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확인하고 납득하여 소화된 부분만 글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 언제부터 영화비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
전공은 사회학이다. 이런저런 글을 쓰는 걸 즐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써왔는데, 기왕 그럴 거면 제대로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건 몇년 되지 않는다. 영화비평도 한번 써보겠다고 결심한 그해, 첫걸음을 떼는 기분으로 <씨네21>에 응모도 했다. 이후에 차근차근 준비해서 실력이 쌓이면 다시 응모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몇해가 지나고 보니 아무리 공부하고 글을 써도 영원히 준비가 안될 것 같더라. (웃음) 올해부터 쓴 글을 다시 선보이는 게 필요하겠다고 마음먹은 차에 제일 먼저 공모를 받는 곳이 <씨네21>이라 또 한번 시작하는 마음으로 투고했는데 응답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직 얼떨떨하다.
- 촘촘한 이론비평에 비해 작품비평은 다소 평이했다. 올해 가장 많은 응모작이 <해피엔드>이기도 했다.
<해피엔드>는 처음엔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주변 반응을 보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많은 비판들에서 공통적인 지점을 발견했는데 그 부분에 동의가 되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쓰면서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새로운 방향으로 쓰고 싶었지만 마감 시간에 맞출 자신이 없었다. 지금 다시 보니 아쉽기 그지없다. 쓰는 사람이 아쉬운데 읽는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글로 인사를 하고 싶나.
원래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웃음) 눈앞에 주어진 것을 소화하기도 벅차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도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당선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주어진 것에 집중하는 편이라 이번 당선으로 작은 목표가 생겼다. 언젠가 스스로 비평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