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미혼모 아리안은 만삭의 몸으로 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아다닌다. 그 이유를 들어야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처럼. 펄라는 아기가 남자 친구를 자기 곁에 잡아둘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제시카는 고민 끝에 준비된 가정에 아기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하지만 정작 딸을 방치했던 엄마가 나타나 갓난아기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언노운 걸> 이후 전성기의 예리함을 잃었다는 불평에 아랑곳없이 다르덴 형제는 희망이 절실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어린 엄마들의 쉼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21세기 시네마에 심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이미 두개의 황금종려 트로피를 선반에 올려 둔 감독이지만 신작 <어린 엄마들>(JEUNES MÈRES, 가제)로 각본상을 받은 다르덴 형제의 얼굴은 어떤 수상자보다 환하게 빛났다(그들의 칸 각본상 수상은 2008년 <로나의 침묵>에 이어 두 번째다).
뤽 다르덴, 장피에르 다르덴(왼쪽부터). ©SHUTTERSTOCK
- <어린 엄마들>은 다섯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들끼리의 큰 상호작용 없이 엮어나간다. 어떻게 이런 구성을 선택하게 됐나.
아이디어가 먼저이고 거기 맞춰 구성한 것은 아니다. 최초의 구상은 쉼터에서 기거하는 여성이 막 출산한 아기와 관계 정립에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에 등장한 실제 쉼터를 찾아갔을 때 우리는 그곳에 있는 일군의 여성들, 즉 아기와 함께 있는 어린 엄마들과 그들을 돕는 교사, 심리학자, 운영자 모두로부터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기 울음소리, 웃음, 고통 그리고 짧은 행복의 편린들을 호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미조구치 겐지의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 여인들>이 그랬듯이 다섯 여성의 생활을 따라가게 됐다. 원칙은 단순했다. 다섯 사람 모두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책임을 질 것, 그리고 각각의 길의 마지막에는 희망의 빛이 깃들어야만 한다는 것.
- 영화는 성숙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둘러싼 빈곤과 소외가 대물림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있다. 전작들에 비해 영화가 희망적인데,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영화의 경우엔 픽션이 현실에 대해 다른 가능성들을 허락해야만 했다. 과거에 우리는 인물들에게 해결책을 찾아주지 못했다. 그들의 현실이 탈출구를 찾을 수 없도록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엄마들>에서는 반대로 우리가 한 줄기 빛을 원하고 필요로 했다. 픽션의 역할은 현실에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빈곤과 사회적 문제가 가족 내에서 대물림되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인물들은 삶을 바꾸기 위해 싸운다. 불행의 상속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고자 한다.
- 직업 배우, 비전문 배우와 두루 작업해왔다. 비전문 배우를 선택하고 연출하는 방법론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린 엄마들>에서 우리가 원한 것은 영화에서 본 기억이 없는 얼굴을 지닌 다섯명의 전문배우였다. 결과적으로 아리안과 줄리 역을 나머지 배우보다 경험이 많은 배우들(제나이나 할로이 포칸과 엘사 후벤)이 연기했지만 모든 배우가 영화 속 아기들만큼이나 자연 그대로이길 원했다. 이 젊은 연기자들의 얼굴에서는 배우의 커리어를 읽을 수 없다. 50명의 후보 중 5명을 뽑았는데 비전문 배우 캐스팅에서는 단일한 기준이 있을 수 없다. 기준은 저항을 만나기 마련이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침묵이 돌아온다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인데 거기에 우리가 주목할 뭔가가 있다.
- 당신들의 카메라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움직인다. 비전문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어떻게 유도하나.
간단하다. 비전문 배우들이 카메라에 대한 공포감을 잊을 때까지 리허설을 한다.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겁내지만 카메라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캐스팅되어 거기 서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카메라는 생명체는 아니라 미장센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어린 엄마들>의 카메라는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부드럽고 다정하다. 우리는 이 여성들이 아기를 목욕시킬 때나 재울 때 보여주는 다정함과 부드러움을 촬영에 반영하고 싶었다.
- 전작이 그랬듯 이번 영화도 책임과 선택을 다룬다. 왜 이 주제로 계속 돌아가는가.
사회적 희생자이지만 결코 희생자로 살고 싶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몫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다. “너는 희생자야.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내리는 결정에 따르는 책임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라는 <어린 엄마들>의 대사를 좋아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운명에 응대하고 거역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린다. 어쩌면 우리는 이상주의자이고 로맨티스트인지도 모른다.
- 각자의 스토리가 따로 있지만 연대의 흔적도 곳곳에 보인다. 사정이 있는 친구를 대신해 식사를 준비하고 아기를 봐주며 서로 돕는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이와 같은 집단의 힘을 강조한 의도가 궁금하다.
권력투쟁, 폭력,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현실과 다투어보고 싶다. 상대를 이겨야 하니 짓밟아버리겠다는 의지가 그득한 세상에서, 일군의 여성들이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또 다른 그룹의 여성들이 친절과 상냥함으로 돌보는 공간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 이번 영화는 자매애를 그리고 있지만 다양한 남성상도 보여준다. 어떤 젠더관을 보여주고 싶었나.
현실에서 어린 아빠들은 부재하다시피 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아기와 산모를 외면하기에 쉼터에서 만나기 힘들다. 가부장적인 과거에 깊이 뿌리내린 해묵은 행태다. 육체적으로 임신이 여성의 몫이기도 하지만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가정환경이 비우호적인 것도 남성들이 무책임한 이유다. 하지만 영화에서 우리는 아기 엄마와 유사한 배경에서 살아왔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어린 아빠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극 중 커플은 거리에서 마약을 하고 거래하며 살았지만 이제 인생 경로를 바꾸려고 한다. 나아가 결혼을 통해 거리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맥락과 삶의 구조를 가지려고 한다.
- 당신들의 시네마는 언제나 곤궁한 처지의 인간 편에 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려는 긴급함은 어디서 오는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말한 대로 우리가 그들을 위해 선택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자리를 허락받지 못하기에 스크린의 공간을 주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그들은 결정을 요하는 난해한 상황을 통과하며 삶의 주요한 이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