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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시라트> 올리베르 락세 감독

이번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사이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된 작품은 올리베르 락세 감독의 <시라트>였다. 인물들을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시라트>의 선택에 열렬히 환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기자들도 존재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화제의 중심에 섰던 <시라트>는 최종적으로 제7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라트>를 연출한 올리베르 락세 감독은 꾸준히 칸영화제의 선택을 받아온 창작자다. 장편 데뷔작 <유 아 올 캡틴스>는 2010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돼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두 번째 장편 <미모사>는 2016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서 네스프레소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파이어 윌 컴>은 201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주목할 만한 시선)을 수상했다. <시라트>에 이르러 올리베르 락세 감독은 테크노음악에 맞춰 밤새 춤을 추는 레이브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협곡에서 파티를 즐기는 레이버들에게 루이스는 딸의 행방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아마도 다른 파티에 있을 것이라며 레이버들이 자리를 옮기자 루이스는 아들과 함께 그 뒤를 좇는다. ‘시라트’는 이슬람교에서 ‘지옥을 가로지르며 이승과 낙원을 연결하는 다리’를 의미한다. 오직 의로운 자만이 다리를 건널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이는 불에 타는 형벌을 받는다. 올리베르 락세 감독은 “<시라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생각하는 삶의 여정이며, 내가 삶을 마주하는 방식”이라며 극에 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SHUTTERSTOCK

- 영화는 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에서 촬영했지만 극 중 지역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진 않는다. <시라트>의 풍경을 특정 지역이 아니라 보편적인 풍경으로 만들고자 했나.

그렇다. 물리적인 서사 속에 형이상학적인 모험을 담는 것이 목표였다. 다시 말해 추상화 없이 추상화하기를 통해 우연히 상징의 다른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관객이 꼭 이해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층위들이 극에 존재하기를 바랐다.

- 사막에서 레이브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항상 자신을 이상화된 모습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세계를 조금만 여행해보면 우리가 심리적으로 가장 병든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선 상처를 드러내는 게 훨씬 성숙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더불어 상처난 마음이 더 아름답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 역시 그런 인물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매료된다고 여긴다.

- 인물들이 마약이나 레이빙으로 고통을 이겨내려는 시도가 보인다. 이러한 연출의 의도에 관해 말해준다면.

말한 대로 영화 속 인물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에 고통을 이겨내려 한다. 이는 자신을 초월하려는 영적인 시도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지키는 방어기제이자 쾌락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방법이 반드시 최선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벼랑 끝에서 힘들어하고 울부짖다가도 결국 일어서서 다시 시도한다. 그런 인간의 면모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 레이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캐스팅했나.

항상 함께 일하는 의상디자이너가 실제로 레이버라 그가 중점적으로 캐스팅을 진행했다. 여러 비전문 배우가 작품에 참여했다. 그들을 촬영하다보면 마법과 같은 순간이 존재하는데 전문 배우에 비해 연기가 어설플지라도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문 배우들을 촬영하면서 오히려 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 즉흥연기도 시도했나.

아니다. 모든 것은 정교하게 짜여진 계획을 통해 진행되었다. 자칫 즉흥연기가 비전문 배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 가족을 찾는 루이스 부자와 레이버들로 주인공을 설정한 이유는.

그들 각각 하나의 원형(archetype)을 대표한다. 가령 레이버들은 펑크족, 해적, 집시, 그리스인이라는 개별 특성을 가진다. 레이버를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로 레이브 문화를 즐기는데 그들 중 일부는 몸이 불편하거나 얼굴에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레이버들은 외형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돌본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녔고 비교적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한편 루이스는 평범해 보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고난 속으로 뛰어들 만큼 본능적이다. 그런 면에서 레이버들과 루이스 부자가 서로 균형이 맞겠다고 판단했다.

- 음악 작업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초반부에는 음악을 통해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후반부에는 음악으로 하여금 인물들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막을 건너라”라고 직접 말하는 느낌이랄까.

그 해석이 정말 마음에 든다. 감사하다. (웃음) <시라트>는 정밀하게 사운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을 보고 이미지를 들을 수 있는 지점까지 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초반에는 무척 원시적인 비트와 딥 테크노음악과 함께 레이빙이 시작되는데 점차 비트와 킥이 사라지면서 오컬트적인 신비로운 사운드만 남는다. 말하자면 소리가 점점 탈물질화되는 것인데 나의 의도는 우주가 시작할 때의 소리, 최초의 소리를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아르페지오는 마치 천사들이 루이스를 보호해주고 이끌어주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영화음악의 작곡을 맡은 데이비드와는 처음부터 잘 통했다. 데이비드와의 작업은 예술가로서 내가 지닌 한계를 넘을 수 있게 해주었다.

- 영화 작업을 시작할 때 이미지와 스토리 중 무엇에서 먼저 출발하나.

나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나 대단한 개념을 설파할 수 있는 감독은 아니다. 다만 이미지를 중시하고 이미지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연출자다. 처음에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항상 이미지를 신뢰하고 두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생겨나는 의미와 감정의 힘을 믿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