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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냐 고전이냐 - 당신을 위한 <HBO> 큐레이션

*이 지면은 핫한 신작보다 이미 검증된 구작을 보길 희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다. 안방 극장에서 취향 따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HBO> 작품들을 소개한다.

대체역사물을 바란다면

<왓치맨>

연방정부 세력과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군대 FSA(Free State Armies)로 나뉘어 2차 내전이 벌어진 가상의 역사적 상황을 다루는 4부작 <DMZ>를 추천한다. 로사리오 도슨이 8년 동안 아들을 찾아 헤매는 의료진으로 등장한다. 동명의 인기 만화 시리즈가 원작이라 재미를 보장한다. 분쟁 발발 당시 뉴욕시 대피령으로 아들을 잃어버린 알마가 갱단의 두목이자 새로운 세계를 지배하려는 파르코에 맞서 희망의 아이콘이 되는 이야기다. 앨런 무어의 원작에서 이어지는 세계관 확장 스토리 <왓치맨>도 대체역사물로 분류 가능하다. 원작 만화에서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가상의 미국이 배경인데, 여전히 첨예한 인종차별 갈등을 겪고 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가 주요 배경인데 이곳은 과거 실제 인종차별 사건의 핵심 지역이기도 했다. 대체역사물의 재미는 우리가 이미 뿌리뽑았던 악의 무리가 여전히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왓치맨>은 과거의 잔혹했던 인종차별 시대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김현수 영화칼럼니스트

정치물을 바란다면

<부통령이 필요해>

깔깔대며 즐길 수 있는 정치풍자물을 원한다면 <부통령이 필요해>를 보시라. <BBC>의 <더 씩 오브 잇>이나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의 감독 아르만도 이안누치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미국의 부통령이지만 아무 실권이 없는 설리나 마이어(줄리아 루이드라이퓌스)와 그의 무능한 보좌진들이 백악관에서 벌이는 야단법석을 예리한 필치로 풍자해낸 수작이다. 진지한 정치사극을 원한다면 <존 애덤스>가 제격일 것이다. 에미상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에서 역대 최다 수상 기록(13개)을 세운 <존 애덤스>는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부통령인 존 애덤스의 전기를 다룬다. 작품 속 건국의 ‘작은 아버지’ 존 애덤스(폴 지어마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속 링컨(대니얼 데이 루이스)이 그랬듯 성인군자가 아니다.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쳤지만 이를 넘어서는 지성으로 미국의 기틀을 닦은 애덤스의 고군분투가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자폭 중인 미국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든다. /정재현

히어로물을 바란다면

<피스메이커>

<HBO>는 DC스튜디오와 같은 워너 산하의 계열사이므로 DC 슈퍼히어로에 관한 드라마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앞서 추천한 <더 펭귄>이다.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의 스핀오프 드라마로 고담시 범죄 조직간의 싸움을 펭귄맨인 오스왈드 콥의 입장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배트맨> 시리즈 세계관은 여러 버전이 있어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같은 세계관을 다른 연출자의 터치로 리메이크하는 재미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즐기는 걸 추천한다. 역대 모든 슈퍼히어로 관련 서사를 통틀어 가장 어둡고 비열한 범죄드라마일 것이다. 제임스 건 감독이 창조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피스메이커>도 주목할 만하다. 존 시나가 연기하는 캐릭터 피스메이커를 중심으로 그가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임스 건 특유의 괴상한 유머로 점철된 슈퍼히어로 서사의 별난 맛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김현수 영화칼럼니스트

연기차력쇼를 바란다면

<빅 리틀 라이즈>

<빅 리틀 라이즈>엔 니콜 키드먼, 리즈 위더스푼, 로라 던 등의 유명 배우들이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의 학부모로 등장한다. 가부장 권력에 곪아 있는 여성들은 저마다 고통받지만, 이들은 그렇다 하여 무결한 존재는 아니다. 몬터레이의 여성들은 폭력을 답습하는 남성을 향해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의 관습을 체화한 여성을 향해 저항하고 연대한다. 시즌1 속 니콜 키드먼의 내담자 연기는 가히 학대 피해자 연기의 새 교본을 썼다. 케이트 윈슬럿의 팬이라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을 놓쳐서는 안된다. 윈슬럿은 트라우마의 늪에서 허우적대지만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위한 발버둥만큼은 멈추지 않으려는 형사 메어를 시청자의 눈앞에 가져다놓는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리처드 젱킨스가 다정한 냉소와 비틀린 위로를 전하는 <올리브 키터리지>도 추천 한다. /정재현

범죄물을 바란다면

<트루 디렉티브> 시즌3

범죄를 해결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바란다면 단연 네 시즌에 걸쳐 리부트된 <트루 디텍티브> 다. 우디 해럴슨, 매슈 매코너헤이, 마허셜라 알리 등의 배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중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로 등장한다. 지난해 방영된 시즌4에선 조디 포스터가 시리즈 최초의 여성 주인공 형사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반면 범죄 누아르를 경유해 미국의 원죄를 해부하는 코폴라 혹은 스코세이지식 범죄물을 원한다면 미국 TV시리즈의 판도를 바꾼 <소프라노스>나 하버드대학교의 사회학과 수업 교재로까지 활용된 <더 와이어>가 정답일 것이다. 음험하고 사악한 방식으로 생계를 축적한 범죄자들의 일면은 인간 군상에 대한 폭넓은 통찰은 물론 자본주의와 관료주의의 모순까지 통렬하게 드러낸다. /정재현

고전의 재해석을 바란다면

<밀드레드 피어스>

<결혼의 풍경>은 잉마르 베리만의 동명의 TV시리즈를 2020년대 미국에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조너선(오스카 아이삭)과 미라(제시카 채스테인) 부부는 가정 내 젠더 구도의 변화나 2020년대에 회자되는 관계 개념의 변천을 토론하며 결혼이라는 제도가 자신들에게 남긴 흔적을 돌아본다.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자신의 동명 연출작을 다시 한번 시리즈로 풀어낸 <이마 베프>,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리프 등이 마이크 니콜스의 연출과 토니 쿠슈너의 희곡을 만나 매 장면 살아 숨 쉬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 는 <결혼의 풍경>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부응한 각색물이다. 반면 토드 헤인스가 연출한 <밀드레드 피어스> 는 조앤 크로퍼드의 1945년작 모성 멜로를 그대로 복각하는 데 집중한 작품이다. 촬영과 미술, 배우들의 연기 모두 1940, 50년대 미국영화의 양식하에 철저히 통제돼 있다. /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