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가 처음으로 10대 청소년을 다룬 드라마를 기획하면서 시리즈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A24에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영어덜트 콘텐츠 타깃을 공략할 목적이었다. 밀레니엄 이후 태어난 이른바 젠지 세대(1997년부터 2012년 출생)의 혼란스러운 일상을 다룬 <유포리아>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폭력과 섹스, 마약 묘사에 거침이 없다. 가족, 친구,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내재된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은 현실도피 수단으로 마약과 섹스에 탐닉한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탐닉이란 단어가 과연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건지 고민의 장을 열어젖히겠다는 듯이 시즌 첫화부터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한다.
막장 범죄드라마처럼 소개했지만 최근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어떤 작품에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젠지 세대의 갈등과 고민을 다루지 못했다. 부모 집에 처박혀 사회로 나오지 못한다는 조롱을 듣고 있는 이 아이들은 별다른 안전망도 없이 삶을 멋대로 선택할 자유를 만끽하는 듯하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즉 주인공들이 더욱 위험한 선택을 감행하고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범죄에 깊숙이 개입할수록, 사실 그건 공정한 기회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육체, 정체성을 지배당할 명분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준다.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마약중독자 루(젠데이아)와 누구보다 일찍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줄스(헌터 셰이퍼)가 우연히 만나 우정 이상의 감정을 교환하고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주된 스토리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얽히는 친구들과 그 친구의 부모들 이야기는 때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지 싶지만, <유포리아>가 진정 보여주고자 하는 건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다. 통렬하고 슬픈 러브 스토리다. 또한 자신이 뭘 갖고 태어났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유약한 영혼들의 삶을 강탈하려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과도한 노출, 마약 장면 등은 선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지만 시즌2의 4화에서 명화와 명작을 오마주하면서 루와 줄스 사이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나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시즌1의 8화 엔딩 장면을 보면 이건 주인공들의 찬란했던 아름다운 시절을 박제하기 위한 노력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트라우마와 첫경험 사이의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프로덕션디자인과 촬영, 음악을 통해서도 전달한다. 현재까지 두 시즌이 만들어졌고 두 주인공의 내면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스페셜 에피소드가 두편 있다. 쇼러너인 샘 레빈슨은 모든 에피소드 각본을 직접 썼고 연출도 맡았다. 최근 시즌3 제작이 확정되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젠지 세대 스타 젠데이아가 주연을 맡았고, 이 드라마로 인해 헌터 셰이퍼, 시드니 스위니, 알렉사 데미 등이 새로운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패션
<유포리아>의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정체성과 고민, 색깔을 의상으로 드러낸다. 동시대 어떤 드라마도 이런 전위적인 코스튬 의상을 선보이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이 곧 캐릭터 자체라서 의상이 너무나 중요했는데 <보그> 출신의 디자이너 하이디 비븐스가 담당했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들이 오히려 <유포리아>의 주인공 의상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라인을 출시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