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BO> 스타일의 핵심 - ‘영화 같은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전략들, <HBO>에 대한 4가지 FAQ

<더 테리 폭스 스토리>

Q1. <HBO>는 어떻게 아성을 쌓았나.

응접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기. 홈 박스 오피스를 표방한 1972년 신생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영화 방영 중 중간광고를 없애는 신의 한수를 택했다. 일리가 있다. 영화관엔 상영 전 광고만 있을 뿐 중간광고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구독료만 더하면 극장에서 금방 막을 내린 영화를 집에서 광고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HBO>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마침 1970년대는 미국 내 케이블TV 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4년 5만명에 불과하던 케이블TV 이용자는 197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고, <HBO>는 1977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HBO>의 광고 배제 전략은 영화의 2차 배급을 넘어 ‘영화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낼 때에도 변동 없이 적용됐다. 그래서 <HBO>는 광고주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광고의 외압을 받지 않은 내실 있는 콘텐츠 제작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구독 기반의 채널이기 때문에 욕설이나 노출, 폭력 표현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웠다. <HBO>의 중간광고 배제 전략은 시청자들에게 프리미엄 콘텐츠를 집에서 편안히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과 작품에의 깊은 몰입 모두를 가능케 했다. 단연 TV채널이 접근성과 콘텐츠의 질 모두를 챙긴 사례로 불릴 만하다. <HBO>의 차별화 전술은 1990년대 후반 큰 빛을 본다.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오즈> <섹스 앤 더 시티> <소프라노스>가 각각 1997년, 1998년, 1999년 내리 공개된 것이다. <HBO>는 수위 높은 범죄물과 성에 대한 담론을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으로 끌고 들어오며 참신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해냈다.

<HBO>는 콘텐츠를 공개하는 전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HBO>는 자사의 OTT인 맥스를 유치 중인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시리즈를 매주 한편씩 공개한다. 구독자의 지속적 ‘본방사수’를 유도하는 이 전략은 빈지워칭이 가져오는 피로를 방지하고 실시간 시청을 촉구하며 시청률 향상까지 도모한다. 구독자 보상 전략 또한 어느 플랫폼보다 <HBO>가 앞섰다. <HBO>는 구독자 전용 전편 시사회 및 관객과의 대화, 제작진 인터뷰 등 고객이 독점으로 누릴 수 있는 이벤트를 일찍이 개최해왔다. 구독자간 자연발생적인 바이럴마케팅 효과와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뒤이을 수밖에 없다.

Q2. <HBO>는 어떤 기록을 세웠나.

<HBO>는 위성방송의 새 역사를 썼다. 1970년대만 해도 중계탑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다수의 케이블 채널이 이용 중인 마이크로파 네트워크는 겨울철에 유지 관리가 어렵다는 명백한 단점도 있었다.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에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했던 <HBO>는 1975년, ‘우주’에 활로를 뚫었다. 정지 궤도에 통신위성을 두고 미국 전역의 케이블 사업자들에게 직접 신호를 송출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이는 방송 기술의 발전에도 중대한 분기점이 된 기술혁신이다. 그렇게 <HBO>는 세계 최초로 통신위성을 활용한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되었다.

이외에도 <HBO>는 다수의 ‘최초’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HBO>는 미국 최초의 구독형 네트워크이고, 이들이 1983년 제작한 영화 <더 테리 폭스 스토리>는 케이블TV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다. 당연히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피보디상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케이블TV 타이틀 또한 <HBO>가 보유 중이다. 특히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 등이 에미상을 싹쓸이한 경력 덕에, <HBO>는 아직도 매년 에미상 노미네이션 발표 이후 넷플릭스, 훌루 등의 ‘엄마 친구 아들’이 되어 노미네이션 개수를 비교당하기 일쑤다.

맥스요금제(미국기준).

Q3. HBO 맥스와 HBO의 차이는?

<HBO>는 1972년 설립된 케이블방송 채널이다. 그리고 2020년 5월 <HBO>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여타 채널의 콘텐츠까지 스트리밍서비스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 바로 HBO 맥스다. <HBO>의 모회사이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넷플릭스 주도의 글로벌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이어 2022년 워너브러더스와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가 합병에 성공하여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라는 미디어 업계의 공룡이 등장했다. 커진 몸집에 맞춰 2023년 5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당사의 대표적인 스트리밍 플랫폼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디스커버리>의 스트리밍서비스)를 통합한 스트리밍서비스 맥스를 출범시켰다. 이름에서 HBO를 제외한 이유는 주로 성인 시청자층을 노렸던 HBO 맥스의 색깔을 다큐멘터리, 아동용 콘텐츠 등까지 포괄한 맥스의 전방위적 성격에 녹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맥스의 출범과 함께 발표된 프로젝트는 바로 2026~27년 공개 예정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작이었다. <HBO>의 성인용 콘텐츠를 넘어 전세계 남녀노소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겠다는 맥스의 포부가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 예시다. 물론 <HBO>는 여전히 자사의 특성이 드러난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제작하며 균형을 지키려는 중이다. 정통의 레거시미디어 <HBO>로 시작해 HBO 맥스로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한 뒤, 이 시대를 집어삼키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맥스가 과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Q4. 왜 한국에 HBO 맥스의 상륙이 어려운가.

HBO 맥스는 2021년부터 한국 지사의 채용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2022년 출범을 예고했지만, 2022년 상반기에 한국 진출을 포기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가 2023년부터 HBO 맥스를 새로운 스트리밍 브랜드인 맥스에 통합하면서 HBO 맥스의 한국 진출이 좌초된 것이다. 대신 맥스는 자사 콘텐츠를 해외 플랫폼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공급하는 전략을 한동안 지속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국가별로 개별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진출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2024년 말 맥스는 일본과 뉴질랜드 등 7개 아시아 국가에 진출했고 “2025년에 호주, 한국, 동남아시아 등 시장에 출시”(<할리우드 리포터>)할 계획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호주에서 맥스가 정식 출범한 것과 달리 한국은 3월부터 쿠팡플레이가 콘텐츠 협력 파트너십을 통해 <HBO>와 맥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엔 맥스가 직접 진출하지 않은 것일까. 이는 맥스가 광고 요금제 중심의 전략을 취하려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글로벌 스트리밍, 게임 CEO인 장 브리악 페레트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광고 요금제(AD TIER) 시장의 활용이 가능한 시장을 찾고 있다”라는 전략적 방향성을 남겼다. 한국에선 넷플릭스와 티빙 등이 광고 요금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최근 관련한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을 신설하며 본격적인 광고 요금제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OTT 시청자의 광고 요금제 집중도 등 관련 연구와 정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결국 맥스의 전사적 전략에 따라 맥스가 한국 OTT 시장에 진출할 근거가 아직 미약한 셈이다. 하지만 맥스는 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상태다. 맥스는 언제든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