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2010년대를 통틀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이자, 용과 기사가 등장하는 정통 하이 판타지다. 용을 조종하는 신성한 혈통 타르가르옌 가문의 인물들이 왕좌를 두고 각종 정치적 암투와 혈투를 펼치는 이야기가 골자다. <왕좌의 게임> IP의 창조주인 조지 R. R. 마틴의 원작 소설 <불과 피>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위의 줄거리 요약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1 역시 위 요약에 부합했다. 주인공인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공주(에마 다시)가 아버지에 이어 왕위 계승자에 오른다. 어릴 적 친구이자 새엄마가 된 알리센트 하이타워(올리비아 쿡)와 그 맏아들인 아에곤의 추종 세력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린다. 근친을 통해 가문을 유지할 정도로 혈통에 의존하는 군주 정권의 가치관이 가족 내외의 여러 갈등을 부르고, 죽음을 불사하는 인물들의 명예와 죽음을 하등하게 보는 왕족들의 욕망이 <왕좌의 게임>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시즌1의 즐거운 부싯돌이 되어줬다.
그런데 시즌2에는 ‘정치적 암투’도 ‘전쟁’도 흐려지고 만다. 라에니라파와 반라에니라파로 나뉘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전쟁을 원하는 자와 원하지 않는 자들의 영역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각 진영의 우두머리 격인 라에니라와 알리센트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두 인물이 평화를 원하며 갈등을 주저하고, 주변의 참모들은 매번 답답해한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라에니라에겐 대륙을 평화로이 통합해야 한다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과업이 주어져 있지만 시원시원한 전개와 지략이 동반된 전투 그리고 충격적 죽음을 원했던 시청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왕좌의 게임>에서 모든 음모의 중심에 있던 책략가 리틀핑거(에이던 길런)나 2016년 차기 미국 대통령 지지율 1위라는 호기로운 뉴스의 중심이 됐던 티리온 라니스터(피터 딘클리지)처럼 인간적 고뇌와 내재적 모순에 깊이 사로잡히는 인물들도 부재해 있다. 그렇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표면적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시리즈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2가 잃은 것들의 나열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루함을 통해 시리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는 평화가 근본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얻고 잃는 게임도 아니고, 서로를 향한 끝없는 대화와 설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왕좌의 게임>이 왕좌를 중심으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다투던 게임의 형식이었다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2는 하우스로 대표되는 안락과 평화의 정서가 드래건으로 상징되는 폭력의 욕구를 이기려는 사회심리적 드라마에 토대를 둔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2와 라에니라, 알리센트가 바라는 것은 결국 이 지루함의 세상이다. 모두가 얻고 싶은 것을 적당히 얻고, 서로의 것을 탐하지 않는 이상적 논-게임의 세계. 다만 원작의 흐름에 따르면 이 평화는 다가오는 시즌3에 이르러 산산조각 날 것이다. 비극은 예정돼 있다. 즉 시즌2는 도래할 비극에 조금이나마 저항하고자 그 대척에 세워놓은 대안적 세계인 셈이다. 이 지루함이 끝난 뒤엔 <왕좌의 게임>이 생각나는 지독한 싸움과 용들의 불길이 드리우겠지만, 혹시 모른다. 그 참혹한 풍경을 보다 보면 시즌2가 지키려 애썼던 아슬아슬한 평화와 지루한 시간이 그리워질 수도.
프리퀄의 운명
흥행작의 프리퀄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전작의 명성에 힘입어 대번에 화제를 부를 수도 있으나, 조금만 실망을 안길 경우 시청자들의 비난 세례를 받기 일쑤다. 절반만 가도 성공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판타지로 여겨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리퀄 <호빗> 시리즈를 보면 견고한 판타지 세계관의 프리퀄 창작이 얼마나 어려우며 즐거운 작업인지 느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