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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미 마스터, <왕과 사는 남자> 배우 김민

<왕과 사는 남자>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촌장 엄흥도(유해진)만이 아니다. 그의 아들 태산(김민) 역시 광천골로 유배 온 단종 곁에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관객수가 925만명을 넘은 시점에 만난 배우 김민은 영화의 건재한 힘을 체감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영월 청령포가 영화를 보고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는 소식을 들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처럼 말이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촬영 장소를 찾아갈 만큼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역할을 준비하면서 김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사춘기 소년”이었다. 과거에 급제해 입신양명하고 싶으나 어떠한 연도 없는 시골 현실에 가로막혀 일찍이 꿈을 접은 청년, 마을 사람들에게는 싹싹하지만 아버지에게는 툴툴대는 사내의 모습이 그가 해석한 태산이다. “아마도 태산은 오늘 먹을 식량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는 데 익숙해졌을 테다. 초반에는 간절히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는 시기의 생기 없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자 관계에 있어서는 그 나이대에 아버지와 서먹했던 내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태산의 공허함은 단종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채워진다. 김민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눈빛에 총기가 어린다. 그는 태산과 단종의 관계를 “영혼을 나눌 만큼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사이”라고 설명했다. “학문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한살 차이의 또래라는 설정이니까. 두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는 긴 시간이 주어지지 못한 게 가슴이 아프다.” 태산이 곤장을 맞는 장면은 단종과 한명회, 엄흥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주목적이나 태산에게는 생사가 걸린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김민은 태산이 “한없이 어린아이”처럼 보이길 원했다. “이대로 억울하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까칠한 모습을 다 버리고 아버지만 애타게 찾는 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25년 3월부터 6월까지 숙소 생활을 하며 앙상블 촬영을 이어가는 동안 김민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책임감”이다. “유해진 선배님이 <왕과 사는 남자>를 반드시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크셨다. 매 신이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해질 수 있을지 열정적으로 의견을 내시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나도 아이디어를 내고 책임감을 키워갔다. 아주 큰 자산을 얻었다.”

태산과 달리 김민은 어릴 적부터 배우라는 명확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연기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영화 <바람>이었다. “당시 20~30번은 본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특히 연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체 없이 그는 1년 동안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했다. 흥미롭게도 김민은 그간 신체를 적극적으로 쓰는 역할을 맡아왔다. <리바운드>에서는 농구공을, <더 킬러스>에서는 총을,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활을 다뤘다. 요즘 빠져 있는 건 복싱이다. “축구도 좋아한다. 살면서 운동을 안 한 시기가 없을 거다. 공, 총, 활에 버금갈 정도로 춤도 좋아한다. (웃음)” 영화 취향에는 경계가 없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여행과 나날>. 겨울 파트보다 여름 파트를 더 좋아한다. 집에서 본 영화 중에는 <지옥의 묵시록>. 챕터마다 장르가 코미디,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는데 경이로웠다. 또 에드거 라이트의 초기작과 웨스 앤더슨의 세공된 세계를 사랑한다.” 시기마다 좋아하는 배우가 바뀐다는 김민이 요즘 빠진 배우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다. “<타이타닉> 시절보다 중년이 된 지금의 그가 더 좋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베니치오 델 토로숀 펜에게도 빠진 터라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가 정말 궁금하다!” 농구선수(<리바운드>), 순경(<더 킬러스>), 조선 사람(<왕과 사는 남자>)을 연기하며 좀처럼 편안한 복장의 자신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김민에게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다.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 <연애박사>에서 로봇공학 전공 대학원생을 맡아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빌 예정이다. “현실에 가까운 멜로라 어떻게 하면 더 인간적으로 보일지를 고민하며 촬영했다. 예전에 어떤 선배 배우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새기고 있다. 지난 작품은 습작이라 생각하고 다음 작품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왕과 사는 남자>에 큰 감사함을 안고 이제 다른 장으로 나아가려 한다. 고민과 노력은 멈추지 않겠다.”

생생히 기억나는 내 캐릭터의 대사

단종에게 글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장면에서 태산은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바란다”고 말한다. 그 말이 우리 영화에서 태산이라는 역할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무게가 있고 직접적인 대사라 현장에서 감정을 너무 싣지 않도록 톤을 조절하는 데 신경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