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씨네21>이 주목하는 라이징 스타 8인 중 한명으로서 표지를 채웠던 배우 이이담은 2026년 “만으로도 서른”이 된다. 그사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간호사 들레, <원경>의 후궁 채령 역으로 시청자들과 가까워졌다. “20대에는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달려왔다면, 30대에는 내 경험을 믿고 밀어붙여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짐한 배경에는 연초 공개된 세편의 넷플릭스 작품이 있다. 그는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레이디 두아> 그리고 영화 <파반느>를 차례로 통과하며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기대하게 되었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속 데이팅 프로그램 <로맨틱 트립>의 PD 지선을 연기할 때는 “정확해지고 싶었다”. 처음으로 “슬픈 서사를 갖고 있지 않은 캐릭터”를 담당한다는 점도 새로웠지만, 세 남자와 엮이는 상황이 지선을 가볍게 보이게 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사연 있는 인물들을 소화하며 생긴 무게감은 덜어내되 지선의 당당함을 내세우려다가 도리어 “내 안의 소심함을 알아채기도” 했다. “호진(김선호)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과거 신에서 똥머리를 하고 나왔는데, 풋풋함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더라! 편집된 화면을 보고서야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안심했다.” 이 간극을 금세 즐길 수 있게 된 건 처음 경험한 해외 로케이션 덕이다.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겼다. “한식파라 음식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방송국팀 배우들과 휴차 때마다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 날들이 기억에 남는다.”
<레이디 두아>의 미정을 위해서는 지하로 내려와야 했다. 무적자 신세로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 미정은 특유의 손재주로 사라 킴(신혜선)의 눈에 든다. 사라 킴의 숨은 조력자를 넘어 사라 킴 자체를 욕망하는 파국으로 나아가며, 이이담은 다시 한번 자문했다. “왜 이런 슬픈 인물들을 자주 맡게 될까? 뉴스를 볼 때든, SNS를 볼 때든, 결국 내 마음은 분노와 억울함을 품은 사람들에게 움직이더라. 연기하기에 힘들고 부담스럽지만, 해내고 나면 그들의 이야기를 잘 토해낸 기분이다.” 극 중 드러나지 않은 미정의 과거사도 홀로 써내렸다. “요즘 시대에 주민등록증도, 스마트폰도 없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개인적으로 설정해봤으나 그 전사는 내 안에만 품었다. 현장에서는 공장 식구들과 섞이며 미정으로 존재하려고만 했다.” 피로하던 얼굴이 화려해지는 과정은 “사라 킴을 흉내낸다기보다, 좋아하다보니 닮아간 것”으로 받아들였다. “혜선 선배의 독보적인 딕션을 따라 하기조차 어렵더라. 사라 킴과 같은 대사를 비슷한 말투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 말을 뱉는 미정의 마음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미정이 흑화하기까지 쌓였을 절망감은 이해하지만, 사라 킴을 없애려고까지 결심한다는 건 안타까웠다. 미정은 마지막 파티를 가지 말았어야 한다.”
미정으로 살며 느낀 아쉬움을 <파반느>에서 조금이나마 해소했을까? 일주일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두 작품에서 이이담이 분한 캐릭터들은 마치 전생과 현생처럼 짝을 이룬다. <레이디 두아>의 미정이 음지에서 가방을 만들다 선망하는 상대를 만나 폭주했다면, <파반느>의 세라는 백화점 명품관을 지키다 좋아하게 된 동료에게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예의를 갖춘다. 경록(문상민)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릴 수 없다는 걸 확인하자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의 주소를 알아내 전달해주기까지 한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역할을 더 하고 싶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세라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런 게 어른의 사랑 아닐까? 경록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세라는 ‘네가 진짜 잘되길 바랄게’라는 심정이었을 거다. 나와는 이미 끝났으니까.” 그 예감이 확신으로 물든 공간이 LP 가게의 청음 부스. 그곳에서 세라는 경록의 진심을 엿보며 침묵한다. “대사 없이 무얼 할지 준비하기 어려운 신이었지만, 세트에 앉아 상민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든 게 쉬워졌다. 정말 어려웠던 건 엘리베이터에서 (고)아성(미정 분) 언니를 못살게 구는 신이었다. <넥스트 액터 고아성>책을 갖고 있을 만큼 팬이라서. (웃음) 촬영이 끝나고서야 책에 언니의 사인을 받았다.”
마침 이이담은 차기작인 tvN 드라마 <아수라 발발타>에서 팬심을 동력 삼아 성장하는 인물로 돌아올 예정이다.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 미소를 머금고 탄식한 까닭을 묻자 그가 답했다. “함께한 배우들과 너무 친해져서 촬영을 마친 지금까지 여운이 남아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나면 작품을 사랑한 만큼 편안해진다. 앞으로 살아갈 힘이 생긴달까? 그걸 위해서라도 매 순간 소중히, 정성 들여 연기하고 싶다.”
생생히 기억나는 내 캐릭터의 대사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레이디 두아>의 미정을 상징하는 대사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사실 <레이디 두아>는 오디션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김진민 감독님이 오디션 현장에서 “네가 가진 걸 믿으면서 노력해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게 큰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로 이미 많은 걸 얻었는데, 미정을 연기할 수 있게 되자 정말 잘해내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