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증권의 비자금 카르텔을 포획하기 위해 20살 고졸 여사원으로 위장취업한 증권감독관 홍금보(박신혜)는 서울미혼여성기숙사 301호에서 세명의 여성 동료들과 우당탕탕 동거를 시작한다. 저마다 욕망을 감춘 이들 속에서 5살 난 어린이를 품에 숨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미숙이다. 홍금보의 비밀마저 남몰래 감춰왔던 김미숙의 온기는 배우 강채영 고유의 단단한 음성, 선한 눈빛, 유순한 입꼬리를 만나 완연한 입체성을 얻는다. <러브 미>의 편의점 알바생 원영, <다 이루어질지니>의 욕망의 화신 보경, <정년이>의 순진무구한 극단 단원 금희까지 경계 없이 활보하는 그의 손엔 무엇이든 되고 싶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주문이 있다.
- <언더커버 미쓰홍>을 기점으로 역할 이름이 아닌, 배우 강채영의 이름 세 글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미숙을 만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처음에는 노라 역할로 오디션 대본을 받았다. 그런데 당일 감독님이 어떤 느낌을 받으신 건지 “어색하게 웃어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이후 2차에서 미숙이라는 캐릭터로 다시 오디션을 봤다. 룸메이트들과 추석 음식을 차려서 “우리도 명절 챙겨야죠. 같은 집에 살고 같이 밥 먹으면 식구니까” 하던 장면이었다. 따뜻하고 평화 지킴이 같은 모습의 미숙으로 리딩한 기억이 난다. 오디션 최종 발표가 난 뒤에는 미숙을 최대한 담백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려 했다. 평소 나의 연기 지향점이 그런 편이다. 특정한 성향을 강조하기보다는 정말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처럼 그곳에 존재하고 싶다.
- 독특하고 도드라지는 세명의 룸메이트에 비해 미숙은 순수하고 차분하다. 다른 말로 평이한 캐릭터라고 평가할 수도 있기에 배우 입장에서는 이 지점이 아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미숙이가 비교적 잔잔한 성격인 건 사실이다. 인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마치 엄마처럼 ‘우리 미숙이도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왠지 다른 룸메이트들과 완전히 뒤섞이지 못하는 것 같네’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미숙이에게 세 친구와 함께 생활하는 건 그간 살면서 허락받지 못했던 행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행복한 놀라움. 그걸 조금씩 받아들여가는 미숙을 연기하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금보와 미숙의 과거사가 밝혀질 때 대본을 읽을 때부터 눈물이 가득했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친구가 사실을 그 누구보다 단단해졌어야만 하는 길을 걸어왔구나, 그 사실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그 슬픔이 미숙의 전부라고 해석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미숙이가 그럼에도 살아내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니까. 자기만의 투쟁이 있는 인물이다.
- 이렇게 메이킹 영상이 자주, 많이 올라온 작품도 많지 않다. 그만큼 언제 어디서 현장 영상을 풀더라도 늘 분위기 좋고 화기애애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최)지수는 뽀뽀 귀신이고 (박)신혜 언니는 잘 안 보이는 것까지 세세하게 챙기며 으쌰으쌰했다. (하)윤경 언니도 너무 웃기고. 거기에 봄이(김세아)까지 있으니 거의 놀이터였다. (웃음)
- 올해 <러브 미>에서 담담하고 차분한 편의점 알바생 원영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선한 이미지의 역할이 강채영을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담으로 그런 말을 종종 한다. 슬프고 고생하는 서사는 내가 다 받는다고. (웃음) 그런데 실제로 나는 캐릭터에 접근할 때 그가 지닌 결핍에서 출발하는 편이다. 인물의 슬픔에 감응하면서 캐릭터를 쌓다 보니 따뜻하고 포용적인 마음으로 체화하는 듯하다. 그래서 선한 캐릭터가 더 잘 드러나는 게 아닐까.
- 그렇다고 꼭 착한 인물만 맡은 건 아니다.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가영(수지)을 질투하다 폭발하는 역할을 소화하기도 했다. 내지르는 강채영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욕망의 항아리를 다 쏟아부었다. 보경이는 심층적으로 파고들기보다 정말 돌진했다. 욕망 캐릭터는 목표가 너무 명확하고 선명해서 생각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적은 편이다. 직선형으로 나아가는 게 더 적합하다. 반면 선한 캐릭터는 고려해야 할 많은 요소가 끼어 있다. 책임감, 감정, 억압과 한계. 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내는 힘까지. 양면을 오갈 때 연기 지점을 다르게 설계하려 한다.
- 뉴욕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어쩐지 독특한 경험을 했을 것만 같은데.
많은 재능인 사이에서 쪼그라들어 지냈던 시간이 양분이 된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고 돌아와 작아질 때 음성학 선생님이 학생들을 둥글게 세워서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 춤을 추게 하셨다. 호야야야~ 소리를 내면서. 용기가 나기보다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되더라. (웃음)
생생히 기억나는 내 캐릭터의 대사
미숙이 금보에게 남겼던 편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느 아침 봄이가 장미 이모와 함께 만든 인형의 집을 자랑하며 다섯 손가락을펼쳐 보이며 말했어요. ‘우리 가족은 다섯이야.’”
봄이의 말을 빌려 진짜 속마음을 전하는 게 마음 아팠는데 이 내레이션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미숙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해준 301호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서. 미숙이로서 이 마음이 너무 소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