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정명원은 2006년 검사가 된 뒤 지금까지 검사로 일하고 있다. 평검사 시기에는 형사부에서 금융, 조세, 환경, 의약, 소년 등 다양한 전담으로 일했고 공판부에서 성폭력, 마약, 살인 등 다양한 죄명의 사건에 관한 공소 유지 업무 또한 담당했다. 이력에 건조하게 적힌 이 말을 한권의 책으로 풀어낸 글이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은 사건 뒤에 있는 사람 이야기다. 뉴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만 골라내 스치듯 보도되었을 뿐이었던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던 사람이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말한다. ‘고등어 삼촌의 지하실 왕국’이라는 글이 그렇다. 피의자가 열 몇명쯤 되는 소년 사건이었다. 죄명은 공동폭행. 14살부터 16살의 소년들 사이에 37살의 피의자가 눈에 띄었다. 지역에서 ‘XXX 삼촌’ (이 책에서는 지역이 특정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등어 삼촌이라고 칭한다)이라고 불렸던 그는 회사 이름도 없이 ‘대표이사’라는 인적사항의 소유자였다. 그가 얻은 상가 지하 사무실에는 집을 나와 오갈 곳 없는 청소년들로 북적였다. 그 아이들에게 ‘삼촌’으로 통한 그는 아이들을 회유하고 협박해 폭행을 사주했다. 그가 입건된 것은 이미 여러 차례였지만 아이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한끼 식사와 담배와 잠자리가 필요했고 멀고 먼 판검사의 법보다는 고등어 삼촌이 지배하는 지하 사무실의 법칙이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1장은 담당한 사건들 이야기를, 2장은 직업으로서의 검사 이야기를, 3장은 시골지청 이야기를 담았다. 독자의 관심사에 따라 눈길을 끄는 부분이 제각각이겠으나, 1장만큼은 꼭 읽기를 권한다. 사건 ‘이후’를 상상하게 만드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세상의 뉴스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인간적 면모를 읽으며 감동하기에는 법조인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역으로 발령받은 검사가 생각보다 많이 보게 되는 죄명이 음주운전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대중교통도 대리운전도 없는 지역에서 “어쨌거나”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때문에 구속심사를 받으러 온 날도 술을 마시고 운전해온 사람이 있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일부러 교도소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연민을 넘어 혐오를 넘어, 법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 자주 서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불교에 조예가 깊던 한 선배 검사가 말했다. “검사 일이 다 업을 짓는 일이야. 밖에 막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는 일이 이게 보통 업이 아니야. 어느 날은 내가 아는 스님한테 물어봤어. 이 업을 어찌 해야 하는가요?” 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