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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일과 인간관계,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사람들은 흔히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며칠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삶을 ‘리셋’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식의 생활방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고들 말한다. 시골도, 깊은 산도 진정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기 때문일까. <나의 완벽한 무인도>가 바로 그 ‘모든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완벽한 로망을 펼치는 소설일 거라고 믿고 첫장을 펼쳤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함께 거론되는 <삼시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의 문구 역시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결론만 말하면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일군의 ‘떠나는 힐링’ 소설들과는 다르다.

이야기는 주인공 지안이 이미 무인도에 정착해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슨 사연으로 여자 홀로 무인도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걸까. 혼자 무섭고 고독하진 않을까. 뛰어난 신체 능력이 있어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척척 잡는 것도 아닌, 보통의 지안은 욕심을 덜고 그날 먹을 만큼만 취하는 자급자족으로 몇달째 무인도에서 지낸다. 그가 섬에 들어가며 챙긴 것은 ‘박완서 소설집, 휴대용 라디오, 반짇고리와 천’뿐이었다. 휴대전화도 무용지물인 섬의 시간은 생각보다 바지런히 흘러간다. 지안은 오늘 먹고 안전하게 지내는 일에만 집중하며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섬의 하루는 이러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바닷가로 나가 아침 채집을 마친다. 작은 솥에 혼자 먹을 분량의 밥을 지어 갯방풍과 미역으로 무침을 하고, 통발을 정리한다. 운 좋게 낚은 송어를 염장하고 나면 뉘엿뉘엿 해가 진다. 파도를 살피고 바닷속을 헤엄치는 지안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무인도의 삶이 꼭 특별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정한 시간표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계를 갖는 일, 그저 내려놓으면 되는 일이다. 충만하게 흐르는 무인도의 삶은 고요하고 따뜻하게,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내 일과는, 아침이면 바닷속에 들어가 전복을 따고 그걸 저녁에 볶아 먹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낚아 그걸 구워 먹는 식이야. 내 손으로 먹을 물을 구하고 텃밭을 일구면서, 소나무 숲을 가지치기해 올겨울 장작에 보탤 나무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지내. 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