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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아이돌 살인>

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음악방송 무대를 준비하던 남자 아이돌이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죽었다. 아이돌 그룹 ROME의 메인보컬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아 예능과 광고를 종횡무진 누비던 생기 넘치던 건아의 피가 무대 바닥을 카펫처럼 물들인 기이한 현장. <아이돌 살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최정상 아이돌의 시체를 살펴보는 젊은 형사 리애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선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연쇄선행마’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건아에 대한 탐문을 시작하자 리애는 그에 대한 온갖 악평부터 듣게 된다. 같은 멤버들조차 그를 ‘이중인격자에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꼬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한다. 사건의 용의자 역시 아이돌이었던 일라, 세실, 맑음인데 인물들이 가수, 매니저, 소속사 대표 등과 같은 연예계 종사자들이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이 샅샅이 드러난다. 아이돌에 문외한인 주인공 리애와 달리 그의 파트너 경원은 오랜 세실의 팬으로 웬만한 연예 전문 기자보다도 빠삭한 지식을 자랑한다. 덕분에 수사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역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이게 된다. 또한 각 아이돌 캐릭터를 뚜렷하게 구축해놓아, 실제 아이돌 이름조차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도 이들만큼은 실존하는 듯 느낀다. ‘건아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걸요?’라는 평가를 듣는 톱 아이돌의 죽음, 모두의 우상이었던 피해자의 실체와 함께 사람이 상품으로 둔갑되는 가요계 전반의 모습은 특수한 업종에 대한 환상을 속 시원히 까발림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뒤흔든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민 작가는 “어렸을 때는 아이돌이 되어 무대에 서는 꿈을 꾸었는데, 대신 아이돌과 살인을 엮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줄 전혀 몰랐다”고 작가 후기에 밝힌다. 관심 있고 잘 아는 이가 집요하게 취재하고 구축해낸 세계는 숨 쉴 틈 없이 흥미롭다. 밝은 면만 강조되는 연예계에서 “너는 성공하고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뭐든지 참아야 한다”고 강요당하는 아이돌 역시 그저 아이들일 뿐임을, 모두가 외면해온 산업의 그림자를 젊은 감각으로 엮어낸 미스터리소설.

데뷔하고 나서는 캐릭터다 세계관이다 염불을 외면서 내 자아를 타인이 정해놓은 대로 가둬놓으려고 해요. 물론 그게 본래의 자기 성격이랑 딱 맞을 수도 있고, 아이돌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이미지 구축이 필요한 직업이라 아예 없으면 곤란하죠. 하지만 사람이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209~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