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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간만에 하루 정도 휴식이 주어지면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 한숨부터 나왔던 밀린 일들을 무사히 해내고 드디어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휴식! 그런데 그 휴식이 하루에서 이틀, 일주일이 되면 휴식의 단맛이 쓴맛으로 바뀌고 불안함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왜 일이 없지? 일이 있는데 내가 깜빡하고 놓친 건 아닐까? 이러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충분한 휴식을 누리면 되건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책감이 동반된다.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 완전히 잊히는 거 아니야? 그저 뒹굴뒹굴 놀기만 해도 불안감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마 대다수는 기약 없는 휴일을 받으면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자기계발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조니 선은 처음 집필한 그래픽노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의 시나리오작가로 에미상 후보에도 오르며 일러스트레이터, 프로듀서, 설치 예술가와 연구원으로도 명성을 떨치는, 그야말로 ‘갓생러’다. 재능이 많아서인지 너무 많은 일에 투입되어 있던 작가는 번아웃이 심해져 1년 만이라도 정신적으로 푹 쉬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그런데 쉬려고 하니 우울증이 더 심하게 왔다. 그래서 조용할 때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에세이와 그림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다. 드디어 쉬게 되었을 때조차 글을 써서 한권의 책으로 내다니.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점프해 서핑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유유자적하며 진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그런 내용은 아쉽게도 이 책에 없다. 작가는 바다에 뛰어드는 대신 주변을 유영하며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본다.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의심하고 불안의 수렁에 빠져들어 그 일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마감일이 있어야만 마음이 평온해지던 일중독자는 어떻게 자기 성찰을 시작했을까. 식물을 지켜보고 그리며, 자기 밖의 존재들에 감사함을 채집해간 기록을 읽으며 작가의 마음속에 풍덩 빠져드는 것도 이 여름 꽤 괜찮은 휴식법이 될 것이다.

나는 행복할 때 슬프고 절망적인 생각에 가장 잘 휩쓸린다. 행복이 와 있다면 언젠가 가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곤두박질치면서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