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지난 7월23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싱숑 작가가 쓴 원작 웹소설의 팬들부터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까지 오랜 관심을 받아온 대작답게 영화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감상의 초점은 대개 원작과의 비교에 맞춰져 있다. 각색 프로젝트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에 이은 신작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좀더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을 받고 있다는 김병우 감독에게는 그 이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시각화라는 과제 앞에 그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 <씨네21>이 귀를 기울였다.
- 언론배급 시사회 직전까지 후반작업을 했다.
VFX 숏들을 다시 보고 사운드 믹싱도 한번 수정했다. 시간을 들일수록 좋아지는 부분이니까.
- 2020년에 <전지적 독자 시점> 연출을 제안받고 마음을 정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2019년에 판권을 산 것으로 안다. 단행본과 웹툰이 나오기 전이었고, 웹소설도 완결되기 전이었다. 보통 제작사에서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할 때는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작사에서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 소설을 출력해서 택배로 보내줬다. 첫 페이지를 본 순간 빠져들어서 일주일 사이에 모든 분량을 다 읽어버렸다. 이야기는 너무 재밌는데 내가 알고 있는 영상문법으로 풀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그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홍수> 작업으로 인해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여러 편의 에피소드로 된 드라마나 OTT 시리즈가 아닌 한편의 장편영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을 구현한다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영상화를 처음 논의할 시점에는 OTT 시리즈라는 옵션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다. 영화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던 시기였다. 게다가 회당 제작비 상한선이라는 게 있어서 에피소드 형식으로 가면 한편의 장편영화보다 퀄리티가 낮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영화에서는 독자의 노력과 의지가 좀더 보였으면 했다”
- 원작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영화화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을 텐데.
한편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의 볼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있으니 어디까지 영화화할지 정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금호역에서 끊어버리면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만 느낌이고, 충무로역에서 대단원을 맺어야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담을 수 있다고 봤다. 영화 한편이 가져야 하는 시퀀스의 수, 공간의 수라는 게 규범화되어 있으니 그걸 헤아려보더라도 금호역은 모자라고 충무로역에서 더 가면 넘친다. 내게 더 어려운 문제는 이 영화에 실제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 실사화로 인한 이질감을 말하는 건가.
단적인 예로 소설 속 대사를 배우가 말할 때 느껴질 법한 간극이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문어체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지 않나. 영화에서는 활자가 아닌 목소리로 대사가 전달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이 말했을 때 이질적이지 않은 대사를 쓰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현대 판타지 액션 장르로 분류되지만 사실 장르는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겉표지에 가깝다. 도깨비가 나타나 인간에게 시련을 주니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면밀히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판타지’이기 때문에 자칫 이야기의 본질이 가려지거나 유치해 보일 수 있겠다는 고민이, 각본 작업을 할 때부터 사운드 믹싱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얼마나 현실적이어야 하나, 얼마나 판타지스러워야 하나. 이 두 가지 질문이 카메라를 잡을 때도, 음악을 넣을 때도 따라다녔다.
- 고민을 타개하기 위한 묘안이 있었나.
인물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지점을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외에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등의 과거도 지나가는 내레이션을 통해 살뜰히 챙기고 싶었다. 조심스럽지만 원작에서 조금 아쉬웠던 지점이 있다. 독자가 소위 말하는 먼치킨물에서처럼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전개를 연재물에서 볼 때는 재밌고 통쾌하지만,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남발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기 힘들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개인간의 갈등을 극복해 곡절을 뛰어넘으려는 독자의 노력과 의지가 좀더 보였으면 했다.
- 그래서 초입부터 여러 설정상의 변화를 준 건가. 일례로 원작에서와 달리 영화에서는 독자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을 쓴 작가 tls123에게 ‘이 소설은 최악’이라는 평을 남긴다. 그러자 tls123이 독자에게 결말을 다시 써보라고 한다. 작품 전체의 방향성이 달리 읽힐 수 있는 과감한 각색이다.
원작에서는 tls123이 독자에게 <멸살법>의 텍스트 파일을 전달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많은 문자를 시각적으로 노출시키기가 어렵다.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 긴 글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소설에서는 가능한 설정이지만 영화에서 구현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설정이다. 그리고 독자가 <멸살법>을 이미 수차례 읽었다면 텍스트 파일 없이도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tls123의 tls를 한글로 타이핑하면 ‘신’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해당 시점에서는 이 작가를 신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도입부의 변화는 신이 내게 해줄 법한 말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 원작의 주요 인물인 한수영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가 원작에 한수영이 등장하기 이전 시점의 줄거리를 다루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도 개봉 전부터 여러 추측이 있었다.
사실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해 받는 질문의 근간이 모두 원작과의 차이점에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각본을 쓰던 시기보다 원작이 더 많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지금까지는 내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원작이 있는 가운데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거기에서 오는 이점도 있지만 감독으로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의 입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각색에만 맞춰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쉽다.
게임보다 자주 떠올린 놀이공원의 이미지
- 전혜진 촬영감독은 <헤어질 결심> <거미집> 촬영팀을 거쳐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촬영감독 데뷔를 한 새 얼굴이다. 어떻게 만났나.
미술, 무술, VFX는 경력이 많은 분들이 맡더라도 이를 찍는 촬영감독은 새로운 시선을 가진 젊은 분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촬영감독으로도 오래 활동해온 <감시자들> <백두산>의 김병서 감독에게 몇분을 소개받았고, 전혜진 촬영감독이 그중 한명이었다.
- 그에게 촬영을 맡기기로 결심한 과정도 궁금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이해와 통찰,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분 나름의 계획을 확인하고자 한 가지 질문을 드렸다. ‘만약 이 영화를 하나의 렌즈로 찍어야 한다면 몇 밀리미터(mm) 렌즈로 찍을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이 내 생각과 거의 같았다. 실제로도 영화의 7, 8할을 그 렌즈로 찍었다.
- 답이 무엇이었나.
21mm 와이드 앵글 렌즈. 가급적이면 렌즈의 개수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드린 질문이었다. 영화에 CG를 포함한 시각적 요소가 다양하기 때문에 카메라라도 단순화해야 화면이 통제될 것 같았다.
-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 숏들이 굉장히 많다. 전작 <PMC: 더 벙커>는 FPS 게임 같은 연출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RPG를 연상시키는 1인칭 숏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원작의 설정을 따른 결과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게는 이런 화면이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많이 덜어냈다. 게임보다 자주 떠올린 건 놀이공원의 이미지다. <전지적 독자 시점> 콘티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생긴 롯데월드에 가본 기억을 떠올리며 롯데월드 테마송을 들었다. 다른 놀이동산과 다르게 롯데월드는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입구에 올라섰을 때 눈이 돌아갔다. (웃음) 이 놀이기구도 타보고 싶고, 저 놀이기구도 타보고 싶고…. 그때의 흥분이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영화에 표현되기를 바랐다. 놀이기구를 탈 때 느낄 법한 공포와 긴장감도 마찬가지다. 위험해 보이지만 안전장치가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재미가 있지 않나. 이렇게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재미를 관객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 지하철 역사를 맵으로 조망하는 듯한 부감도 인상적이었다. 앞서 판타지와 현실의 균형을 고려했다고 했는데, 그런 숏이 끼어드는 순간 양쪽을 오가는 쾌감이 일었다.
따지고 보면 그 순간은 모든 인물이 땅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장면이 초반에 길영(권은성)이 들고 나왔던 개미집과 겹쳐 보이길 바랐다. 독자가 개미를 보는 시선과 성좌가 인간을 보는 시선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VFX로 구현할 수 있는 어룡의 뱃속도 일일이 세트로 만든 이유를 듣고 싶다.
금호역에 가본 사람은 많지만 어룡의 위장 속에 들어가본 사람은 없다. 배우에게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으니 배우가 걷다가 발이라도 빠질 수 있도록, 바깥에서 불빛이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원통으로 된 공간을 최소한으로라도 구현하고 싶었다. 땅강아쥐 제사장 시퀀스도 어려웠다. 모든 면에 중력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우니 스케이트보드장처럼 U자에 가까운 둥근 공간을 만들어 뒤집고 돌려가며 찍었다.
- 어룡, 화룡, 땅강아쥐 등이 홀로그램처럼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을 가졌다. 크리처 디자인에 있어 일관된 컨셉이 있었나.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괴물’이라고 느껴질 법한 모양새를 갖춰야 했다.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는 비비드한 컬러감을 활용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화룡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전형적으로 보였으면 했고, 그게 변신한 버전은 공격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하게 보였으며 했다. 팔과 머리가 없는 승리의 여신 니케상에서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 <전지적 독자 시점>은 <더 테러 라이브>에서 보여준 좁은 공간에서의 박진감, <PMC: 더 벙커>에서 보여준 게임과 같은 몰입감을 큰 규모로 배가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김병우의 필모그래피에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그동안 스릴러 밖의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판타지를 다룰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도 처음이었기에 배우들을 믿으면서 작업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도전하면서 얻은 재미가 확실히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출자로서 나름의 확장을 거쳤고, 쓸데없는 고집을 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좀더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