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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압도하는 스토리의 세계는 이렇게 확장되었다 – 웹소설 IP의 역사와 특징

<김비서가 왜 그럴까>부터 <전지적 독자 시점>까지, 웹소설 IP의 역사와 특징

<선재 업고 튀어>

‘웹소설’은 2013년 1월 처음 등장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연재 플랫폼 ‘네이버 웹소설’을 론칭하며 웹소설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다. 웹소설이 생소하지만 그 개념만은 낯설지 않은 독자라면 세기말 PC통신을 통해 연재된 <드래곤 라자>(이영도), <퇴마록>(이우혁), 2000년대 초반 귀여니를 위시해 만들어진 각종 인터넷소설을 연상할 법하다. 웹소설은 용어 사용이 12년 남짓 되었을 뿐 지난 30년간 이어진 인터넷 문학사에 근간을 둔다. PC통신 소설부터 웹소설까지. 인터넷을 플랫폼 삼은 소설은 크리처, 빙의, 환생, SF 등 기존 한국문학이 소화하지 않은 소재를 서사화하며 영상 제작사가 눈독을 들일 만한 IP로 자리잡아 왔다.

웹소설 IP의 영상화 시작 시점은 연구자마다 시기를 달리한다. 인터넷소설을 웹소설의 원류로 보는 이들은 견우74의 PC통신 소설을 영화화한 <엽기적인 그녀>나 김유리의 인터넷소설을 드라마화한 <옥탑방 고양이>를 웹소설 영상화의 시작으로 본다. 웹소설 연재 플랫폼 로망띠끄에 연재된 <해를 품은 달>이 MBC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2012년을 웹소설 IP 영상화의 태동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만약 웹소설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로 시기를 한정한다면 초창기 네이버 웹소설에서 인기를 얻은 윤이수의 <구르미 그린 달빛>과 이를 영상화한 동명의 2016년작 드라마를 영상화의 기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질문을 달리해 웹소설의 영상화라는 IP 확장을 폭발시킨 계기를 묻는다면, 누구나 2018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라고 답할 것이다. 정경윤 작가가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한 원작 웹소설은 2014년 카카오페이지에 로맨스 부문 매출 1위, 누적 조회수 5천만뷰를 달성했고, 2016년 재창조된 웹툰 또한 누적 조회수 2억뷰, 구독자 수 580만여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모든 인기작이 영상화되었을 때 동일한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드라마화 결정 이후 원작의 팬덤을 적극 활용했고, 이는 작품의 팬덤이 IP 확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드러낸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방영 전 소설의 연재처인 카카오페이지는 작품의 독자를 대상으로 팬클럽 ‘최강비서단’을 직접 결성했다. 또 드라마 방영 기간 동안 유저 수 100만명, 드라마 관련 댓글 10만개를 돌파할 시 최강비서단의 이름으로 작품 촬영 현장에 커피차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검증된 IP의 최대 장점인 원작 팬덤을 그대로 드라마의 팬덤으로 유입한 것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드라마의 성공 이후 원작 웹소설로 유입되는 이용자 비율이 늘어나는 환원 효과까지 누렸다. 이후 웹소설을 원천 IP로 확보해 작품을 제작하는 현상이 시리즈 시장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 “입봉을 꿈꾸는 신인 작가들이 웹소설용 아이템의 대본화 작업을 제작사로부터 요청받거나, 직접 자신이 보유한 스토리를 웹소설로 미리 써서 IP를 선확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졌다.” <그녀의 사생활> <진심이 닿다> <사내맞선> <시맨틱 에러>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로맨스 드라마는 모두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영향 아래 나온 웹소설 IP 시리즈다.

<중증외상센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메가 흥행을 거둔 작품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일련의 경향성은 존재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인 동시에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2위(26.9%)를 기록하며 종영했고, <선재 업고 튀어>는 변우석, 김혜윤이라는 청춘 주연배우의 탄생을 알린 데 이어 방영 내내 <소나기> 등의 사운드트랙을 음원 차트 상단에 안착시키고 각종 화제성 지표를 독식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tvN 월화 드라마 역대 평균 시청률 1위를 등극한 동시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한국 시리즈 최초로 글로벌 TV쇼 부문 일간 순위 1위를 네 차례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길호 PD가 연출로, 손자영 스튜디오드래곤 PD와 이상화 CJ ENM 글로벌콘텐츠제작팀 PD가 책임프로듀서(CP)로 합류한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흥행하자 한국판이 다시 일본에서 역주행하는 현상을 낳았다.

세 작품은 웹소설의 흥행 공식인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을 전면에 내세운다. 회귀와 환생의 제1 목적은 해원이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다른 시대로 환생하거나 유산자에 빙의하는 길뿐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은 ‘이생망’, ‘수저계급론’ 등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비관으로 가득한 젊은 시청자를 자극한다. 자신을 죽인 재벌가의 막내 손자로 환생해 1987년부터 새 삶을 시작하고(<재벌집 막내아들>), 친구와 남편에게 목숨을 잃은 후 10년 전으로 회귀해 복수를 다짐한다(<내 남편과 결혼해줘>). 혹은 나를 살게 한 스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기도(<선재 업고 튀어>) 한다. 시간을 되돌려 새 인생을 도모해보겠다는 욕망은 만고불변의 화소지만 웹소설은 회빙환을 단순 모티프를 넘어 하나의 장르로 굳혔다. 회빙환의 개연성 여부나 필연적으로 따라올 핍진성의 부재를 누구도 지적하지 않고 그저 수용하기 때문이다. 웹소설 IP 시리즈는 회빙환의 전제인 타임슬립을 통해 시대극을 만들어낸다. 회빙환 자체가 젊은 시청층의 당대적 요구를 충족하는 코드라면 이에 더해지는 시대극적 속성은 보다 다양한 연령, 성별 층의 시청자가 각기 다른 소구점으로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통합의 장을 마련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하는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의 격동의 정치사회사나 <선재 업고 튀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회귀 시점에 유행하던 대중문화를 노스탤지어로 활용한 경우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한편 웹소설 IP의 시리즈화에서 강조되는 또 다른 속성은 게임 판타지다. 영상화가 예정된 <나 혼자만 레벨업> <취사병 전설이 되다> 등은 온라인게임의 레벨 업 시스템을 서사 내 동력원으로 보상하거나 롤플레잉게임의 스탯과 같은 상태창을 활용하며 게임 판타지를 텍스트로 재현한다. 이는 회빙환 도식과도 연관된다. 주인공에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플레이어가 게임 중 사망 시 모든 정보값을 리셋한 채 다시 라운드를 시작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상태창은 이야기의 모든 설정을 수치와 용어로 가시화한다. 암시나 복선 대신 인물의 목표를 명시하는 셈이다. 올해 큰 성공을 거둔 <중증외상센터>가 의료진 파업, 네이버웹툰 논란 등의 이슈를 잠재우고 성공한 이유도 게임 판타지에 있다. 매 에피소드 백강혁(주지훈)과 의사들이 사수하는 골든타임이 게임의 퀘스트처럼 제시되고, 작중 배경은 정밀한 의학적 고증에 의한 수술 현장이기보다는 각 캐릭터가 자신의 분명한 능력치를 설정값 삼아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는 스테이지에 가깝다.

<전지적 독자 시점>

위 흐름에 입각해, 싱숑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흥행 성과와 평가는 웹소설 IP 확보를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한 콘텐츠 시장에 새로운 논의거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막강한 독자층을 보유한 메가 웹소설을 시리즈가 아닌 영화화한 최초의 사례는 그 자체로 시장성을 가늠해보는 새 시료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게임의 공식 아래 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이들에겐 능력치에 입각한 명백한 설정이 제시된다. 여기에 회귀를 작중 유중혁(이민호)의 주요 스킬이자 정서적 동인으로 부여한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의 영상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웹소설은 영화보다 시리즈의 포맷에 어울리는 원천 IP일까. 웹소설의 코드는 ‘영화적 속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전지적 독자 시점>이 취한 전략이 웹소설 원작의 영화제작 소식은 공식 보도되지 않는 시장에 어떤 담론을 제공할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