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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는 곧 새롭게 탄생할 거야, <남편이 회귀를 숨김 그래서 나도 숨김> 설이수 작가

누적 조회수 2억2천만회를 기록한 밀리언페이지 <세이렌: 악당과 계약 가족이 되었다>(이하 <세이렌>)가 뮤지컬화한다는 소식이 많은 기대를 모았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게 했다는 세이렌 신화처럼, 주인공 아리아는 신비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로맨스 판타지이기에 가능한 IP 확장은 웹소설과의 협업을 반기는 콘텐츠 산업에 새로운 선례로 우뚝 선다. 그리고 지난 6월 연재를 시작한 차기작 <남편이 회귀를 숨김 그래서 나도 숨김>(이하 <남숨나숨>)은 순애적이고 동시에 광기 어린 절절한 로맨스다. <남숨나숨>은 또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 믿는 설이수 작가에게 긴 질문을 건넸다.

- 차기작 <남숨나숨>은 웹툰으로 프롤로그를 열었다. 보통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나만의 상상을 펼치는데, 웹툰으로 이야기를 열어주니 그다음 화부터 인물의 외형이나 공간적 환경이 결정되어 상상되더라. 독자로서 헷갈리지 않아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같은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는 회귀자.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소재이기도 하다. 같은 시간을 계속 반복한다는 설정은 자칫하면 독자들에게 반복의 피로를 안겨줄 수 있고 작가인 나조차 그 루프 안에 갇힌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야기를 다르게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두 주인공의 서사와 감정선이 느슨하게 전달되지 않도록. 그렇게 선택한 게 웹툰 형식의 프롤로그다. 웹소설과 웹툰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매체지만 의외로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다. 웹소설이 내면을 말한다면 웹툰은 표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이 겹칠 때 언어만으로 닿지 않던 감정이 시각적으로 터져나온다.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 2022년 <세이렌>으로 이다혜 기자와 트위터 스페이스를 진행하던 당시, “장면 분위기에 맞는 노래나 영상을 틀어놓는다”고 했다. 이번 <남숨나숨>은 주로 어떤 음악을 들었나.

이번에는 가수 이하이의 <구원자>를 정말 자주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때로는 구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랑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이중성이 이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인물들 내면에 켜켜이 쌓인 감정을 대신 꺼내주는 것만 같다.

- 특히 회귀 후 여자주인공 오델리의 변화가 눈에 띈다. 억압에 짓눌린 피해자로서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던 과거와 달리 회귀 후의 오델리는 스스로 일어나 상황을 빠져나온다. 루드빌을 향한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면서 자기 구원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오델리를 변화시킨 건 결국 사랑이다. 삶을 통째로 뒤바꾸는 깊은 사랑.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닌, 스스로 걸어나가는 인물이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건 그가 가진 본질적인 강단이기도 하다. 오델리는 오랜 상처를 끌어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감정과 서사를 글로 옮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숙고가 필요했다.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란 인물이다.

- 설이수 작가를 밀리언페이지 작가로 등극시킨 <세이렌>이 내년 뮤지컬로 선보일 예정이다. 원작자로서 해당 작품이 뮤지컬과 잘 어우러질 거라고 판단한 지점은 무엇인가.

<세이렌>의 뮤지컬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믿기지 않으면서도 너무 기뻤다. 마음을 담아 써내려간 이야기가 누군가의 목소리와 몸짓, 음악과 무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정말 영광스러웠다. 무엇보다 노래로 감정을 전하는 주인공이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아리아의 능력이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고통받는 이웃,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도 뮤지컬 작품에서 자주 다뤄지는 희생과 이타성, 공동체적 가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서가 무대라는 공간과 음악이라는 언어 위에서 풍성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 많은 영화, 드라마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이 작가님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궁금하다.

내가 처음 출간 제의를 받았을 당시 종이책으로 단행본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책이 몇권 나왔느냐’가 웹소설 작가로서 하나의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불과 몇년 사이에 웹소설이라는 매체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했다. 웹툰화부터 영화·드라마·광고·뮤지컬까지 다양한 형태로 쏟아지고 있다. 작가로서 이 모든 변화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벅차다. 그 뒤에는 많은 창작자들의 노력과 치열한 고민이 있다. 지금 이 흐름은 그들의 헌신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우리가 쌓아올린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 IP로서 웹소설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핵심 감정과 서사 구조가 매우 분명한 장르다. 이야기의 본질이 선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다시 태어날 여지가 많다. 웹툰으로 옮겨질 때에는 시각적 상상력이 더해지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인물의 호흡과 감정이 입체화되며 뮤지컬에서는 감정이 음악으로 번역된다. 웹소설이 지닌 간결함과 속도감, 장면 중심의 구성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 웹소설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문장이 비교적 짧고 간결한 특성을 두고 하위문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문장이 길고 수식적이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작용한 듯하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만이 지닌 탐미적인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짧고 간결한 문장의 힘을 여백의 미라고 생각한다. 전하고 싶은 말이 열이라면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두셋만 남기고 나머지는 감추는 것이다. 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여운. 그 여운에서 비롯한 아쉬움과 신비로움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여백은 독자들의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짧은 문장은 그 자체만으로 탐미적인 언어 형식이 될 수 있다. 드러내기보단 감추고, 설명하기보단 느끼게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