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갑자기 유료 서바이벌 시스템으로 돌아선 날, 군인 이현성은 지하철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제복을 입은 그에게 무정부상태의 혼란을 잠재우는 임무가 주어질 듯하지만 이현성은 세상을 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그는 섣불리 행동하기보다 생각에 잠긴다. 강철검제 이현성 역을 소화한 배우 신승호의 신중함은 그래서 역할과 닮았다. 배우 신승호는 질문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감각과 경험을 붙잡을 말을 조심스럽고도 즐겁게 골라냈다.
- <전지적 독자 시점>의 이현성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나.
강인한 힘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라 내가 가진 신체적 장점을 통해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 좋았다. 과거 트라우마를 헤쳐나가려는 근성이 있고 동료들로 인해 다시 한번 힘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극복되는 장면은 속이 시원했다.
- 캐릭터 표현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나서 기동성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이 캐릭터의 매력이다.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인물인데 외적 모습에서 누가 보더라도 커다란 바위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캐릭터 표현에 있어 이현성과 내가 닮은 점이 있다는 걸 장점으로 여겼다.
- 몸을 많이 쓰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인상이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는 합이 짜인 액션보다 정적인 액션을 자주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타격하는 액션이 가장 적었던 것 같다. 힘을 쓰는 인 물이니 합을 맞춘 액션이 적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 아포칼립스물에서의 직업 군인 역할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
연기를 하면서 경험한 작품 중 후반 CG가 많다 보니 촬영장에서의 기술적 난도가 가장 높았다. 현장에 실재하지 않는 것과 다투고 겨루는 상황에서 몸짓과 감정, 표정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또 단체 액션신이 많았는데 결과물에서 잘 맞아떨어지는 게 중요하니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각자의 마음을 모아 테이크를 연기해나갔다. 개인적으로도 배움의 시간이었고 그래서 몸이 고되고 힘들었다기보다 어려웠다고 여겼다.
-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내 피부가 하얀 편이라 촬영장에 가면 온몸에 흑탄을 바르는 게 일이었다. 분장팀에서 특수제작한 ‘현성 로션’을 그을린 피부처럼 보이도록 드러나는 부분에 다 발랐다. 여럿이 수고롭게 발라줬고 촬영하다 지워지면 다시 바르고 했다. 의상에 묻기도 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몰골이 지저분해지니 자연스러웠다. 이 로션은 지우기가 쉽지 않아 현장에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 분장하는 게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던 현장이었다.
- 약자를 보호하는 데 힘써서 그런지 영화에서 생각보다 길영(권은성)과 함께 있는 장면이 많았는데.
아이들을 워낙에 좋아한다. 촬영장에서도 권은성 배우와 같이 장난치고 놀았다. 그가 있어서 나뿐 아니라 현장의 모든 사람이 힘들어도 조금씩 더 웃게 된 것도 있다. 나는 권은성 배우가 꼽은 현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1위를 한 적도 있다. 금세 다른 사람에게 순위를 넘기긴 했어도 배우 사이에서는 단연 내가 1순위였다
- 축구선수와 모델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스포츠 플레이어의 포지션은 플레이 성격을 따라가지 않나. 배우로서는 어떤가.
축구는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 명의 집념이 맞부딪히는 스포츠다. 나는 최후방 수비수였으니 최전방 공격수와 혈투를 벌여야 했고 현역 선수 시절 내 기질은 사나운 편이었다. 지금은 배우로서 고집도 분명히 있지만 그 고집을 지킬 줄도 알면서 가차 없이 버릴 줄도 아는 것 같다. 특정 이미지가 강한 연기자라면 그것에 한계 지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유연함은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 영화 필모그래피는 로맨스로 시작해 점차 강렬한 장르를 선택하고 있다. 관객과 배우로서 좋아한다고 여기는 영화는.
따뜻한 영화를 좋아한다. 선뜻 고르기 어렵지만 <노팅 힐>이나 <파일럿> 같은 영화도 좋아하면서 <조커>나 히어로 장르도 좋아한다. 일부러 의미를 담으려 하지 않아도 오래 남아 다시 꺼내보고 음미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표현이 들어맞을지 모르지만 나 역시도 그런 맛있는 영화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