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가 분한 <전지적 독자 시점> 속 유중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개념은 주인공이다. 무릇 주인공이란 세계의 운명을 짊어졌지만 자기 앞에 놓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숭고한 길을 걷는다. 유중혁 역시 다르지 않다. 다수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이민호 또한 유중혁을 “자칫 허무주의에 매몰될 수 있는 캐릭터”지만 “권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여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남자”라 정의했다. 하지만 이민호가 유중혁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설정 그 너머에 있다. “유중혁은 예정된 비극 앞에 최선을 감내하며 ‘그다음’을 만들어간다. 유중혁을 연기하며 그와 닮아가고 싶었다.”
- 2020년대의 배우 이민호는 글로벌 플랫폼이 제작한 시리즈 <파친코>의 두 시즌과 VFX가 주요한 SF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를 거쳤다. 다양한 장르와 촬영 환경을 경험한 이후 <전지적 독자 시점>에 합류했는데.
<파친코>를 거치며 연출자와 깊이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번 현장에서도 김병우 감독님과 치열하게 소통했다. 느낌표 마무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가 파생되는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가길 선호하고,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꼬리에 꼬리를 문 물음표가 곁에 남아 가볼 수 있는 곳까지 이르길 추구한다. 현장에서 명확히 콘티대로 촬영을 일찍 마친 날이 생기면 더 할 수 있는 요소를 찾으며 질문을 던졌다. 더 좋은 무언가를 계속 고민했다.
- <전지적 독자 시점> 또한 <파친코>에 이어 숏 안에서 단독자로 존재하는 배우 이민호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파친코>의 경우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한수답게 존재했다. 아무도 개의치 않은 상태에 나를 놔뒀다. 반면 유중혁을 연기할 땐 억지로 자신을 고립시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세계관 안을 떠돌다 홀로 된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유중혁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신조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태도다. 하지만 내심 멸망한 세계에서 희망으로 자리할 동료를 간절히 찾았을 터다. 그래서 김독자(안효섭)가 등장했을 때 그가 동료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픈 마음이 컸을 것이다.
- 유중혁은 설정 자체가 ‘소설 속 주인공’인 주인공이다. 주인공 연기에 요구되는 캐릭터의 자질이 있었나.
<전지적 독자 시점>은 김독자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야기다. 이 점을 기획 단계부터 감독님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주지했다. 김독자가 명확히 보여야 이야기가 유중혁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유중혁의 이야기가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중혁에겐 분명 주인공이 지닐 법한 독보적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가 이 작품을 선택한 여러 이유 중 하나지만 ‘멋지다’로 일축되는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존재 자체에서 아우라가 흐른다고 해석했다.
-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여정을 들려준다면.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몸짓 하나에 주인공의 무드가 흘러나오는 수밖에. 이런 세계관 속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은 기본적으로 고요함을 탑재했을 것이라 봤다. 사실 내가 정의한 유중혁의 한줄 평이 있다. “고요 속에서 고요가 요동친다.” 고요의 내부로부터 출발한 파문(波紋)이 있고 파문의 중심에서 엄청난 파장이 새어나오는 캐릭터다. 그 파장이 발현되려면 역시 2편이 나와야 한다. (웃음)
- <시티헌터> <강남 1970> <바운티 헌터스: 현상금사냥꾼>을 포함해 수많은 작품에서 액션배우의 면모를 자랑했다. 이번 <전지적 독자 시점>의 유중혁 역시 액션 고수의 풍모를 풍기는 캐릭터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자신할 수 있는 ‘이민호표 액션’이 있나.
<별들에게 물어봐>를 거의 1년간 찍어서 그런가. <전지적 독자 시점> 현장에서 무리 없이 와이어를 탔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액션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보다 이른 시일 내에 진한 액션을 하고 싶다. <올드보이>나 <갱스 오브 뉴욕>처럼 인물의 처절한 몸부림이 곧 서사가 되는 작품 말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이민호표 액션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직 보여드릴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