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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자에 스며들다, 배우 안효섭

홀로 읽는 사람.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김독자는 이름 그대로 살아왔다. 장기간 애독한 소설이 완결을 맞이한 시점까지는. 그가 더이상 혼자일 수 없게 된 순간은 나만 알던 이야기가 3차원의 입체를 갖추고 모두의 눈앞에 재현될 때부터다. 혼돈에 빠진 지하철 안에서 그는 오래전 자신을 살린 문장들을 되뇌며 주변을 살핀다. 읽는 사람에서 잇는 사람으로 나아간다.

그 도약을 구현한 이는 배우 안효섭이다. <사내맞선> <너의 시간 속으로> 등의 드라마 출연,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목소리 출연을 통해 환상이 스민 인물을 대범하게 설득한 그는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다시금 제안한다. 늘 똑같아 보이던 일상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선을. 그러기 위해 피땀을 바쳤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이 영화를 스스로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완성했다.

- 독자는 군중에 섞여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자 현실이 되는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을 완독한 유일한 사람이다. 평범함에서 특별함으로 단숨에 나아가 극을 이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을 법하다.

사실 독자가 특별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로서는 독자가 가진 보편성을 살리는 게 숙제였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키가 얼마나 큰지를 떠나 무리에 섞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했다.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를 생각하면서 시선처리, 표정, 말투부터 옆 사람을 의식하는 정도까지 하나하나 신경 썼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주인공이 주인공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내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끌리기도 했고.

- 그래도 소설과 독자가 맺은 관계만큼은 각별하다.

그래서 <전지적 독자 시점>이 독자라는 인물의 철학적 여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는 소설을 보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혼자였다. 그런데 여정이 시작되고부터는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도 함께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한다. 회의감에 휩싸여 있던 독자가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기도 하다.

- 드라마 <사내맞선> <너의 시간 속으로> 등의 전작도 원작이 있었다. 큰 사랑을 받은 원작을 각색한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어떤 편인가.

지금 내 눈앞에 주어진 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당연히 원작을 참고해야겠지만 그로 인해 시나리오의 흐름과 맞지 않는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이번에도 안효섭의 김독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만 계속 고민했다.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집중해서 촬영했다. 피땀을 다 쏟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게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 판타지 사극 <홍천기>를 찍으면서 마블 유니버스의 모든 배우를 존경하게 됐다고. <전지적 독자 시점>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할 일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 노하우가 생겼나.

나도 이번에 배운 것인데, 배우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그래픽이 상호작용해야 매끄러운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더라. 현장에 계신 CG 엔지니어 분들과 한컷 한컷 세세하게 대화하면서 디테일을 잡아갔다.

- 며칠 전 공개된 제작기 영상을 보니 푹신한 매트와 풍선들로 제작된 어룡 뱃속 세트에서 움직이기가 무척 까다로웠을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실지 몰랐다! 후반작업으로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지만 실제 같은 세트에서 연기하니 몰입하기 좋았다. 풍선 위를 걷기가 불편했는데, 그마저도 어룡의 뱃속을 돌아다니는 불편함을 표현하기에 수월하게 작용했다. 위장을 찌르면서 벽에 매달리는 게 특히 힘들었다. 독자의 고생을 피부로 느끼면서 촬영한 결과가 화면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아, 어룡의 식도를 따라서 쭉 내려가는 장면도 엄청 큰 슬라이드를 탄 것이다! 경사가 심해서 실제로 소리를 지르면서 찍었다. (웃음)

- 어느덧 데뷔 10년째다. 이 시점에 첫 영화를 선보이는 소감은.

10년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저 그 시간만큼 열심히 해왔다는 생각만 든다. 스크린 데뷔인 만큼 부담감도 상당했지만 그것을 작품에 대한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그 점을 관객들도 알아봐주셨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이 즐거우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