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기성배우들도 일이 적으니 신인배우들의 기회는 더 적지 않을까요?” 신인배우의 현실적 수요를 묻는 질문에 적지 않은 관계자들이 반문했다. 한편으론 신인배우 등용문이야말로 시장 상황과 큰 관계없이 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이루는 ‘좁은 문’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도 대다수였다. 물론 나무엑터스, 판타지오, 위에화 엔터테인먼트 등등 신인 개발 부서를 별도로 둔 회사들은 예술고등학교, 전국 연극영화학과 및 연기과, 각종 연기 학원 및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여전히 상시적인 배우 물색에 나서고 있다. “학원 및 학교 오디션, 각종 공연 등 최소 연 170곳을 돌아다니는”(김준헌 나무엑터스 팀장) 과정에서 배우 신소현, 오현중 등을 발탁했고 “신인 개발 부서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뒤 매니지먼트 자체 오디션 지원을 권유한”(김서린 Bh엔터테인먼트 팀장) 경우로는 홍화연, 조범규 배우 등이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의 눈에 들 수 있을지 마냥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인배우들이 더욱 필요로 하는 건 공식 오디션을 통한 매니지먼트사와의 연결이다. 2025 대학 연기 배틀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특정 작품 캐스팅을 위한 제작사 오디션 외에는 매니지먼트사 오디션 자체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고, 아이돌의 배우 겸업으로 이른바 ‘생짜 신인’이 마주하는 막연한 느낌은 더욱 극명하다는 것이다. “공개 메일로 상시 접수를 받긴 하지만 이런 경로로 회사에 들어간 케이스는 거의 못 봤다.”(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연기전공 심해인) “동기들끼리 잘된 케이스라고 말하는 게, 일단 소속사에 들어가서 그 소속사의 느낌에 맞게 훈련받고 소속사의 선배가 출연하는 작품에 작은 역할로 들어가 데뷔하는 경우다.”(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연기전공 김온누리).
2025년 7월까지 올해 개최된 국내 매니지먼트사 주관 배우 오디션 현황을 살펴보면 신인배우를 향한 업계의 관심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2월 열린 AUA 연합의 배우 전국연합오디션을 시작으로 FNC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눈컴퍼니, 더블랙레이블, 하이지음스튜디오 등이 차례로 신인배우 오디션을 개최해 현재 대개 1차 접수를 마친 상태다. 나무엑터스는 8월 접수를 앞두고 있다. 특히 BH엔터테인먼트, VAST, 숲, 어썸이엔티, 제이와이드, 킹콩 by 스타쉽이 함께 진행한 통합 오디션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은 2019년 이후 두 번째 개최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6년 전 첫 오디션이 배출한 스타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트리거>의 주종혁이 대표적이다. 한편 눈컴퍼니는 배우 노재원을 영입한 이후 3년 만에 공식 오디션을 개최했는데, 약 1700명이 지원해 3년 전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한 수치를 보였다. FNC엔터테인먼트 역시 오디션에 1600명이 지원하며 예년보다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등용문을 향한 배우들의 갈증을 실감케 하는 수치다.
오디션의 전통, 무엇이 달라졌나
명맥을 잇고 있는 신인배우 공식 오디션에서 전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없을까. 매니지먼트사들은 일제히 인서 논란, 학폭 의혼 등이 배우 관리의 새로운 위기 요인으로 떠오른 점을 꼽았다. 나무엑터스는 신인배우 오디션 과정에서 학생기록부를 확인하며, 눈컴퍼니는 면접장은 물론 배우들이 복도에서 대기하는 모습도 살핀다. 연기 실력만큼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찬찬히 대화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는 것이 관계자들이 중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에 비해 줄어든 오디션으로 인해 지원자가 몰리면서, 특정 대본과 감정에 치중하는 경향에 대한 피로감도 실질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들을 롤모델로 짧은 시간에 깊이와 감정의 폭을 크게 보여줄 수 있는 자질이 오디션에서 각광받았다면, 최근엔 오히려 편안하게 자신만의 느낌과 일상적인 호흡을 잘 보여줄수록 오래 기억되고 차별화된다.” (성현수 눈컴퍼니 대표) 극심한 분노와 절망, 슬픔 등 ‘강강강’의 연기로 점철된 오디션의 작은 틈새를 여는 지원자가 주목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SNS와 숏폼, 얼마나 효과적일까
“(서울예술대학교 재학 시절 유튜브 브이로그로 유명해진) 윤가이 배우의 사례가 생긴 뒤, 다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유튜브, 틱톡 등을 해보기도 한다.”(심해인) 올해 처음 대학 연기 배틀에 참관한 김희진 감독(<로기완>)은 “실제로 요즘 신인배우들을 만나면 유튜브나 SNS로 연결되는 QR을 공유받기도 한다. 조금 덜 긴장한 일상의 자연스러운 포즈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답했다. 많은 매니지먼트, 제작사들이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적극 검색하는 것도 사실이다. 고윤정, 노윤서, 홍수주 등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모델 이력으로 주목받은 배우를 집합해 신인 인큐베이팅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선보인 MAA가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SNS와 숏폼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며 자기 PR에 적극적인 신인배우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취재에 응한 나무엑터스, 눈컴퍼니, FNC엔터테인먼트, 하이지음스튜디오 등은 아직까지 실질적인 영입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고 답했다. 매니지먼트사나 제작사 입장에서 신인 발굴의 루트가 다양화된 것은 사실이나 인상적인 ‘퍼스트 룩’을 발견하는 정도이지 실질적인 영입은 이후 이어진 오디션, 또는 작품 활동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눈밝은 감독들의 입소문을 통해 우선 배우를 낙점한 후 연락을 취하기 위해 역으로 SNS를 수소문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올해 오디션을 개최한 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더 관심이 가는 경우는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와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 잠재력이 돋보이는 배우”라는 의견을 더했다. 웹드라마 등 숏폼 출연 경험이 자칫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보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상업 전선으로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나머지 택하게 되는 차선으로서 숏폼, 웹콘텐츠에서의 빠른 소진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새로운 발굴의 장, 그리고 영화제
그 가운데 물꼬를 틔워주는 두 행사가 있다. 숭실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대학 연기 배틀과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이다. 올해 6회를 맞이한 대학 연기 배틀은 숭실대학교와 국민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배우 지망생들이 접전을 펼쳤고, 40여명의 매니지먼트사, 제작사 관계자, 감독이 현장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관했다. 지난해 7회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을 펼친 서울독립영화제는 홍경, 옥자연, 노재원, 윤가이, 오경화 등의 배우를 배출한 바 있고, 지난해 최다 지원자 4856명을 돌파했다.
눈컴퍼니는 대학 연기 배틀과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을 거쳐 심수빈, 노재원을 영입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대학 연기 배틀 현장에서 이옥섭 감독의 극찬을 받았던 심수빈 배우는 이후 눈컴퍼니를 만나 윤단비 감독의 차기작 <첫 세계> (가제)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영화인 <지우러 가는 길> (유재인 감독) 등의 주연으로 낙점됐다. 올해로 대학 연기 배틀을 5년째 참관 중인 성현수 눈컴퍼니 대표는 “해가 갈수록 배우를 보는 저마다의 색깔과 관점이 다양하게 갈린다. 추후 영입을 위해 특정 신인배우를 점찍어두고 일부러 쉬쉬하기도 한다”며 실무진의 적극적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독백 페스티벌에서 1등을 거머쥔 노재원은 영화제를 순회하며 단편영화깨나 보러 다닌다는 매니지먼트사들에 일찍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탄 배우였다. 주요 매니지먼트 신인개발팀 등은 본심 상영작 단편영화는 물론이고, 예심으로 참여한 감독과 심사위원들의 전언을 통해 관객에게까지 닿지 않은 본심 탈락작 중에서도 원석을 발굴해낸다. 학원 액션물을 준비하며 다수의 신인배우 캐스팅에 공들였던 <약한영웅> 시리즈의 유수민 감독은 “<약한영웅 Class 1>의 윤정훈 배우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예심 중 발견한 뒤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 팔로했다. 이후 작품을 준비하면서 조감독을 통해 오디션 영상을 보내달라고 DM을 보냈다”고 밝혔다.
다양한 청춘물과 해외 활로 모색 필요해
배우는 결국 작품을 통해 발굴된다는 명제가 확고하다면, 필요한 것은 신인배우와 매니지먼트사, 제작사가 매칭되는 만남의 장 이전에 근본적인 창작 생태계의 활성화일 것이다. 김종도 나무엑터스 대표는 “영화계는 물론 방송국도 사정이 어렵다보니 신인배우들의 순환이 더욱 어렵다. 과거 <논스톱> 같은 청춘 시트콤, ‘학교’ 시리즈처럼 장기간 지속되는 학원물, <베스트극장>이나 <드라마 스페셜> 같은 단막극 등이 존재해야 신인배우들의 설 자리가 늘어난다”고 제언했다. OTT 시리즈 역시 장르물 위주로 편성되고, 일부 학원물조차 아이돌 캐스팅이 앞서거나 호러·스릴러 중심이 되어 배우 본연의 진가를 보여주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다. 대학 연기 배틀을 주관하는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최익환 교수는 “이렇게 국내시장이 계속 답보 상태라면 해외에서 데뷔할 수 있는 루트라도 뚫어줘야 한다. 펀드를 운영하거나 네트워킹을 조직해 연이 닿는 해외 제작사쪽으로 연결해주는 방식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외 공동제작의 활성화가 신인 연출자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