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계급과 배경을 두고 사랑의 자격을 논하는 일은 현대적인 동시에 복고적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시대.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결혼의 성취에도 적용하다 보면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는 낭만은 옛날이야기처럼 취급되곤 한다. 한데 고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계급사회의 통혼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고, E. M. 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역시 부동산 상속을 둘러싼 두 가문의 사회파 멜로였으니까. 셀린 송의 <머티리얼리스트>는 루시(다코타 존슨), 존(크리스 에반스), 해리(페드로 파스칼)의 삼각관계를 통해 2020년대의 결혼 시장을 그린다. 영화는 일견 뉴요커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동시대적인 로맨스다. 하지만 그 속엔 사랑과 계급의 유비 관계를 그리려는 고전 멜로드라마의 필치가 살아 있다. 새로운 차원의 도시 로맨스로 성큼 나아간 셀린 송 감독을 만나 그가 쓰려는 ‘사랑의 기술’을 물었다.
- 실제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6개월간 커플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짧은 재직 기간 중 어떤 경험이 이 작품을 만들도록 추동했나.
고객들이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놓을 고민보다 적나라한 말들을 내게 털어놓았다. 그들이 잠정적 결혼 상대에게 원하는 요소는 키, 연봉, 나이, 체중 등 대부분 숫자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당시 신혼 초였는데 이들의 조건을 들을 때마다 결혼이나 사랑은 숫자와 무관하다는 생각이 일었다. 나이가 들수록 키는 줄고 시장경제에 따라 직업과 벌이는 변하기 십상이니 말이다. 결혼은 평생 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조건에 무조건 동의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 조건을 정의하는 적확한 언어가 결혼 시장에 없었다. 고객들이 원하는 상대의 경제력은 나와 남편(<챌린저스>의 작가 저스틴 커리츠케스다.편집자)의 수입을 합쳐도 비교가 안될 만큼 큰 액수였다. 그게 사랑의 모든 것이라면 남편과 나는 사랑이 불가능하다. (웃음) 사랑에 돈이 전부라는 말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사랑은 태곳적으로부터 비롯한 성역이다. 신성한 마음에 돈이 침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가 사랑을 침식하며 생긴 결과인지 몰라도 돈을 언급하지 않으면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 태곳적이라고 하니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를 이야기하고 싶다. 테런스 맬릭의 영화처럼 자연의 정경을 길게 응시하다가 남녀 혈거인이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영화를 열었다. 결혼 문화는 그 기원부터 상거래를 염두에 둔 제도임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혼 제도가 시기를 막론하고 존재했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오프닝 시퀀스는 뉴욕 시청에서 촬영한 엔딩크레딧과 통한다. 크레딧 뒤로 깔리는 배경은 시청 내부의 공간이다. 혼인신고를 통해 결혼증명서를 발급받는 공간인데, 멀리서 보면 운전면허증 교부 부스와 다를 바 없이 생겼다.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가장 믿음직한 사료는 혼인 기록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결혼은 명백한 기록을 남기니 증거가 남는 사랑인 셈이다. 하지만 그 기록은 결혼 생활 중 나눈 사랑의 역사까지 적시하지 못한다. 또한 다수의 혼인 기록은 이성애 결혼에 한정하므로 동성 부부의 삶은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 자료를 남기지 않은 사랑의 과정은 결혼이라는 결과보다 덜 중요할까? 그렇지 않다. 자료를 뜻하는 영단어 ‘Material’은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물질과 동음이의 관계다. 그래서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s)는 기록이 가시화하지 않는 사랑의 과정이 어떤 가치를 바탕에 두고 있는지를 중의적 뉘앙스로 함축하는 제목이다.
- 루시는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는 데엔 능한 반면 자신의 장점은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자존감이 낮은 루시의 일면은 재직 경험을 포함해 다수의 커플매니저를 취재한 결과인가.
루시를 포함해 <머티리얼리스트>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자존감이 낮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수치로 산정하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의 가치를 점수 매기는 데 가장 능한 인물이 하필 작품의 주인공이다. (웃음) 영화는 그 상품화야말로 우리의 인간성을 한없이 말살한다는 걸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스스로에게 비인간적인 일을 행하는 인물도 있고, 비인간적인 일을 겪는 인물도 나오니 말이다. 소피(조이 윈터스)가 “나는 상품이 아닌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다. 상품끼리는 사랑을 할 수 없지만 사람끼리는 사랑할 기회가 있다.
- 당신의 작가적 자아가 녹아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나영(그레타 리)이나 <엔들링스>의 하영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머티리얼리스트> 속 루시 또한 자본, 시대 등 많은 것이 상반된 두 남성 사이에 놓인 인물이다. 스토리텔러로서 점이대에 서 있는 여성을 탐구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갖나.
리미널 스페이스(경계 공간)라는 개념이 있지 않나. 어느 드라마든 캐릭터의 변화를 도모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다. 그리스신화조차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러 갈 때 리미널 스페이스를 거치도록 두니까. 무엇보다 내가 리미널 스페이스에 서 있는 작가다. 한국계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경계선 그 자체다. 내가 사는 뉴욕도 그러하다. 사람도 인생도 정주하지 않은 채 오가는 도시에 살면 리미널 스페이스에 관해 절로 사색하게 된다. 예술가라면 리미널 스페이스를 집처럼 편히 여겨야 한다. 경계에 서야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루시도 변화를 겪으므로 그가 거치는 공간 전체는 리미널 스페이스라 할 수 있다.
- 당신이 쓴 영화 시나리오와 희곡에선 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작품의 주제와 맞물린 중요한 관념이다.
워낙 시간을 다루는 데 관심이 많다. 시간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 테마이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다. <머티리얼리스트> 속 사랑과 결혼은 분명 시간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사랑은 상대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하는 감정이고, 결혼은 그 시간을 약조하는 일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누구에게든 사랑과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 삶은 없다.
- 여러 차례 “작품의 엔딩을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라고 밝혔다. <머티리얼리스트>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나.
여전히 결말을 모르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루시는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변화를 겪어야 하고, 결혼관이 달라져야 한다. 영화 속에서 루시가 계산을 내려놓아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안 채 이야기를 써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