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리스트>에 마돈나의 <Material Girl>이 등장하지 않아서 놀랐다. 지지난해 <바비>에 아쿠아의 <Barbie Girl>이 등장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도 이쪽이 훨씬 신기하다. “우리는 물질만능의 세상에 살고, 나는 속물인 여자일 뿐이야”라는 <Material Girl>의 유명한 후렴구는 두 가지 이유에서 <머티리얼리스트>와 더없이 잘 맞는다. 하나. 이 가사는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로 일하며 모든 관계에 등급을 매기는 루시(다코타 존슨)가 작중 최소 세번은 뱉을 법한 대사다. 하지만 둘. <Material Girl>이 여성 화자가 화려한 여성에게 덧씌워진 편견을 반어적으로 도발하는 동시에 물질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자조하는 노래이듯, <머티리얼리스트> 또한 소위 속물이라 칭해지는 루시의 욕망을 변명하지 않되, 그를 통해 돈이 절실한 세상에서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루시는 돈과 사랑 앞에서 자기 존재를 사유한다. 그리고 루시가 서 있는 위치는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분화되며 정체성 탐구의 장을 연다. 이는 셀린 송이 매 작품 작가로서 선택한 이야기의 일변도 경향이다.
시간을 감각하는 삼각관계
매칭을 성사시킨 고객의 결혼식 피로연장. 루시는 해리(페드로 파스칼)를 만난다. 해리는 결혼 시장에서 유니콘이라 불리는 남자다. 키가 크고, 자산이 많으며, 외모를 가꿀 줄 안다. 여자는 남자를 잠정적 고객으로 대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잠정적 연애 상대로 생각하며 구애한다. 같은 자리에서 케이터링 업체 직원 존(크리스 에반스)이 루시가 원하는 음료를 정확히 가져다준다. 루시와 존은 한때 연인이었다. 여자는 궁상맞은 남자를 견딜 수 없었고, 남자는 주 머니 사정이 예나 지금이나 나아지지 않았다.
루시는 두 남자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맺는다. 제목이 ‘물질주의자’(Materialists)인 로맨스영화에서 주인공이 계급 상승을 바란다면, 누구든 프로타고니스트가 자신보다 부유한 상대에 마음을 줬다가 결국 다른 쪽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터. <머티리얼리스트>의 삼각관계는 예상을 배반하지 않지만, 그 양상이 여타 통속극과는 다르다. 영화엔 존과 해리가 한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이 없고, 두 존재는 서로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이유로 루시를 사랑하고, 서로 다른 매력으로 루시와 잘 어울린다. 존과 해리는 계급 차의 전형이지만 인물을 이루는 속성은 섬세하게 조형됐다. 루시의 희망 여행지인 아이슬란드에 바로 데려갈 수 있는 해리는 능력으로 사람의 환심을 사지 않으며 겸손하다. 존은 마냥 청운의 꿈만 좇는 순박한 남자가 아니고, 미래와 사랑 앞에 냉철하다. 이 삼각관계는 물신성만 표상하지 않는다. 영화 속 현재적 존재가 루시라면, 존과 해리는 루시에게 과거이면서 미래다. 존은 과거의 연인이지만 결말에 이르러 루시가 추구하는 사랑의 원형을 함께 그려나갈 존재다. 해리는 루시가 바라던 미래를 살지만 루시를 안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루시가 해리, 존과 보이는 삼각 로맨스는 과거와 미래의 순환적 시간이기도 하다.
관객과 동시대에 사는 여성이 삼각관계를 통해 시간을 감각하는 구조는 셀린 송의 영화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2023)나 그가 쓴 희곡 <엔들링스>(2019)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셀린 송은 언제나 세 시점(時點)으로 삼각형을 그리고 세 꼭짓점은 과거, 현재, 미래를 향해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속 나영(그레타 리)의 첫사랑 해성(유태오)과 남편 아서(존 마가로)를 생각하면 쉽다. 현재의 나영에게 해성은 과거의 추억 속 남자고, 아서는 미래를 그릴 남자다. 해성과 아서 또한 연적이라기보다 나영이 통과한(혹은 할) 두번의 생애주기에 가깝게 묘사된다. <엔들링스>의 삼각관계는 만재도의 세 해녀가 그린다. 각각 90대, 80대, 70대인 한솔, 고민, 순자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해녀들이다. 세대도 성격도 판이한 세 해녀는 개인의 죽음과 직업 세계의 종말 모두를 경험한다. 과거의 산물로 현재를 지탱하는 한솔은 극 중반 불현듯 맨해튼섬에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 하영과 연결된다. <엔들링스>는 하영이 세 해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메타 희곡이다. 이야기 바깥의 작가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영은 작품 안팎에서 한솔을 소환하며 함께 미래로 나아간다.
정체성을 회의하다
셀린 송은 <머티리얼리스트>가 필름누아르의 구조를 따르는 영화라고 꽤 진지하게 밝혔다. “냉소적 주인공이 영화 초반 5분쯤 인생을 뒤흔들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도시 자체의 분위기가 영화의 정조를 형성하고 결말에 이르면 주인공은 승진하거나 팜므파탈과 함께 법망을 피해 도망친다. 이 모든 전형이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클리셰만큼 중요하게 다가왔다. 멜로영화도 권력과 범죄를 다루는 장르에 녹일 수 있다.” <머티리얼리스트>는 결혼에 냉소적인 커플매니저 루시가 클라이언트 소피(조이 윈터스)를 통해 자신의 직업을 돌아보고, 뉴욕의 곳곳을 누비다 영화 후반 지금까지의 신념과 다른 선택을 내린다는 점에서 사랑과 결혼의 누아르라 부를 법하다. 하지만 <머티리얼리스트>가 필름누아르와 보다 더 공유하는 점은 주제의식이다. 미국의 필름누아르는 (미국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회의한다. 루시는 해리와 존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거치고, 중매 중 성범죄 피해자가 된 소피를 도우며 데이터값에 불과하던 사랑의 가치를 재정립한다. 부와 특권을 결혼의 지표로 삼지 않고, 사람을 상품화하지 않는다. 정체성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박선웅, <정체성의 심리학>)라면 루시는 <머티리얼리스트>의 궤적 속에서 정체성을 근심하고 획득한다.
정체성 설정은 셀린 송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나영, <엔들링스>의 하영은 한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극작가이고, 둘은 말하나마나 셀린 송의 작가적 분신이다. 나영과 하영은 미국에서 백인들과 부대끼지만 자기의 뿌리는 한국에 있다고 믿는 경계인이다. 루시가 해리와 존 사이를 이으며 스스로를 찾아갔듯, 나영과 하영은 조우하기 어려운 한국과 미국, 과거와 미래를 직접 교차시키며 고유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더듬는다. 셀린 송은 <엔들링스> 속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두었다. “나는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저자다.” 셀린 송은 북미에서 살아가는 한국계 이민자다. 셀린 송은 6개월간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매니저로 재직했다. 우리가 만난 셀린 송의 픽션 세편은 이같은 작가의 삶에서 비롯됐다. 작품을 보는 내내 이야기 밖 작가의 서사가 끊임없이 의식될 때, 작가가 자기 신념을 암시하기보다 적시할 때. 비평가들은 ‘배꼽 응시’(navel gazing)라 꼬리표 붙이며 작가의 성취를 자기애적 글쓰기로 취급한다. 셀린 송 역시 이 약점에서 자유롭지 않다.실제로 <패스트 라이브즈>와 <엔들링스>에서 규정하는 한국인의 특성이나 <머티리얼리스트>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작가 개인의 주장이 노골적이어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정체성 탐구는 자의식에 골몰해야 완성된다. 루시, 노라, 하영 세 여자가 모두 셀린 송의 일면을 보유한다면,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서사에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 안팎에서 정체성을 찾아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