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씨네21>의 친구들’ 코너에 응한 방송인 이금희는 인터뷰에 앞서 A4 네장 분량의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은 ‘방송인 이금희의 영화 에세이’와 같았다. 글을 바탕으로 정리한 영화 애호가로서의 이금희는 이런 사람이다. 극장에서 하루에 여섯편도 보는 사람. 지금은 사라진 서울 종로구 코아아트홀에서 이금희는 오전 8시, 오전 10시, 낮 12시 반, 오후 3시, 저녁 6시, 밤 9시까지 영화를 연달아 봤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 한 회차쯤 건너뛸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쪽을 택했다.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는 걸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극장에서 1년에 약 100편의 영화를 봤고, 지금도 CGV여의도에 가면 이금희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후배들 사이에 돌정도의 극장주의자. “영화는 극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기에서 그는 늘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가 곧 탈출구인 사람. KBS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 방송인이 된 뒤에도 빡빡한 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는 여행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 “우리 뇌는 의외로 단순해서 직접 본풍경과 스크린으로 본 풍경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마 제 뇌는 제가 여행을 무척 많이 다닌 걸로 알고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금희는 <씨네21>의 오랜 친구다. 정기구독으로 잡지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해 가장 빨리 <씨네21>을 구할 수 있던 종로3가 버스 정류장 옆 가판대에서 잡지를 사던 독자였다. 인터뷰 당일, 설레는 마음에 일찍 도착했다는 이금희는 특유의 경청하는 눈빛으로 사진기자와 취재기자가 속마음을 단 몇분 만에 꺼내놓게 하는 ‘금희 매직’을 선보였다. 박찬욱과 봉준호, 드니 빌뇌브와 폴 토머스 앤더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감독과 영화를 국적과 시대를 막론하고 풀어내는 모습 또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이금희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금희가 담겨 있다.
- 새해에는 어떤 영화를 극장에서 보셨나요.
<만약에 우리> <아바타: 불과 재> <주토피아 2>를 봤습니다. 세편 중에는 <만약에 우리>가 가장 좋았어요. 언뜻 중장년층이 공감하기 어려운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안 그래요. 우리도 서로에게 더 좋은 걸 주지 못해 아팠던 빈 주머니의 시절을 지나왔으니까요.
- 극장에서 영화를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팝콘을 드시거나 관람 뒤에 감상을 기록하시나요.
여럿이 같이 볼 때는 따라 먹기도 하지만 혼자볼 땐 절대 안 먹어요. 집중해야 하니까요. 영화와 나, 둘만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데요. 기록도 안 해요. 쓰는 순간 숙제가 될 것 같달까요. 영화 보러 갈 땐 최대한 정보 없이 갑니다. 누가 나오는지도 안 찾아보니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숀 펜이 나올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렇게 놀라면서 보는 게 영화 보는 재미죠.
호기심을 키우다 :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어쩔수가없다> <복수는 나의 것>
- 인터뷰 전날에 어떤 작품을 볼까 고민하다가 <헤어질 결심>을 골랐습니다. 앞서 보내주신 ‘이금희의 영화 이야기’에서 언급된 수십편의 영화 중 <헤어질 결심>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가장 크다고 느꼈거든요.
세상에 볼 영화가 많으니 웬만해선 N차 관람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극장에서 세번 봤습니다. ‘헤결 앓이’를 오래해서 관객수가 200만명을 채우지 못했을 때는 제 일처럼 속상했고요. <헤어질 결심>은 제게 사랑의 모든 것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저는 해준(박해일) 이 서래(탕웨이)에게 먼저 마음을 줬다고 생각해요. 계속 거부하지만 빠져드는 관계를 보면서 저 역시 영화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처음 보고 나왔을 때 박찬욱 감독님이 숨겨 놓은 디테일을 더 찾고 싶어 다시 극장을 찾았어요. 세번째 볼 때는 빅 클로즈업한 눈동자가 마지막의 모래사장과 연결되는 것처럼 조각조각이 맞춰지며 쾌감이 있었고요. 박 감독님의 영화는 늘 탐구력을 발휘하게 만들지만 <헤어질 결심> 이 특히 그랬습니다.
- <어쩔수가없다>는 두번 보셨죠. 저는 ‘왜 내가 어떤 인물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을까’를 곱씹으면서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독님이 일부러 그러신 것 같아요. 만수(이병헌)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 해고뒤 그가 벌이는 행동이 상식 밖의 일이니까요. 다른 직장을 구하는 선택지도 있는데, 종이에 미친 그에게는 ‘펄프맨’만 보이는 거죠. 그건 범모(이성민)도 마찬가지고요. 이들과 멀지 않은 세대로서 두 펄프맨에게 이해가 가는 면이 있어요. 평생직장이 있던 시절에 일한 사람들에게 직업은 곧 나예요. 사회인으로서의 자아가 형성될 때부터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말하면 그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닌 거죠. 그 기분을 저도 아니까두 남자가 좀 안쓰럽기도 했어요. 제 생각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자신과 직업을 더 동일시하는것 같아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남성은 어릴 때부터 서열 중심의 인간관계에 익숙해서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삶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요. 반면 여성은 수평적인 관계가 기본이라 똑같이 직장생활을 오래하고 그만두더라도 다른 삶을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미리(손예진)는 긴축재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집을 줄이는 등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으면서 ‘어쩔 수가 없음’ 쪽으로 가지 않는 거예요.
- 만수와 다른 경우지만 KBS를 그만두실 때, KBS 아나운서가 아닌 나는 내가 아닐까봐 두렵기도 하셨나요.
아니요. 제가 대학 졸업 후 1년 있다가 KBS에 입사해서 10년8개월을 일하고 그만뒀어요. 퇴직을 생각한 건 10년6개월쯤 됐을 때였고요. 2000년 8월15일,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현장의 중계 역할이 제게 왔죠. 그런데 저는 그때, 그 일을 맡으면 안되는 과부하 상태였어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한 지 5년6개월째였고, 상봉을 앞두고 생긴 기획 프로그램에 투입된 지도 몇달째였거든요. 아침, 오후, 밤. 하루에 생방송을 세번이나 하는 일정이었으니 긴장 강도가 어땠겠어요. 그래서 입사 이래 처음으로 상부에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못하는게 어디 있느냐는 대답이 돌아왔죠. 결국 저는 중계를 맡았고, 사흘 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말했어요. “이렇게 일하다가는 쓰러져서 죽을 거야.” 저는 살려고 그만둔 거예요. 프리랜서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헬스장 등록이었고요.
- <복수는 나의 것>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딸을 납치당한 동진(송강호)이 납치범 류 (신하균)가 방송국에 보낸 엽서를 확인하기 위해 라디오 DJ ‘이금희’를 만납니다.
제 영화 대표작이죠. (웃음) 송강호 배우와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분명슛 직전까지는 농담을 주고받았거든요? 그런데 카메라가 돌자마자 0.1초도 안돼서 딸을 찾는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눈앞에서 그런 연기를 보고 있으니 몰입할 수밖에 없었죠. 현장 분위기도 아직 생생해요. 스태프들이 정말 조용조용 움직였습니다. 박 감독님은 스탠바이, 액션도 속삭이듯 말씀하셨고요. <복수는 나의 것> 말고도 <국가대표> 등 여러 작품에 아나운서 역할을 맡거나 목소리 참여를 했어요, 영화 제안이 오면 꼭 하려고 했습니다. 영광이니까요.
사회에 질문을 던지다 : 봉준호의 <기생충> <미키 17>
- 봉준호 감독님의 어떤 작품을 최고작으로 꼽으시나요.
<기생충>이죠.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폭우 장면에서 대비되는 두 가족의 상황을 잊을 수가 없어요. 온몸이 젖은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하수구가 역류하는 터전으로 돌아가지만 동익(이선균)과 연교(조여정)는 아들 다송(정현준)과 워키토키로 대화를 나누죠. 동익 부부의 집과 아들의 텐트는 비 한 방울 샐 걱정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 <미키 17>은 ‘노동하는 청년들에 대한 우화이자 헌사’ 같은 작품이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수많은 미키(로버트 패틴슨)들이 요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감독님은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이대로 소모되는 게 맞는지 질문을 던지신 것 같아요.
-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의 세계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결해주신 점은 새로웠습니다.
두 감독님 모두 대학 시절,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한 세대잖아요. 저 역시 대학 방송국에서 학생운동을 보도하면서 체감했고요. 그 시절이 두분에게 사회의 부조리를 겪을 때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아니라면 바꿔야지’라는 저항 의식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질문을 담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오셨다고 생각하고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그 연장선에 있는 시선과 질문이 느껴져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엄태화 감독님의 차기작이 더 기대되고요.
- 요즘 이금희의 화두는 젊은 세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대화 중에도 여러 차례 언급하셨고, 이들을 위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와 <모두 행복해지는 말>을 지난해 11월에 출간하셨죠.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있는 동안 학생 1500명과 일대일로 티타임을 가졌고, 평생 듣는 일을 하며 살다 보니 2030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감사하게도 많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사실 얼마나 고립되고 위축돼 있는지를 아니까 이들이 덜 힘들길 진심으로 바라게 돼요. 그게 결국 우리나라가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요.
에너지가 뻗치다 : 폴 토머스 앤더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KBS 프로그램 <인생이 영화>에서 2025년 해외영화 베스트로 꼽으신 작품이죠. “모든 걸 쏟아부은 느낌”을 받으셨다고요.
시종일관 이글이글한 에너지가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올드보이>를 볼 때 받았던 에너지와도 유사했고요. 우리 세대에서 안되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되게 해야 한다는 변화의 의지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도 느껴져 더 와닿았습니다.
-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과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 이들의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 록조 대령(숀 펜)과 ‘센세’ (베니치오 델 토로)까지 강렬한 캐릭터와 배우가 많습니다. 이중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록조입니다. 좋은 뜻에서 제가 정말 싫어하는 캐릭터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인데요. 록조가 그다음이 됐습니다. 힘만을 추구하는 집착적인 남성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숀 펜은 천재적이에요. 사실 숀 펜은 예전부터 대단했죠. <밀크> <아이 엠 샘>, 어느 작품을 봐도 숀 펜은 없고 그 인물만 있어요. 특히 1990년대 작품인 <데드 맨 워킹>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예요.
-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풍부하신데, 영화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 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주변만 알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직전까지는 10년 넘게 1년에 영화를 100편쯤 보는 생활을 해왔어요.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해와 책을 쓰던 해를 빼면 그랬던 것 같아요. 100편 얘기를 하니 옛날 생각이 또 나네요. 어느 날 KBS에 들어가는데 안전요원 한분이 제가 CGV 여의도에 있는 걸 봤다며 말을 걸어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아는 척을 하시죠” 라고 했더니, 제가 너무 급하게 가서 그럴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저는 늘 짬을 내서 극장을 가니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달려나오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세상에, 그분은 1년에 영화를 300편을 본다는 거예요. 순환근무라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한 뒤에 집에 가지 않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몰아 본다는 거죠. 그 얘길 듣고 제가 “졌다, 졌다” 했어요. 그날로 그분과 영화 친구가 됐죠. 지나가다 마주치면그 자리에서 서서 그주에 개봉한 영화 얘기를 한참 나눴어요. 등에 할 일을 태산같이 지고도요. 영화 좋아하는 사람과는 그렇게 쉽게 가까워지더라고요.
침묵이 감돌다 : 드니 빌뇌브 <그을린 사랑>
- 드니 빌뇌브의 베스트로 꼽으신 <그을린 사랑>의 이야기는 <씨네21>에서 꼭 하고 싶다고 하셨죠.
이 영화를 참 좋아하면서도 영화가 가진 무게 때문에 어디에서도 추천하지 못했거든요. <씨네21> 독자분들이라면 제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믿어요. <그을린 사랑>은 잊을 수 없는 느낌을 안긴 영화입니다. 결말에서 모든 게 밝혀졌을때 마음이 무너져내렸어요. 1995년에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처럼요. 당시 철거 과정을 생중계로 봤는데, 거대한 건물이 단 몇초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라고요. 와르르. 정확히 제마음이 그랬어요. 보통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하면서 보는데, 어머니 나왈(루브나 아자발)은 그럴 수조차 없었어요. 공감이나 이해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듄>과 <듄: 파트2> 중에는 어떤 작품이 더 취향 이셨나요. 1편이요. 2편이 이야기의 완결성은 더 있었지만 1편에서 받은 사막의 생생한 감각을 이길 순없죠.
- 저는 1편을 다 보고 난 뒤에 저도 모르게 바지를 털면서 일어났어요. 정말 모래가 묻은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너무나 공감합니다. (웃음)
슬픔과 빛을 발견하다 : 요르고스 란티모스 <더 랍스터>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
-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 중 <더 랍스터>가 왜 가장 좋은지 써주신 대목에서 “사랑에 관한 기발하고도 슬픈 상상력”이란 표현을 쓰셨습니다.
요즘 이 영화를 떠올리면 다른 의미에서 슬퍼집니다. 소통이 외주화된 세상을 예견한 영화 처럼 느껴지거든요. 요즘 우리가 하는 소통이란 이렇습니다. 친구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죠. 가족 단톡방에 엄마가 꽃사진을 올리면 ‘등산 가셨구나’ 하고 끄덕하고 넘어가죠. 그런데 사실 이건 소통이 아니에요. 직접 전화하고,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게 진짜죠.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소통의 외주화는 더 심해질 텐데, 그러다 우리가 사랑할 줄모르게 될까봐 걱정됩니다.
- <부고니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지점이 그랬나요.
란티모스는 자기 스타일을 밀고 나갈 때 빛나는 감독입니다. <부고니아>는 원작을 의식한 탓에 개성이 드러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의 영화도 오래 좋아해오셨죠. 노년 감독들은 젊은 시절의 매서움을 잃었다는 평가를 종종 받지만 저는 이들의 시선이 포용적인 쪽으로 옮겨간 지금도 좋더라고요.
저도 <미안해요, 리키>처럼 이분들도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최근작들이 더 좋더라고요. 물론 감독님들의 영화 속 세상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요. 이를테면 <언노운 걸>에서 옳다고 믿는 일을 하려는 제니(아델 에넬)가 사는 세상은 차가운 수술대 같죠. 그런데도 그 안에는 늘 꺼지지 않는 온기가 있어요. 그 온기 때문에 감독님들의 영화를 보다 보면 울컥하고, 극장을 나서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죠. 부디 모두 건강하셔서 오래 일해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 반면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는 초기작들을 더 좋다고 하셨습니다. “열광”하게 만들었던 작품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인가요.
<다크 나이트>입니다. 영화가 품은 어두운 에너지에 압도됐어요. <테넷>이나 <오펜하이머> 는 노트에 적힌 화학 공식처럼 느껴져 크게 흥미롭지 않았고요. 그래도 올해 <오디세이>가 나오면 보러 갈 겁니다.
이금희로 향하다 : 영화가 되는 인생, 인생이 되는 영화
- 언급하신 영화인 중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를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드니 빌뇌브요. 감독님은 관객의 호흡까지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시는 것 같아요. 제 생각이 맞는지 직접 묻고 싶습니다.
- 한명의 감독에게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달라” 고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맡기고 싶으신가요.
류승완 감독님 아니면 이준익 감독님이요. 사실 제 인생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재미가 없어요. 매일 요만큼씩 변하는 주인공의 삶을 보는 게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잘 짓는 두분 중 한분이면 좋겠어요. 재미를 위해 사건을 만들어 넣으셔도 환영이에요.
- 그간 일탈의 충동은 없으셨나요.
있긴 했죠. 오후 4시 KBS 라디오를 할 때였어요. 평소처럼 마포대교로 들어가 여의도 KBS로 가지 말고, 이대로 쭉 강변북로를 달리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죠. 그런데 늘 상상에 그쳤어요. PD님과 작가님 얼굴이 떠오르고, 청취자까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동료 생각까지 가기 전부터 저는 일탈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인 것 같아요. 루틴대로 굴러가는 삶이 저는 편안하고 좋아요.
- 만약 지금 ‘이금희 영화제’를 연다면 개막작과 폐막작으로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개막작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언니가 동네 동시상영관에 저를 데려가 보여준 영화예요. 이때 처음 극장에서 황홀경을 느꼈습니다. 폐막작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하겠습니다. 최근에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니까요. 제이름을 건 영화제이니 저를 행복하게 하는 작품들로 채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