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린 피나의 20년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얼마나 활용도 높은 영화적 재료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외로운 성장담(<양양>)부터 액션물(<영검산의 고수들>)과 형사 드라마(<트리니티 오브 쉐도우>), 귀신 코미디(<데드 탤런트 소사 이어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간 결과, 그의 노미네이션 리스트는 필모그래피만큼이나 길다. 큰 키에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가 올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을 땐 빈틈없는 카리스마를 예상했지만 실제 그는 꺄르르 웃으며 테이블에 곧잘 엎어지는 개구쟁이에 가까웠다. 인터뷰 직전, 배우 이정진과 함께 대만 드라마 <정형과후>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 이정진 오빠! (좌중 폭소) 그와 함께한 과정이 즐거웠다. 작품을 찍은 뒤엔 서울도 다녀왔다.
= <정형과후>는 성형외과 배경의 휴먼 메디컬 드라마인데 따뜻하고 자신감을 주는 이야기라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대표작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와 타이베이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양>(2009)이 꼽힌다. 양양에게 공감해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 나 역시 양양처럼 대만-프랑스 혼혈이라 진실 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스란히 내얘기 같으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정체성에 관한 해묵은 고민도 해소할 수 있었 다. <양양>은 앞으로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특별한 작품이다. 아기 때 어머니가 운영한 수입품 상점 앞에서 캐스팅된 뒤 광고 모델로 방송을 쭉 해왔는데, 영화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다.
-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는 국내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어 이 영화로 당신을 알게 된 한국 관객도 있을 것 같다. 귀신 세계관을 다룬 이 작품은 어떻게 남아 있나.
= 귀신에 대한 공포를 없애준 고마운 작품이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독특한 설정과 코믹 요소로 감동을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출연했다. 영화는 발랄했지만 참여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진지하게 임했다. 3~4년에 걸친 긴 제작 기간 동안 분기별로 만나 열띤 논의를 이어갔고 내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냈다.
- 최근작은 이자벨 위페르와 공연한 <루즈>(Luz) 다. 전설적인 배우와 호흡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 직접 보여주겠다. (일어나서 움직이며) 위페르가 현장에서 오브제를 활용해 능동적인 연기를 펼칠 때마다 감탄했다. 감정과 몸이 완벽히 포개진 신체언어를 연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오면서 발견한 이 직업의 매력은.
= 문득 바비 인형을 종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바비로 작은 연극을 열었는데, 연극을 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행복했다. 이 행복감을 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이 좋다. 이야기로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 앞으로 어떤 배우나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 한국 배우 지성! 이수혁 배우는 <S라인>을 보고 푹 빠졌다. <D.P.> 시리즈, <하이퍼나이프> <가족계획> 등 최신 한국 작품도 모두 챙겨 보고 있다. 한국 감독님들의 연락을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