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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범이라는 매력의탐구 - <악마가 이사왔다> 안보현

일을 ‘잠깐’ 쉬고 있는 중인 길구(안보현)의 일상은 조금 심심하고 약간 무탈하다. 아래층에 이사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딱히 마음을 고백한다거나 할 생각도 없다. 그러던 길구는 악마가 선지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악마가 활동하는 밤의 시간 동안 선지를 지키는 ‘밤산책 동행’이라는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수락한다. 자기 아닌 다른 이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는 그의 마음은 연민 이상, 사랑 이하 어딘가를 맴도는 것 아닐까. 그런 마음을 지닌 길구를 연기한 배우 안보현이 작품을 준비하며 포개 올렸던 생각을 풀어내주었다.

- <악마가 이사왔다>에 합류하게 된 과정은 어땠나.

이상근 감독님의 전작 <엑시트>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외유내강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온 제작사다. 대본을 먼저 받아보았고, 선지 역에 임윤아 배우를 대입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대본을 읽었는데 굉장히 좋은 조합일 것 같았다. 이상근 감독님과 임윤아 배우는 <엑시트>로 이미 호흡을 맞춰보았으니 두 번째 작품도 함께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나머지는 내가 이 두 사람과 잘 융화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맡은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촬영에 들어서면서 싹 사라졌다.

- 로맨틱코미디와 악마 빙의라는 독특한 장르 조합이다. 지금까지 연기한 작품 중에서도 장르적으로 새로운 도전이었을 텐데.

시나리오를 막 읽고 난 뒤에 어떤 장르라고 명확하게 짚지는 못해도 신선하고 새로웠다. 무엇보다 길구라는 인물에 이끌렸다. 여태껏 연기한 적 없는 유형의 인물이라 도전한다는 마음이었다. 영화가 지닌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라는 여러 요소의 교집합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을 던지면서 작품에 임했다.

- 길구는 ‘순수한 청년 백수’다. 언뜻 평범한 이 인물에게서 어떤 매력을 보았나.

근본적으로 착하다. 그렇지만 엄마에게는 툴툴대기도 하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친구다.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 악마 선지와 만나면서 외향적으로 바뀌는 입체성도 가지고 있다. 타인을 돕는 과정을 겪으며 본인이 치유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정말 무해하다.

- 낮과 밤에 따라 격변하는 선지의 캐릭터에 맞추어 길구의 내적, 외적 변화에도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밤이면 악마로 변하는 선지를 지키기 위해 새벽 아르바이트를 수락한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 요소가 강하다. 게다가 길구는 처음에 선지가 악마로 변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가 두 인격체를 목격하고서야 믿게 되는 상황도 이상하지 않나. 처음부터 픽션으로 수긍했다기보다 의문을 가지고 감독님에게 질문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질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낮의 선지와 밤의 선지를 대하는 길구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말로 누군가를 지켜야겠다,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컸을 거다.

- 보통 캐릭터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편인가.

복잡한 생각에서 드는 의문점을 쪼개어 여러 방향에서 많이 질문한다.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의외로 굉장히 디테일하다는 말을 감독님에게도 많이 들었다.

- 본인이 연기한 길구는 이상근 감독과 닮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캐릭터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눴나.

캐스팅 과정에서 어떤 작품을 보셨는지 모르지만 감독님은 내가 매체에서 주로 보였던 강인한 이미지 대신 현재의 길구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고 했다. 감독님은 각본을 쓰면서 본인이 의도한 바를 속속들이 짚어주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길구가 즐겨하는 인형 뽑기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내면에 숨겨진 것을 찾아내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서 감독님께 말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하시더라.

- 길구는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다는 설정이다. 검도 액션 장면도 꽤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능숙하게 한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잘하는 운동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도 액션도 멋있어 보일 필요가 없어서 소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 몰래 선지를 보러 집밖을 나서는 길구는 항상 빈 우유갑이니 쓰레기 봉지 같은 변명거리를 챙긴다. 캐릭터의 정직함에 대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사실 선지를 보러 나온 게 맞지만 우유를 사러 나온 척 혼잣말로 핑계를 크게 말하는 게 내 눈엔 귀여웠다. 콘티에도 캐릭터의 디테일이 묘사되어 있다. 그중 길구의 시그니처 표정이 있는데 입을 동그랗게 ‘오’ 하면서 멍때리는 표정이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길구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싶었는데 현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그 표정을 지었더니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 그렇게 점차 ‘길구화’되었던 것 같다.

- 낮의 선지와 밤의 선지, 둘 중에 길구가 마음을 연 상대는 누구일까.

길구는 낮의 선지에게 첫눈에 반해 설렌 나머지 오히려 쭈뼛대다 고장난다. 반면 밤에 나타나는 악마 선지를 믿진 않지만 서로의 속내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길구가 악마 선지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긴 하지만, 굳이 그 모습에서 길구의 마음에 관한 해답을 찾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감독님에게도 끝까지 질문하지 않았고, 답을 정해두고 역할에 임하지도 않았다. 내게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 볼지는 관객의 마음에 달렸다.

- 연기에 있어 코미디, 로맨스, 액션 중 어떤 장르에 더 애착이 가나.

액션은 촬영할 땐 힘들지만 결과물을 봤을 때 뿌듯해서 잘해내고 싶은 장르다. 코미디는 나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타고난 센스도 갖춰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부담이 항상 있다. 멜로는 내가 경험했던 마음을 연기로 끌어오기에 아직 능숙하지 않은 것 같아 셋 중에 골라야 한다면 액션이다. 하지만 늘 쉬운 것은 없다.

- 배우 안보현이 주로 맡았던 강인한 역할과 평범하고 소심한 청년 길구도 낮과 밤의 선지만큼이나 반전의 면모를 보인다. <악마가 이사왔다>와 앞으로의 작품에서 어떤 배우로 다가서고 싶나.

캐릭터 변신을 계획하지는 않는다. 그저 배우로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잘하는 걸 하기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이번 역할 제안도 그래서 반가웠다. 관객이 작품에 매료되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이름보다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리고 기억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