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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낮의 파스텔, 밤의 비비드 - <악마가 이사왔다> 임윤아

배우 임윤아가 연기한 선지(임윤아)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로 인해 악마를 품고 살아간다. 새벽 2시만 되면 악마가 깨어나는데 그는 선지의 몸을 빌려 아파트 단지를 배회한다. 여러 인격체를 연기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는 대신 임윤아는 연기의 완성도를 올릴 디테일을 챙기는 데 집중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낮의 선지와 밤의 선지는 “배우 임윤아의 스펙트럼”을 새삼 체감케 한다. 낯익다 여긴 배우 임윤아에겐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 <엑시트>에 이어 이상근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엑시트>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고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도 신선했다. 선지를 통해 1인2역에 도전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고 한번 호흡을 맞췄던 팀들이라면 내 매력을 잘 살려주시겠다 싶었다. <악마가 이사왔다>까지 찍고 나니 이상근 감독님이 진짜 하고 싶어 하시던 영화, 감독님의 스타일을 명확히 파악하게 됐다.

- ‘선지의 몸속에 악마가 들어 있다’는 설정을 설득시키는 게 주요했을 텐데.

영화가 시작했을 때 밤 선지가 갑자기 자신은 악마라며 행동하는 것들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밤의 선지의 모습도 사랑스럽게 비치길 바랐다. 그렇게 선지를 따라가다 보면 악마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후반부에 들어선 울컥하는 마음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지의 톤 설정과 같은 디테일부터 엔딩 신까지 잘해내고 싶었다.

- 단아한 낮 선지는 배우 임윤아에게서 자주 봐온 모습이지만, 밤 선지만큼 거침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혹은 통쾌한 순간도 있었는지.

첫 촬영할 땐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연기하려니 쑥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면 내가 어떻게 이걸 했지 싶을 정도로 선지에게 빠져들었다. 낮 선지는 차분하고 길구(안보현) 앞에선 수줍음이 묻어난다. 그런 낮 선지의 톤을 기준으로 삼아 밤 선지의 톤을 맞춰갔다. 밤 선지는 하고 싶은 말은 무조건 해야 하고 자기주장을 굽힘 없이 마음껏 펼치는 성격이라 말투와 목소리, 템포까지 그에 맞췄다. 밤 선지가 익숙해질수록 현장에서 더 신나게 뛰어놀았다.

- 낮 선지, 밤 선지는 성격뿐 아니라 스타일도 상반된다.

낮 선지는 단정하고 청순한 파스텔톤의 의상을 주로 매치했다. 반면 밤 선지는 비비드한 컬러의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도록 했다. 동생 아라(주현영)처럼 이제 막 자신을 꾸미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친구라고 생각하며 스타일링을 준비했다. 특히 밤 선지일 땐 컬러 렌즈를 끼고 네일아트와 액세서리도 의상마다 다르게 가는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밤 선지의 의상에는 레드가 꼭 하나 들어가는데 한번은 위아래로 레드 의상을 세트로 입고 나온다. 감독님은 그 옷을 ‘전투복’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색감이 워낙 화려하고 다양해서 선지의 의상을 입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 선지가 길구를 처음 만났을 때 보이는 적대감이 상당한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 속의 악마는 과거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가족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반면 길구는 가족구성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 무서우니까 건들지 마, 큰일난다’는 식으로 경고를 건넨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다 길구가 가족들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충족시켜주면서 점점 그를 듬직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 길구와 한강 나들이를 간 선지가 다이빙을 하는 장면은 실제 원효대교에서 직접 소화했다고.

그렇다. 당시 8월의 여름에 뛰어든 것으로 기억한다. 밤 선지로 분장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때문에 다이빙에 실패하면 그 장면을 다시 가기 위해 또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 신으로 딱 한번만 찍자고 사전 계획을 세웠다. 그 한번을 잘해내고 싶어서 감독님과 같이 수중촬영 세트장에서 잠수복을 입고 뛰어드는 연습을 여러 번 했다. 감독님이 바라는 선지가 뛰어들 때의 포즈가 콘티에서부터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잘 수행하고 싶었다. 여러 번 촬영했다면 더 잘했을 수도 있겠지만 연습한 대로 결과가 잘 나왔다.

- 선지는 정말로 몸속의 악마가 밤마다 깨어나는 걸 몰랐을까.

낮 선지인지, 밤 선지인지 애매하게 그려지는 영화관 신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감독님, 그때 진짜 선지였을까요? 아니면 악마였을까요?” 명확한 답을 해주시기보다 내가 내린 결론에 따를 수 있도록 감독님께서 열어주셨다. 그 신에서만큼은 관객들도 헷갈리기를 바라서 낮 선지와 밤 선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반씩 담는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오히려 더 잘 표현이 됐더라. 개인적으론 선지가 자신이 밤마다 변한다는 것을 끝까지 몰랐다고 여기고 있다.

- 다양한 면모를 가진 선지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무엇을 얻었다고 느끼나.

선지는 나의 가장 극강의 외향적인 에너지와 코믹함, 드라마적인 감정, 챙겨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담긴 인물이다. 여러모로 도전이었고 그만큼 깨닫고 얻은 것이 많다. 임윤아가 이런 캐릭터도 할 수 있구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표현할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차기작은 드라마 <폭군의 셰프>다. 연지영의 캐릭터 설명에 ‘프렌치 셰프’라 적혀 있는데 프랑스 유학을 꿈꾸는 제빵사 선지가 연상되는 설정이다.

그렇게 세계관을 연결지어볼 수 있겠다. (웃음) 프렌치 셰프인 지영은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한 뒤 목숨을 걸고 왕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된다. 지영이는 무척 당차고 똑 부러지는 캐릭터인데 카리스마까지 있어서 선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인물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극의 포인트는 지영이 한복을 입은 채 수라간에서 요리를 할 때다. 남들과 달리 나 혼자 현대 말투를 쓰고 귀걸이, 선글라스와 같은 현대 소품을 활용한다. 그런 외적인 차별점을 중심으로 시대적 차이를 보여드릴 수 있을 듯해 기대가 크다.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이지만 지영이 요리하는 모습, 완성된 요리도 퀄리티 있게 담길 예정이다. 작품을 보며 배고파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