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김예림)을 좋아하는 야구부원 동준(이찬형), 그런 동준을 마음에 담고 있으며 활달하기 그지없는 예은(오소현), 그리고 늘 친구들과 거리를 둔 채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모범생 미연(김은비). 각각 이 세 캐릭터를 연기한 이찬형, 오소현, 김은비 배우는 각 캐릭터에 대한 상세한 전사와 연구를 다지면서 실제 성격과는 다른 캐릭터의 디테일을 구현했다. 더군다나 평소엔 무서워서 보지 못하는 공포영화까지 열심히 찾아 보며 <강령: 귀신놀이>의 촬영을 준비하기도 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활기찬 장난에 빠져 있던 이들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실제 고등학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듯이 영화에 얽힌 기억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 배우들 사이가 작중 친구들처럼 돈독해 보인다.
이찬형 촬영 이전부터 우리끼리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아무래도 인물들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작품이니까 실제로 친밀해지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대본 리딩이 있거나 스케줄이 겹치는 날엔 항상 함께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소현 완전히 전우애다. 전우애. (웃음) 지하 저수조 세트 내부가 여름이다 보니 꽤 덥고 습한 편이었다. 촬영 현장에 무서운 소품이나 미술 요소가 많기도 해서 더욱더 배우들의 단합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배우들끼리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고 촬영이 진행되면서 더욱더 가까워졌다.
- 강령술의 무대인 지하 저수조로 가기 전에 6명의 인물이 야외나 지하철 등에서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있다. 연기보단 실제에 가까웠던 셈이겠다.
이찬형 촬영이 거의 끝나가는 후반부에 찍었던 시퀀스다. 배우들끼리 가장 친해진 상태여서 더 자연스러운 장면이 연출된 것 같다. 영화 촬영이라는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우리끼리 놀다시피 찍은 기억이 있다. 대사가 안 들어가는 장면이라 그냥 정말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배우들이 직접 오즈모 포켓 카메라를 들고 셀프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옆으로 막 지나가도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 다만 작중 미연은 다른 친구들과 마냥 친한 관계로 그려지진 않는다. 캐릭터의 성격이기도 하고, 이후 드러나는 이야기와도 연관되어 있다.
김은비 이 모임에 억지로 끼어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다!’라는 마음을 되새기면서 촬영장에 있었다. (웃음) 말수가 적을뿐더러 가끔 말할 때도 툭툭거리면서 짧게만 말하는 편이다. 늘 예민한 모드로 있어야 해서 평소보다는 텐션이 훨씬 낮은 태도로 촬영에 임했다. 처음 각본엔 직설적인 욕설이 더 적혀 있었는데, 미연이 성격이면 직관적인 욕보단 뼈를 때리는 핀잔 같은 게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감독님과 함께 대사를 수정했다.
- 맞다. 예민하고 어두웠던 미연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인다. 다른 두분은 어땠나.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찬형 완전히 반대까진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보다 동준이는 장난을 덜 치고 훨씬 듬직한 친구다. 무척 다정하기도 하다. 동준이가 이렇게 따스하고 든든한 친구일수록 후반부에 펼쳐지는 이야기의 당위성이 성립될 것 같았다.
오소현 예은이는 되게 별나고 말도 많고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아이다. 사실 난 낯을 꽤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웃음) 그래서 미연이와는 반대로 평소보다 텐션을 더 높여야 했다.
- 6명의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영화이니만큼 각 배역의 개성이 무척 중요하다. 평소의 성격과 다를 수도 있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신경 쓴 디테일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이찬형 앞서 말한 것처럼 동준이의 다정하고 듬직한 느낌을 최대한 드러내면서도, 어떤 친구를 상대하는지에 따라 사소한 차이를 두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자영이한테만 “자영아”라고 성씨를 떼고 불렀다. 다른 친구들은 다 성을 붙여서 불렀다. 나만 아는 디테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동준이가 지니는 유대감의 정도가 은연중에 드러나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김은비 시선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미연이의 성격상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곁눈질하듯이 시선을 최대한 피하곤 했다. 또 감독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원하신 부분은 ‘의외성’이었다. 공포에 질려 있거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연기에 임할 때 기존의 다른 공포영화에서 자주 봤던 표현 방식보다 더 새롭고 예상치 못한 액션이 나오길 바라셨다. 그래서 난 미연이가 어떻게 이상한 소리를 낼지에 집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함께 사는 반려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웃음) 고양이랑 놀아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상하고 기이한 목소리가 불쑥 나오더라. 그 소리를 잘 기억해뒀다가 실제 연기에도 써먹었다.
오소현 예은이도 마찬가지로 시선의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예은이의 시선 끝에 언제나 동준이가 있단 걸 눈치챌 수 있을 거다. 위기의 순간에도 늘 동준이의 반응부터 살피는 리액션을 펼친다.
- 인물들간의 관계성이 서사를 이끌고 반전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중에선 꽤 오래된 친구들 사이로 그려지는데 친구들의 전사를 각본 단계에서 논의한 부분도 있나.
이찬형 초반부에 화상으로 공모전 회의를 할 때 화상 회의실 명칭이 ‘계상고 노답들’로 나온다. 이게 원래는 ‘계상고 10년지기’였다. 그래서 이 친구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인물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소현 또 하나 얘기하자면 예은이가 동준이를 좋아하고 있단 사실을 자영이에게 다 털어놨을 거란 설정도 있었다. 둘이, 그리고 이 친구들이 그만큼 친한 사이였다는 거다. 이렇게 친했던 만큼 후반의 반전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은비 미연이는 가정 환경이 그렇게 좋지 않은 아이로 설정됐었다. 그래서 공모전 상금에 대한 욕심도 더 컸던 것 같다. 자세히 보면 화상 회의 때 배경으로 나온 미연이의 방도 다른 친구들의 집보다 조금 허름한 분위기로 연출됐다. 이런 만큼 남들보다 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친구이기도 했다.
- 각 배역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일도 무척 중요했을 것 같다. 우선, 평소 공포영화를 잘 보는 편인지 궁금하다.
김은비 스릴러나 범죄물은 좋아하는데 공포영화는 너무 무서워서…. (웃음) 극장에서 보면 사운드가 크니까 더 무섭고.
이찬형 나도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웃음) 이번 작품을 준비하려고 참고차 많이 보긴 했는데 여전히 익숙해지지는 않더라.
오소현 나도 혼자서는 못 본다. 누구랑 같이 보면 보는 정도다. 긴장하는 호흡이나 깜짝 놀랄 때의 표정을 연구해야 하니까 공포영화나 인터넷에 있는 폐가 체험 영상 같은 것들을 보긴 했는데 늘 견디기 힘들었다. (웃음)
- 공교롭게도 공포영화를 못 보는 분들이 모여서 이런 공포영화를 찍다니. 재밌는 사실이다. 촬영 현장에서 가장 겁이 많았던 배우는 누구였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오소현, 김은비 배우가 이찬형 배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김은비 (이찬형 배우가) 진짜 진짜 겁이 많다. (웃음)
오소현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겁 많은 사람이다.
이찬형 동준이가 가장 듬직한 캐릭터여야 하는데… 참 나랑 맞진 않았다. (웃음) 친구들이 어둡고 좁은 복도에 일렬로 서서 이동하는 장면이 있다. 동준이가 맨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자리에 있어야 했던 때다. 사실은 맨 뒤에 서기가 너무 무섭고 싫었다…. (부끄러워하며.)
오소현 그때 거의 울었잖아. (웃음)
이찬형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김은비 배우들이 얼굴에 피 묻은 분장을 하고 나왔을 때도 무서워서 막 도망쳤었다.
이찬형 그럴 만했다! 심지어 친구 중 누군가가 막 이상한 주문을 외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이었다. 설정상 어쩔 수 없이 동준이가 맨 앞에 서서 말려야 했지만 마음은 정말 공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복도 공간을 언급했는데, 영화의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수조 세트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오소현 너무 으스스했다. 천장에 전구들이 달려 있는데 실제로 깜빡거리면서 흔들렸다. 세트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영화의 공포감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찬형 저수조 내부가 완전히 오각형이고 벽 모양이 똑같아서 더 무섭다. 인물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데 우리도 매번 헷갈려서 다른 자리에 앉기도 했다. (웃음) 빛이 아예 안 드는 폐쇄 공간이라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알 수 없다. 후반부에 보면 부적이 가득 붙어 있는 공간이 등장하는데 결국 그 부적, 장소와는 친해지질 못하고 끝까지 무서워한 기억이 있다.
- 각자 <강령: 귀신놀이>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을 꼽는다면.
김은비 후반부에 예은이가 확 돌변해서 폭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귀신들이 나오는 것보다 훨씬 무서웠다. (웃음) 사람이 극한의 공포에 몰리면 저렇게까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오소현 아, 사실 그 장면의 각본엔 훨씬 적나라하고 신랄한 욕이 대사로 적혀 있었다. 처음엔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살벌한 욕까지 할까…?’라는 의문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촬영 때 몸싸움도 하고 벽에 부딪히는 액션까지 하며 힘에 부치니까 욕이 알아서 잘 나오더라. 감독님이 아주 만족하셨던 기억이 난다. (웃음) 무서웠던 건 미연이가 모종의 이유로 친구들을 공격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찬형 맞다. 미연이가 나를 확 치고 가는데 그것도 너무 무서웠고, 벽에 머리를 막 부딪히는 행동을 할 때도 정말 께름칙했다. 문제는 그때도 동준이가 가장 먼저 미연이한테 가야 했다는 거다…. 영화 속 장면으로나 실제로나 가장 무서웠던 때다.
- 만약 영화 속 설정처럼 강령술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지를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을 묻고 싶나.
김은비 음… ‘내가 더 성공할 때까지 우리 집 고양이가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일 것 같다. (웃음) 반려동물을 처음 키우는데 너무 많은 마음과 애정을 주고 있다. 최대한 오래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찬형 개인적으론 내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있고 싶단 마음이 크다. 뭔가를 미리 알고 있는 것보다 매일매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상을 보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
오소현 두 의견에 다 공감이 간다. 우선 나도 우리 집 강아지랑 오래 살고 싶기에. (웃음) 한편으론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직접 부딪쳐야 의미가 있겠단 생각도 든다.
이찬형 그럼에도 하나 생각해보자면 ‘<강령: 귀신놀이>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순 있을 것 같다. (웃음)
오소현 뭐야! 그러면 나도 ‘우리 영화가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을까요’란 질문으로 바꾸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