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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Talk]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과 김성식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 ➁

- 김성식 기술적으로 궁금한 것들에 관해 질문하고 싶은데, <쥬라기 공원>은 애니매트로닉스(생물을 모방한 로봇을 사용하여 촬영하는 기술.-편집자)를 많이 사용했잖아요. 이번 영화에서는 애니매트로닉스 비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이런 규모의 할리우드영화는 보통 연출을 제안하는 전화를 받는 날부터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2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경우, 전화를 받고 처음 들은 말이 “1년3개월밖에 없다”였어요. 거의 절반의 시간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 백그라운드가 컴퓨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어요. 흔히 영화제작 과정에서 멋진 실물로 만든 크리처를 카메라 앞에 세워 촬영해놓고 처음 만든 걸 지워버린 뒤 컴퓨터로 다시 크리처를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서 많은 돈을 낭비하죠.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공룡을 실제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컴퓨터 작업을 할 거라면 처음부터 그걸 인정합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대신 퍼펫티어와 퍼포머를 불러 그림자극처럼 다양한 크리처를 표현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시 돌아가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2년 반 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더라도 같은 접근법을 썼을 거예요.

- 김성식 영화 <크리에이터>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한 것 같아요. 컨셉을 먼저 구상하기보다 일단 다 찍어놓고 후반작업을 길게 하는 방식. 그 방식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애니메이션을 해서 잘 아는데, 만들어놓은 크리처를 지우고 다시 VFX 작업으로 돌아가 랜더를 걸면 시간이 많이 낭비되죠.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 동안 퀄리티도 떨어집니다. 개러스 감독님은 아주 영리하게 작업하신 것 같네요.

= 개러스 에드워즈 좀 이상한 비유일 수도 있지만, VFX 작업이 많은 영화들은 보통 이렇게 움직입니다. 벽에 과녁을 그려놓듯이 “크리처를 이 정도 퀄리티에 꼭 맞춰야 해”라고 목표를 정하죠. 그리고 감독이 다트를 던져서 그 과녁의 중심에 맞추려 애씁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연출한 <크리에이터>나 <몬스터즈>처럼 소규모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은 그것과 완전히 달랐어요. 말하자면 다트를 먼저 던졌습니다. 일단 뭐든 찍고 보는 거죠. 그리고 다트가 어디에 꽂히든, 그 자리에다 과녁을 그리는 거예요. 일단 촬영을 해두고 ‘진짜 멋있다’ 싶은 장면 위에 뭘 얹을 수 있을지 디자인하면 과녁의 중심을 정확히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이런 멋진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먼저 정해두면 제작비만 수백만달러가 들어요. 길거리에 나가 몇 시간 동안 촬영하고, 그중 제일 흥미로운 장면 위에 무언가를 디자인해 합성하면 비용은 백달러 정도밖에 안 듭니다. 엄청난 차이죠. 저는 후자의 방식이 더 창의적이고 더 저렴하다고 봅니다. 왜 다들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슬프게도 할리우드가 쉽게 바뀌지 않네요.

- 김성식 맞아요. 예산이 많이 드는 할리우드에서는 컨셉 아트가 있고 그에 맞춰 똑같이 만들기로 약속하는 방식이죠. 감독님처럼 일단 촬영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VFX 작업을 하면 효율적이고 합성 티도 안 나서 좋은 것 같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하지만 누군가에게 가서 “천만달러 주세요, 아직 영화가 구체적으로 예상되지 않았지만 가서 알아낼게요”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게 이 방식이 어려운 이유예요.

- 김성식 저도 크리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크리에이터>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인데요. 하지만 한국 크리처영화를 보면 잘 모르겠어요. 컴퓨터그래픽 툴 자체가 외국 것이어서 그런지, 광선이 안 맞아서 그런지, 한국 크리처들은 VFX인 게 늘 티가 난단 말이죠. 제작비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몬스터즈>를 보면 꼭 돈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 작품에서 VFX 합성 티가 안 나는 건 라이트 때문인지 텍스처 매핑 덕분인지 궁금합니다. VFX 작업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나요.

= 개러스 에드워즈 제가 첫 영화 <몬스터즈>에서 쓴 방식은, 무리하지 않고 사용 가능한 빛만 이용해서 촬영하는 것이었어요. 그냥 그 공간에 들어가서 바로 찍는 거죠. 그럼 인위적으로 보일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든 방 안의 조명이든 원래 있던 빛으로 찍는 거니까요. 시작부터 현실적이죠. 그런 다음 CG를 추가하더라도 배경이 이미 현실적이라 그 안에 뭔가를 더해도 진짜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문제는 영화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유혹도 커진다는 거예요. ‘조명을 써야지, 영화처럼 보여야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거든요. 그런 식으로 조명 장비들을 세팅하고 반짝이는 조명을 쓰기 시작하면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CG까지 넣으면 CG도 반짝반짝하게 처리돼 전혀 현실적이지 않죠. 마치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처럼 보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혹은 CG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촬영하는 실사 영상 자체가 최대한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 김성식 백그라운드 소스도 자연광으로 찍고 합성해야 할 소스도 자연광으로 찍으면 좋겠네요.

= 개러스 에드워즈 맞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거의 대부분 조명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반사판으로 배우 얼굴에 빛을 반사시킨다거나, 바운스 조명(피사체를 직접 비추지 않고 빛을 반사시켜 피사체에 비추는 방식의 조명 연출.-편집자)으로 인위적인 빛을 만들면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현실 세계와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겉으론 예쁘겠죠. 광고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진짜 어려운 건 수십만달러짜리 장비를 준비해온 사람들 앞에서 “이 장비들 사용하지 말고 그냥 트럭에 놔두세요” 혹은 “그 조명 꺼주세요”라고 말하는 용기입니다.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화 중 하나가 <블레이드 러너>인데요. 그 영화와 관련한 일화를 좋아해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당시 촬영장에 도착하면 세트에 조명이 스무개씩 설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는 늘 “이 조명들 전부 꺼주세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런 다음 조명을 하나씩 켰다 껐다 하면서 마음에 드는 조명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꺼버렸습니다. 조명 하나로 장면 전체를 찍은 거죠. 그런데 그 결과물인 <블레이드 러너>가 정말 아름다워요. 결국 아름다운 이미지는 ‘정보를 덜어내는 것’에서 나옵니다. 관객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게 중요하죠. 요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메라 제조사들은 픽셀이 얼마나 많은지, 해상도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 ‘암시된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20년 뒤 관객이 추억할 영화

- 김성식 더 질문하고 싶지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김성식 감독님이 제 이전 영화들에 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영화들이 처음 개봉했을 때 저는 좀 허탈했어요. 첫 영화 <몬스터즈>는 거의 아무도 보지 않았고 흥행도 안됐거든요. <고질라>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한 10년쯤 후에 그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들이 다가와서 따뜻한 말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영화라는 건 이번 주말, 개봉 후 몇주, 이번 여름 등 짧은 순간만을 위한 게 아니란 걸요. 정말 중요한 건 10년, 20년 후에 그 영화가 어떻게 기억되느냐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 바람은 한국 관객들이 이번 여름에 이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는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10~20년 후에 제가 또 다른 영화를 들고 한국에 왔을 때 누군가가 “아,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저한테는 그게 박스오피스 성적이나 평론가들의 평가보다도 훨씬 더 큰 보상입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이 그 영화를 즐겨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가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자 기쁨일 거예요.

VFX 아티스트가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은 연출자로 데뷔하기 전에 10년간 VFX 아티스트로 일하며 <BBC> 시리즈와 TV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장편영화 데뷔작 <몬스터즈>(2010)를 만들기 위해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촬영했으며 VFX까지 맡았다. <몬스터즈>의 장면 대부분은 그를 포함해 프로듀서, 녹음기사, 스페인어 통역 스태프, 단 네명의 힘으로 완성되었다. 제작비 20만달러 수준인 독립 SF영화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몬스터즈> 제작비의 800배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된 영화 <고질라>(2014) 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했으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까지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