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식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 퇴마 연구소>)을 만든 감독 김성식입니다. 반갑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안녕하세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연출한 개러스 에드워즈입니다.
- 김성식 제가 되게 좋아하는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감독님의 데뷔작 <몬스터즈>도 좋아하지만 <크리에이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감사합니다. 저도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예고편을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부럽습니다.
- 김성식 감독님은 <고질라>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통해 프랜차이즈 영화를 많이 연출했습니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물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 개러스 에드워즈 어릴 때 <쥬라기 공원>을 보고 공룡을 좋아했고, <스타워즈>를 보고는 우주선에 빠졌습니다. 그땐 우주인이 되어 우주로 나가고 싶었죠. <스타워즈>가 허구란 걸 알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김성식 새로운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구상했는지 궁금합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오리지널 영화가 걸작이기 때문에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정말 사랑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을 오마주하고, 그 작품에 대한 일종의 러브레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비유하자면 유니버설 스튜디오 창고에서 잊고 있던 필름 릴을 발견해 먼지를 털어보니 <쥬라기 월드>라고 쓰여 있어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라 이름 붙인 것처럼 느껴졌으면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이나 19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같았으면 했죠. 제가 어릴 적에 영화관에 가서 큰 스크린에 나오는 모든 것에 경외감을 느꼈던 그 시절 영화처럼요. 제가 어릴 적에 사랑했던 영화의 분위기를 담아내려 했어요.
- 김성식 지난주에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봤는데 이야기 구조가 <쥬라기 공원>과 비슷하더라고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첫 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나오는 장면도 있고, 탐험을 떠나는 멤버들의 이야기도 비슷했습니다. 과거 사운드트랙을 쓴 것도 정말 소름 돋는 선택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과거 작품을 많이 활용한 줄 알았는데 중반부터 차이를 느낀 거죠. 크리처가 등장해 세계 여행을 하던 멕시코 가족이 표류한 뒤로 서스펜스가 시작돼요. 개러스 감독님 특유의 서스펜스는 <몬스터즈> 때부터 느꼈습니다.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걸 보고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감사합니다. 저도 질문해도 되죠? 호러영화나 장르영화에는 이런 초현실적인 존재나 몬스터가 등장하잖아요. 영화를 반으로 나눠 첫 절반은 관객의 상상력을 이용해 긴장감을 주고, 나머지 절반은 크리처를 드러내고 캐릭터들이 도망가고 탈출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영화감독으로서 저는 첫 절반을 만들어가는 게 훨씬 즐거워요. 그래서 그 부분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늘리죠. 김성식 감독님은 이러한 영화의 두 구간에 어떻게 접근하나요. 관객들이 크리처나 공포스러운 존재를 보기 전까지 미칠 듯한 감정을 느끼지만 막상 그 존재를 보고 나면 긴장감이 떨어지잖아요.
- 김성식 저도 미지의 존재가 덜 드러나는 구간을 길게 유지하고 마지막에 두려운 존재를 딱 한 장면이라도 보여주는 방식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9:1? (웃음) 한국 감독님들 중에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을 보면 아예 초반에 크리처가 등장해버리잖아요. 오히려 역으로 구성하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괴물>은 특별한 경우인 거죠.
= 개러스 에드워즈 그럼 미국 장르영화와 한국 장르영화 간에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요? 아무래도 관객이 다르다보니 차이점이 있을까요? 유사성이 있다면 뭔가요.
- 김성식 한국 관객들은 까다롭기 때문에 항상 달라야 하고 감독들도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비슷비슷하면 관객의 불만이 많아져서 감독들이 관객의 요구를 잘 수용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매번 유사한 영화를 만들면 한국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이 있죠. ‘할리우드 장르 법칙을 따르는 영화를 만들면 안전하다.’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근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법칙을 따라가다가 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저 역시 할리우드 법칙을 따르지 않는 작품이 좋더라고요. 개러스 감독님의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 법칙을 따르지 않고 많이 변주됩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저는 사실 할리우드 작법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냥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웃음)
- 김성식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제작사랑 많이 싸울 것 같아요.
= 개러스 에드워즈 모든 영화감독의 딜레마죠. 영화를 만든다는 건 관객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예상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게임 같기도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면서 조언을 들었는데요.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셰프가 되어 관객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셰프와 달리 영화감독이라면 관객들이 허기진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관객들이 배부른 상태로 극장을 떠난다면 그 영화감독은 실패한 겁니다. 관객들이 원하는 걸 바로 주지 않고 연장시켜야 한다는 조언이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이 관객이 생각하는 걸 다 표현해버리면 오히려 관객은 실망하죠.
영화감독이 되는 새로운 길 VFX
- 김성식 <쥬라기 공원>의 옛 스태프들이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들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네요.
= 개러스 에드워즈 오리지널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데이비드 켑 시나리오작가, 프랭크 마셜 프로듀서와 함께했는데요. 데이비드 켑과는 이번에 처음 일했습니다. 이번 영화 작업을 하면서 전에 몰랐던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데이비드 켑과 줌으로 처음 대화를 할 때 그의 벽에 붙은 1930년대 영화 <킹콩>의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그걸 계기로 괴수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고 느꼈습니다. 두 사람의 영화 취향이 완전히 같았습니다. 제 인생 영화를 그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이후 데이비드 켑과 원활하고 즐겁게 협업했습니다. 프로듀서든 스튜디오든 작가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와 좋지 않은 영화가 영화감독과 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모든 갈등은 항상 ‘좋은 영화’에 대한 차이에서 발생하거든요. 모두들 “가장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갈등은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의견이 갈릴 때 일어나요. 그러므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가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와 일치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같이 일할 사람을 찾을 때도 이런 관점이 필요합니다.
- 김성식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VFX 아티스트로 일하셨잖아요. 저도 애니메이터로 일하다가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VFX 작업이 많이 필요한 영화를 만들 때 과거 VFX 아티스트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김성식 감독님께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VFX 아티스트로 일할 때 커리어를 잘못 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로는 영화감독이 못될 것 같았어요. 오히려 영화감독이 된 뒤에야 VFX가 정말 유용한 능력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촬영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영화감독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집, 시나리오로 시작한 경우도 있죠. 애니메이션과 VFX는 이제 영화감독이 되는 새로운 길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영화에 그 기술들이 많이 쓰이니까요. 저는 TV나 영화 어느 영역에서건 일을 정말 잘하는 분들의 궁극적인 꿈은 감독일 거라고 장담합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감독으로 성공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영화감독으로 향하는 시작점이 중요한데 저는 감사하게도 <쥬라기 공원>에 빠져서 컴퓨터그래픽스를 배웠고 그를 통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질문을 해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 만드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VFX 아티스트였을 때가 훨씬 행복했던 것 같아요. 김성식 감독님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더 행복했나요, 아니면 지금처럼 영화감독일 때가 더 행복한가요?
- 김성식 아직 한 작품만 만들어서 모르겠는데 더 성공하면 불행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죠. 저도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근데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어렵다보니 직업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화 연출부 일을 시작했고,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영화감독으로 일하면 재밌습니다. 하지만 거대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게 정말 스트레스인 것 같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영화학교에 다닐 때나 어릴 때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다보면 그건 전혀 어려운 게 아니구나 깨닫습니다. 영화 아이디어는 누구나 하나쯤 있잖아요? 진짜 난관은 아이디어는 있고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다고 100명에게 설득하는 과정이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계속해서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이요. 그래서 김성식 감독님이 말한 대목에 깊이 공감합니다. 머릿속의 구상을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노력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클래식 쥬라기 패밀리의 귀환
<쥬라기 공원>을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고, 오리지널 영화의 시나리오작가인 데이비드 켑이 시나리오를 썼다.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이 언급한 제작자 프랭크 마셜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공동 창업자로 유명하며, <쥬라기 공원> <쥬라기 공원3>의 프로듀서였으나 당시에는 크레딧에 포함돼 있지 않다가 2020년대에 리부트한 <쥬라기 월드> 시리즈부터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