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신종원 글 한규현 그림 소전서가 펴냄
신종원의 장편소설 <불새>를 읽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고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예정되어 있던 시기였다. 공교롭다고 말한 까닭은 이 소설이 젊은 사제 바오로를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양을 찾아 떠나지만, 드물게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양들이 그들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노아가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또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빚어질 때 이미 목자로 명명되어 일생 양들을 이끈다.” 이 대목에서 바오로 신부가 등장한다. 그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 그런데 성당에 다니냐는 옆자리 사람의 말에 그는 “네, 그런데 이제 그만두려고 합니다”라는 비밀을 누설한다. 비행기에 탄 이유는 곧 밝혀진다. 성직을 내려놓겠다는 바오로 신부에게 아버지 신부인 베드로는 “네 눈으로 직접 성배를 보고 돌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일의 발단은 이렇다. 성가대원이었던 헬레나의 임신 고민을 들은 바오로 신부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조언한 일이 헬레나가 죽음을 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바오로의 믿음을 뒤흔들었다. 최후의 만찬에 쓰였던 성배를 보고 오는 일은 무엇을 바꿀까?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는 수많은 창작물의 영감이 되었다. ‘성배’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스릴러로 풀어낸 소설(과 영화) <다빈치 코드>가 있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이 있었다. 신종원의 <불새>는 상징으로서의 ‘성배’와 실재하는 성물로서의 ‘성배’의 이야기가 긴 시간을 오가며 진행된다. 유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힘과 권력은 믿음과 어떻게 상관관계를 맺는가. 제목 ‘불새’는 어떤 존재인가. 질문을 빚고 그에 답하며 <불새>는 바오로의 발걸음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종교사를 근간에 두고 지금 여기의 구원에 대해 질문하는 집요함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다.
<불새>는 소전문화재단이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 집필을 후원하는 ‘문학과 친구들’ 프로그램의 결과로 출간된 ‘내일의 고전’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책을 읽은 독자에게 즐거움이 될 작가 인터뷰와 평론가 3인(이소, 김다솔, 양순모)의 서평이 실린 <불새: 인터뷰와 서평들>이라는 소책자가 함께 제공된다. 신종원은 말한다. “근래에는 소설 쓰기가 일종의 기도와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봉쇄 수도원에서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신앙과 믿음에 관한 책을 쓰는 수도사들처럼. ” 오직 싸우고 쓰면서 은총을 느끼는 것만이 길이라고 믿는 신종원의 <불새>는 4원소(물, 불, 바람, 흙)를 테마로 하는 ‘4원소 테마’의 두 번째 책으로 첫 번째 물을 다룬 장편소설 <습지 장례법>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
동트기 직전의 밤이 언제나 창백한 푸른빛을 띠는 까닭은 두려움에 있다. 머지않아 어둠을 가로지르며 나타날 불새 한 마리를 일찌감치 상상하고 겁에 질리는 것이다. 343쪽
*책을 읽은 독자에게 즐거움이 될 작가 인터뷰와 평론가 3인(이소, 김다솔, 양순모)의 서평이 실린 <불새: 인터뷰와 서평들>이라는 소책자가 함께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