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치의 장벽 위에서 벌인 영화의 소동
- <미키 17>까지 나온 상황에서 감독님께 종합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지금 돌아보건대 해외 프로덕션에 기반한 작업으로 규모와 방식을 점차 확장해나가는 과정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있다고 보시나요? <설국열차> 전후로 작품을 계획하는 시야가 달라졌다거나 하는.
<설국열차>는 제작진, 투자배급사(CJ 엔터테인먼트)까지 사실상 한국영화인데 다만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이 찍는 방식’으로 찍은 거예요. 인류 생존자가 타고 있는 기차인데 거기에 남북한 사람들만 타고 있으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북미 배우들이 주요 역할에 있다 보니까 처음으로 미국배우조합(SAG)의 영향을 경험했죠. 계약 조건부터 현장을 찍어나가는 방식까지 구체적인 차이가 있었죠. 예를 들면 아역배우들도 연령대별로 세분화해서 촬영 가능 시간과 휴식 시간을 정하는. 미국 배우조합이 스튜디오와 몇십년간 줄다리기를 해서 만든 세밀한 규정을 학습한 셈입니다. 외국어영화 작업으로 놓고 보면 사실 첫 번째 경험은 일본에서 찍은 30분짜리 옴니버스영화 <도쿄!> 중 <흔들리는 도쿄>인데 통역을 거쳐 외국어 배우들과 작업해본 최초의 경험이었죠. 외국 스태프와 첫 작업은 <살인의 추억> 때 함께한 일본 작곡가 이와시로 다로와 일한 것이고 <괴물> 땐 CG와 특수효과 부문에서 미국, 호주, 뉴질랜드 스태프들과 두루 작업했으니 하여간 조금씩 국제적으로 뒤섞이는 작업에 익숙해져온 셈이 아닌가 싶어요. <옥자>도 미국은 물론 서울, 강원도 촬영까지 주로 영국, 미국 스태프가 동행했고요.
- <옥자>가 봉준호의 넷플릭스행, 극장 상영 문제를 놓고 분분했던 상황도 옛말이 됐습니다.
<옥자>는 투자해주겠다는 회사가 없었어요. 예산이 500억~600억원 정도였는데 그건 <옥자>라는 CG 크리처를 정교하고 실감나게 묘사해야 성립되는 영화였기 때문이죠. 그 돼지 때문에 울고 웃고 쫓아다니는 건데 CG 캐릭터가 조금이라도 가짜 같은 느낌이 나면 설득력을 잃고 스토리가 붕괴되니까. 500억원 이상 규모는 한국이나 아시아, 유럽의 투자배급사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고 월드와이드 배급을 전제로 하는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소니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로 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다 거절했어요. 주로 ‘실제 도살장을 찍을 거냐’, ‘육식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같은 말들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주요 영화 제작사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단계였고 시기가 맞아떨어진 거죠. “원하는 예산 100%를 다 주겠다. 도살장에서 피바다를 찍어도 상관없다. 다 마음대로 해라. 최종 편집권까지도!”(웃음) 대신 극장 개봉을 아주 작은 규모로 제한적으로 한다는 조건이었는데 영화 자체를 찍을 방법이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요.
- 할리우드 프로덕션, 장기간의 세트 촬영, 외국어 통역 과정 등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에서 <미키 17>은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수월한 과정이었겠습니다.
<미키 17> 찍을 때는 특별히 낯설거나 이상한 건 없었어요. 대신 워너브러더스는 오랜 전통의 스튜디오라 프로듀서들 말로는 딱 짜여진 서류 양식이 있고, 사인해야 하는 게 많고, 심지어 마약 탐지견이 한달에 한번씩 프리프로덕션 사무실에 와서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스태프들 약물 검사까지는 아니지만 한번씩 마약견이 와서 훑고 가더라고요. 한 가지 새로운 변화로 마음에 든 것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존재입니다. 애정 신을 촬영할 때 감독과 배우 사이를 아우르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에요.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으면서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지 않도록 미리 다 체크하죠. 저는 스토리보드를 상세히 주니까 이 코디네이터가 좋아했어요. “이 장면에선 배우의 무릎 아래 쪽은 안 나오는 거죠?” 이런 식으로요.
- 한국영화 기준으로 최근작인 <기생충>이 부수적으로 갖는 산업상 의미는, 표준근로계약 도입과 맞물려 선진적인 프로덕션이 지켜졌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게 참, 제가 공언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언급되니 많이 민망했어요. 한국에 돌아왔더니 이미 기틀이 마련되어 있었고 저는 미국 시스템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단련이 되었으니 운 좋게 그걸 잘 따를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인의 추억> <괴물>을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촬영하다가 쉬고 싶을 때도 많아요. <기생충> 때 스태프들만 좋았던 게 아니라 감독인 저도 좋았죠. 지금에 이르러 결정권 측면에서 한국 스태프들이 미국, 영국보다 나은 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촬영 시간을 조금 연장할 경우 한국은 조수, 어시스턴트 스태프들이 투표할 수 있습니다. 추가 촬영 시간을 계산해서 수당을 주겠다고 해도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안 받고 쉬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는 거죠. 반대로 <미키 17> 땐 우리도 한두번 시간을 오버한 적이 있었는데 프로듀서들이 다 다독이고 설득해서 얘기로 잘 풀었어요. 물론 추가근무수당은 당연히 나가는 거지만. 최근에 이상일 감독과 영화를 찍은 홍경표 감독에게 일본 사례를 물어보니 전반적인 급여도 오히려 일본보다 높아져 역전된 것 같더라고요. 제가 <흔들리는 도쿄> 시절에 세컨드 조감독이었던 가타야마 신조(<실종>)에게 물어봤을 때만 해도 한국 세컨드 조감독과의 급여 격차가 상당했거든요.
- <더 밸리> 작업은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와 시작해 영국 회사와도 협업 중이시죠.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해서 캐릭터디자인을 비롯한 여러 기본 세팅, 프리프로덕션을 함께했어요. 여기에 더블 네거티브라는 영국 CG 회사가 결합해서 함께 굴러가고 있는 상황이죠. <미키 17> 엔딩 크레딧을 보면 자막에 서너 군데의 CG 회사가 올라가는데 그중 메인 회사죠.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부터 많은 할리우드영화를 해온 영국의 메이저 CG 업체인데 그중 애니메이션 부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꾸린 CG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이 40명 정도, 런던 더블 네거티브에도 비슷하게 40~50명 있고요, 또 같은 더블 네거티브인데 캐나다 몬트리올 오피스의 인원들이 있어요. 서울, 런던, 그리고 북미 동부인 몬트리올까지 시간대가 다 다르죠. 서울 스태프들이 퇴근할 때쯤 런던 사람들이 출근하고, 런던 사람들이 퇴근할 때쯤 몬트리올 사람들이 출근하니까 거의 24시간 돌아가는 거예요. 피드백과 리뷰를 바라는 작업 결과물은 계속 저한테 오죠. 파이프라인이 한번 가동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제가 멈추면 수십명이 멈춰서 기다려야 해요. 그러면 시간적, 예산적 손실이 크니까 거의 강제로….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계속 일하듯이 이어가는 형국이랄까. <미키 17> 홍보하면서도 호텔방에서 계속 작업했고 방금 전에도 하다 왔어요. 죽겠어요. (웃음)
- 만화책에 가까운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콘티뉴이티로 정평이 난 감독님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게 아무리 스토리보드를 제가 정교하게 한다고 해도 실사영화는 현장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어서 오히려 그걸 잘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컴퓨터가 즉흥연기를 보여줄 리도 없고 모든 것을 단계적으로 다 만들고 다듬어서 하는 건데, 몇년 전에 시드니에서 조지 밀러(<매드 맥스> 시리즈 등) 감독님을 만났을 때 관련해서 제가 질문 공세를 했어요. 펭귄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가 있었잖아요. 이것저것 붙잡고 물어봤죠. 그러더니 되게 행복하고 온화한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면서 “봉~ 유 캔 체인지 애니타임, 언틸 더 라스트 미닛”(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실사영화의 고통을 경험한 감독 입장에선 너무 좋다는 거죠. 제가 그 얘기를 한국에 와서 우리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들한테 했더니 전부 다 사색이, 기겁하는 얼굴이 되어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물론 때로는 저도 변덕을 부리고 수정도 하지만 예산과 시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아주 눈치가 보여요. 애니메이션만의 복잡한 파이프라인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계속 돌아가는 상태에서 뭔가 바꾸려고 하면 사람들의 싸늘한 눈빛을 이겨내야 하는 그런 게 있죠. 안되겠다, 조지 밀러 감독님을 다시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
- 지금 작업의 몇 퍼센트쯤 왔나요.영화와 달리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촬영), 후반작업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이걸 퍼센티지로 표현하긴 어렵고… 아주 오랜 기간의 포스트프로덕션과 프리프로덕션이 믹스된 듯한 느낌이에요. 지난해 4월에 LA에서 배우들을 모아서 녹음했어요. 녹음한 목소리(보이스)를 가지고 라디오 드라마 편집하듯이 일단 1차 편집하고, 거기에 립싱크와 여러 퍼포먼스를 맞춰서 그림을 만드는 데 벌써 1년이 됐네요. 올해가 실사영화로 치면 촬영 기간과 가장 비슷한 시기일 테고요. 내년 봄, 여름쯤에 후반작업을 하겠죠. 음악 녹음하고 믹싱, DI 하는 게 2026년이 될 것 같아요. 배급 계획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2027년이 될 것 같네요.
- <미키 17>도 로버트 패틴슨 배우의 두 가지 목소리는 물론이고 크리퍼의 목소리가 화제가 됐습니다. <더 밸리>도 목소리가 주는 힘이 크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은 미국 배우들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한국 개봉 버전은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제가 직접 디렉팅을 할 생각입니다. 보통 자막판, 더빙판 이렇게 두 가지로 개봉하니까 한국 개봉판만큼은 제가 목소리 더빙에 관여하려고 해요. 현재 배우들 라인업을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고, 내년 봄쯤에 보통 실사영화 때 후시녹음하듯이 녹음을 진행할 것 같습니다.
- 영화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미키 17>의 전세계 개봉을 일단락 짓는 시점에서의 소회를 들려주신다면요. 인터뷰하는 오늘, 곧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미키 17>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특히 북미와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성적이 안 좋네요. 전체적인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로 봤을 때는… <설국열차>가 손익분기점이 넘는 데 7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배급사 얘기로는 2013년에 개봉해서 2020년에 손익분기를 넘었다고 하는데 아마 <미키 17>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일본과 중동에서 4월에 개봉했으니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익분기까지 가려면 험난한 여정이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개봉 중인 상태니까 이 영화가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고요. 워너브러더스가 스튜디오 중에 상대적으로 점잖다고 해요. 저를 붙잡고 괴롭히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서로가 계약서대로 진행하면서 체크할 부분만 짚어가며 정상적으로 개봉한 거고요, 앞서 개봉 시기와 관련해 복잡한 논의가 있기는 했죠. 아이맥스 상영 관련해서, 그리고 SAG 스트라이크(배우조합 파업) 변수 등으로. 일단 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미키 17>은 제가 바라는 대로 다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후회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루틴이 있는데, 제 영화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그걸 진열장에 꽂는 의식 같은 거예요. 집에 다른 감독님들 영화와 더불어 제 영화 블루레이가 순서대로 꽂혀 있거든요. 한편의 영화를 오래 작업하고 나서 블루레이가, 그러니까 손에 만져지는 물체로서 영화가 나오면 그걸 책장에 딱 집어넣을 때 비로소 “끝났다”라는 느낌이 찾아와요. <미키 17>에도 그 시점이 오겠죠. 그때 집에서 혼자 조용히 영화를 다시 보면 이런저런 생각도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올 하반기쯤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