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계의 가장 기이한 인물. 1939년생의 노장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만든 신작 <도주>(2025)가 7월19일과 20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을 만났다. <도주>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번 상영회는 자주영화상영회와 <도주>의 제작·배급사 우즈마사가 공동주최한 ‘제3회 자주영화상영회 특별상영’으로 추진됐다. <도주>의 고바야시 산시로 총괄프로듀서가 내한하여 관객과 대화를 나눴고, 일본에 있는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화상 GV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직접 상영회에 오지 못한 이유부터가 그의 독특한 삶을 대변한다. 그는 현재 일본 정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상황이다. 1974년부터 일본적군파(1970년대에 생겨난 반정부 게릴라 집단) 소속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 등에 참여한 그는 1997년 국제 범죄자로 체포되어 2000년 일본에 강제송환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묘함은 단순히 영화인이 무장 테러리스트 활동을 펼쳤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핵심은 그의 투쟁 방식이 본인의 영화미학과 하나의 궤를 이루며 나아갔다는 사실에 있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1959년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 들어간 후 영화연구회 활동을 통해 독립 제작, 이른바 자주영화라 일컬어지는 언더그라운드 영화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얼굴>을 만든 데시가하라 히로시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진영 등과 어깨를 견주며 195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실험영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영화 운동은 정치적 투쟁으로 직결됐다. 1960년 미국이 일본을 군사 거점으로 삼기 위한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아다치 마사오는 ‘VAN 영화과학연구회’를 조직하여 시민들의 투쟁과 정부의 폭력 사태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1963년엔 <쇄음>과 ‘쇄음 의식’이라는 총체적 영화 운동을 펼쳤다. <쇄음>은 감독 없는 영화다. 제작위원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각자의 이미지를 찍어 그 필름을 다음 구성원에게 넘겨 합치는 급진적 제작 방식을 택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상영을 금지당한 후엔 쇄음 의식이라는 운동을 펼쳤다. 각지에서 게릴라 상영회를 열며 경찰과 무력 대치하는 등 항거를 이끌었다. 이후엔 와카마쓰 고지 감독과 협업으로 다수의 핑크영화에 이미지의 파격적인 전위와 장르 서사의 전복을 도입하기도 했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계기는 <약칭: 연쇄살인마>(1969)다. 1968~69년 일본에서 권총을 사용해 4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나가야마 노리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당대 일본 예술계의 ‘풍경론’을 이끈 대표작이 되었다. 영화엔 극적 내러티브나 연기 연출이 배제되어 있다. 아다치 마사오는 나가야마 노리오가 통과한 실제 삶의 궤적을 따라 그가 일상에서 보았을 법한 풍경만을 연속해 보여줬다. 나가야마 노리오가 다녔던 학교, 살았던 집 주변의 꽃, 일했던 공장, 그가 움직였을 도시와 농촌의 다양한 모습을 교차함에 따라 사회의 풍경이 어떻게 추상적 권력 작용의 가시적 이미지로 드러나는지 증명했다. 일본 사회의 부조리한 풍경이 나가야마 노리오라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지배했는지를 구상하며 연쇄살인의 본질적 배경을 논한 것이다. 1971년 일본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과 함께 뉴스릴 필름을 적극 활용해 만든 <적군·PFLP-세계전쟁선언>을 공개한 뒤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아다치 마사오와 <도주>
그런 그가 2024년에 내놓은 <도주>는 아다치 마사오가 반세기 넘게 견지해온 영화미학의 연속선상에 있다. <약칭: 연쇄살인마>를 실제 살인사건 이후 4개월 만에 만들어 세간에 공표했던 것처럼 <도주>는 실존 인물 기리시마 사토시가 2024년 1월29일 사망한 뒤, 오는 여름에 열흘간의 프로덕션을 거쳤고 이듬해 초 바로 개봉했다. 전작 <레볼루션 +1>도 급격할 정도의 동시대적인 작업이었다. 202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7월에 총격으로 사망한 뒤, 살인범인 야마가미 데쓰야의 인생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영화를 사건 이후 두달여 만에 완성한 것이다.
<도주>의 주인공 기리시마 사토시는 1970년대 일본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반정부 무장 조직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일원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대규모 폭탄 테러를 감행한 조직이다. 이후 대부분의 구성원이 체포되었고 민간인 사살은 의도된 일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멤버였던 기리시마 사토시는 49년 동안 수배범으로 도주 생활을 이어오다가 2024년 병환으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하기 며칠 전 자신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혔다. 일본 사회에 아직 과거의 테러, 역사의 연속이 중단된 적 없다는 의식적 테러리즘을 가한 것이다.
<도주>는 기리시마 사토시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반세기 동안 도주 생활을 이어왔는지를 아다치 마사오 감독의 적극적 픽션화를 통해 꾸린 영화다. 기리시마는 미쓰미시 중공업 폭탄 테러에 직접 가담한 멤버는 아니었다. 이에 영화는 해당 사건에 대한 대의적 죄책감을 느꼈던 그가 반성의 방법으로 ‘도주’를 택한 이유에 집중한다. 자수나 또 다른 테러 행위가 아닌 ‘도주’의 행위는 일견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다치 마사오는 그가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투쟁의 방식이 공권력에 무너지지 않고 도피를 이어가는 ‘도주’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청년 기리시마와 노년 기리시마의 대화, 기리시마가 상상 속의 자신과 나누는 논쟁, 기리시마가 실제로 만나지 못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동료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아다치 마사오가 1960~70년대에 보여준 초현실주의적 분위기와 자문자답의 형식미를 떠올리게 한다. 더하여 <레볼루션 +1>부터 보여준 아다치 마사오식의 폭발적인 드라마가 농축되어 있다. 사실상의 공백으로 남은 기리시마의 49년 역사를 픽션과 논픽션의 배합, 감정의 질주로 창조해낸 이 영화는 기리시마에 대한 아다치 마사오의 위령제인 셈이다.
이어서 <도주>의 아다치 마사오 감독, 고바야시 산시로 총괄프로듀서와 나눈 인터뷰를 전한다. 자주영화상영회를 기획하는 신은경 영화연구자의 도움을 통해 일본에 있는 아다치 마사오 감독과 대화할 수 있었다. 만약 영화의 투쟁과 정치의 투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지, 누가 어떻게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현역 감독 아다치 마사오의 파격적인 언행과 <도주>를 살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