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킬즈 피플>의 ‘조력 사망 비즈니스’는 전직 성형외과 의사 대현(강기영)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부드러운 미소와 특유의 능청맞은 성격 뒤에는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내고 면허를 박탈당한 얼룩진 과거가 있다. 음지에서의 무면허 시술보다 불치병 환자들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사업이 더 큰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자신을 중독시킨 알코올과 마약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했을 때, 대현은 이 새로운 사업에 투신하리라 결심한다. 중독에 취약하고, 여자를 좋아하며, 삶을 단순하게 여기던 그는 죽음 비즈니스를 통해 죄를 씻거나 아니면 더욱 축적하게 될 것이다. <메리 킬즈 피플>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에 “순수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코 대현을 밀어낼 수 없었던 배우 강기영이 안락한 죽음의 세계로 당신을 안내한다.
- <메리 킬즈 피플>을 선택한 계기는.
짧지 않은 경력 중에 내게 큰 영광을 안겨준 드라마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다. 이를 계기로 소수자와 인간 보편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작품에 이전보다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것 같다. 대본을 읽고 <메리 킬즈 피플>의 이야기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이 작품을 최우선에 두고 준비했다.
- 사회적 의제를 전면에 다룬 작품을 <우영우> 이전에도 만났었나.
이전에는 주로 코미디 계열의 밝은 작품에서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역할을 많이 해왔다. <우영우>에서 모범적인 상사이자 윤리적인 법조인인 정명석 역할을 맡은 후에는 그동안 해보지 못한 장르, 접하지 못한 소재와 역할을 맡아 스펙트럼을 넓혀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낯선 캐릭터와 작품의 주제가 불편하다고 거절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어차피 할 거라면 지금 빨리 해서 관객 반응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놓자’라는 마음도 있었다.
- 낯선 캐릭터와 주제를 좀더 설명해준다면.
한국에서 조력 사망이라는 소재는 민감하고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제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 드라마로 자리 잡았고, 이것이 이미 세계적인 화두라면 <메리 킬즈 피플>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세계 관객들에게 가닿을 거라 생각했다. MBC에서도 19세이상시청가 등급임에도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봐주어서, 배우로서 그런 불안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 대현은 마약중독으로 인해 심각한 의료사고를 낸 적도 있다. 의대 시절부터 술과 여자를 좋아한 쾌락주의 성향이 강한 인물인데.
그래서 처음 작품을 읽었을 때 더 농도가 짙고 다크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님, 작가님과 대화를 하면서 대현의 퇴폐적인 면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대현을 직조하기로 했다. 극의 어두운 분위기를 많이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소정(이보영)과의 관계에서만큼은 ‘멍뭉이’에 가까운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코미디 연기로부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도, 결국 코미디가 필요한 셈이다.
이보영 선배한테 본의 아니게 요구를 많이 하 되더라. (웃음) 대현과 소정의 길고 진한 관계를 생각했을 때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티키타카를 위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선배는 흔쾌히 자신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라며 허락해주는 멋진 파트너였다.
- 강기영의 수준급 즉흥연기와 애드리브는 사실 드라마 필모그래피뿐만 아니라 <미추리 8-1000> 같은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본을 읽자마자 재미있는 소스를 어느 부분에 어떻게 넣으면 좋을지 생각한다. 그런 쪽으로만 사람이 총명해지고 몸이 반응한달까. (웃음)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광고모델 생활을 5년 넘게 한 덕도 있다. 길어봐야 30초짜리 광고에서 눈에 띄고 살아남기 위해 컷마다 기본적인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즉흥적으로 대사를 내뱉고 표정을 바꾸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삶이 공부였고 삶이 즉흥이었던 셈이다.
- 소정과 대현에게 죽음을 의뢰해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텐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등학생 시한부 환자를 만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도 자꾸 신경 쓰이게 하는 가장 일상적인 것들이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라든지, 좋아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든지. 이런 일상적인 미션을 함께 수행하며 같이 호흡하는 신이 많았던 터라 이 환자의 에피소드에서 슬픔과 애틋함을 많이 느꼈다.
- 조력 사망을 의뢰하는 환자들의 인생에서는 질병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서 그 사람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이 쉽게 잊힐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들의 인생을 통틀어 질병이 아닌 또 다른 아픔과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일상, 위기, 질병, 죽음은 서로가 너무 가까이에 있어 종잡을 수가 없더라.
- 소정과 대현은 환자에게 약물을 처방해 환자 스스로 그것을 섭취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조력 사망을 시행한다.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 참여하는 대현의 마음을 어떻게 상상했나.
대현을 환자들이 세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매개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이별은 단순한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이별,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 대현의 핵심 동력 혹은 핵심 정체성에는 쾌락 또는 사랑이 있을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대현이 하는 선택과 행동에는 보호와 치유라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고통받는 사람의 죽음을 도와줌으로써 이들을 치유하고, 인생을 살며 실수와 실패를 거듭해온 대현 자기 자신도 치유를 받는 것이다. 음지에서 이 활동을 해나가면서 점차 더 큰 가치, 이를테면 인류와 맞닿아 있는 가치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대현의 성장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