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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통의 심리학, <메리 킬즈 피플> 배우 이민기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현우(이민기)는 조력 사망을 희망한다. 그는 삶과 죽음, 치료와 고통 사이의 경계를 흔들며 ‘조력 사망’이라는 낯선 소재 안으로 시청자를 초대한다. 이민기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아 “대본에 충실히 임하는” 성실한 태도로 인물을 빚어낸다. 그가 처음 장편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 출연한 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연애의 온도>의 다혈질 동희부터 <나의 해방일지>의 어딘가 짠한 창희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왔지만 그에게 연기는 여전히 “잘하고 싶은” 무언가다. 인터뷰에서 그는 꾸밈없이 답하며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는 했다. 그런 솔직함과 진지함이 믿음직한 배우 이민기의 이야기를 전한다.

- <메리 킬즈 피플>에 합류한 계기는.

전작(<크래시>)을 함께한 박준우 감독님이 제안을 주셨다. 대본을 받기 전부터 조력 사망에 관한 작품이라 관심이 있었다. 지금 시대에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 국내에서 조력 사망은 아직 생소한데 따로 참고한 자료가 있나.

관련 다큐멘터리와 동명의 원작 드라마를 찾아봤다. 또 감독님으로부터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등 관련 책을 추천받아 읽기도 하면서 환자나 가족의 입장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 대본을 처음 받고 어떤 인상이었나.

원작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대본을 받았는데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은 건조함이 매력적이고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릴러물이다. 우리 드라마는 여기에 더해 조력 사망을 선택하는 인물의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현우는 시한부 환자이자 비밀을 품은 미스터리한 인물인데, 어떻게 감정선을 구축했나.

많이 고민했지만 대본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물의 설정을 깊이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 살을 빼는 등 이런저런 시도를 할지 고민도 했지만 그건 또 억지가 될 것 같았다.

- 현우를 연기하며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렇진 않았고 자문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현우 같은 환자는 고통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는지에 관해 질문하고 또 피드백을 받아 참고했다. 따로 영상을 찾아보지 않았던 건 뭐랄까, 좀 달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달라도 적어도 현우한테는 그것이 맞는 표현일 테니까.

- 지금껏 연기한 인물과 현우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로 얘기하자면 조력 사망을 다룬다는 점을 모르고 이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땐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은 고통을 끝내는 문제에 관한 아픈 이야기다. 현우 역시 조력 사망을 원하는 입장이고, 아마도 동의할 만큼의 고통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이나 고민을 해볼 수 있었던 지점이 새로웠다.

- <메리 킬즈 피플>은 결국 삶과 죽음에 관한 작품이다. 이에 관해 새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나.

조력 사망은 조심스러운 화제이지만 어딘가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이 문제는 정답이 따로 있는 것도, 선악이 나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크래시>와 <페이스미> <메리 킬즈 피플>까지 장르의 성격이 강한 작품에 도전하고 있다.

그럴 만한 나이가 된 것 같다. 때가 되어 지금 할 수 있는 작품과 만나 한 시절을 함께 보내게 된다. 내가 해온 역할들이 쌓여 다음 작품과 만나게 되는데 새로운 장르나 역할을 만날 때 좀더 좋다. 약간 불편하거나 힘들 때 더 노력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

- <굳세어라 금순아>로 장편 드라마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경험이 많이 쌓였다. 좋기도 하고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때는 뭘 해도 처음이니까 나의 처음을 꺼내쓸 좋은 기회였다. 물론 많이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게 벌써 20년이나 되었네.

- 그간 유지해온 연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게 계속 바뀐다. 그러다 보니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정답을 계속 추구했고, 지금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잘하고 싶다. 계속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경력이 쌓이니까 주변도 나도 ‘연기를 그만큼 해왔는데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기대치가 생긴다. 그게 생겨서 좋게 생각하면 성장할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하면 방해가 되는 사념이다.

- <연애의 온도> <나의 해방일지> 등 여러 작품에서 호평받았는데 여전히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큰가 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기복이 꽤 있는 연기자라고 생각하고 못할 때는 또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번 잘되지 않아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 같다.

- 그런 기대치, 혹은 사념을 다스리며 연기를 해나가는 노하우가 있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예전에 아는 감독님이 “배우는 잘 쉬는 게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때는 그저 잘 쉬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계속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때는 쉬면서 뭔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어떤 때는 호기심이 생기는 곳에 나를 끌고 들어가보기도 한다. 여전히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최근에는 잠을 잘 자려고 한다. 체력이 감정이 되고 컨디션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데 잠을 잘 못 자면 에너지를 다 못 쓰게 되어 아쉽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연기가 있을까.

지금은 없지만 새로운 무언가라면 행복하게 작업할 것 같다. 또 배우로서 나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