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씨네21 추천도서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김혜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어떤 책은 서가에 들이는 순간 영원히 이별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가 그런 책이다.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책은, 1권 <죽음의 자서전>으로 시작해 2권 <날개 환상통>을 지나 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 다다르는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600쪽에 달하는 이 아름다운 책은 순서대로 읽기를, 순서를 뒤집어 읽기를 권한다. <죽음의 자서전> 은 첫시 <출근>에서부터 죽음과 삶 그 사이의 귀신 들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너는 너로부터 달아난다. 그림자와 멀어진 새처럼./ 너는 이제 저 여자와 살아가는 불행을 견디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나서야 “네 직장으로 향하던 길을 간다. 몸 없이 간다.” 여자가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앞서 성큼성큼 걷는 법을 익히기에는 복잡한 것들이 여자의 안에서 아우성치기에 <죽음의 축지법>에서는 괄호 안에 스치는 이런 문장을 넣는다. “(너는 줄 것이 없으면서도 자꾸 주겠다는 사람처럼).” “제발 이 소설 속에선 나를 꺼내주소서”(<이 소설 속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 하는 기도는 불현듯 영원을 획득한 ‘K-주문’처럼 들리고, 김혜순의 시를 읽으면서 일종의 신들림을 경험하는 듯한 기분은 착각일까 현실일까. “죽은 이들과 소꿉놀이에 빠져서”(<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이 시집으로부터 나가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혹은, 벗어나고 싶지 않아진다.

시를 읽으며 종종 책 말미에 실린 <죽음의 엄마>를 뒤적여본다. 이 글은 여성과 쓰기, 읽기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한 답처럼 읽힌다. “나는 흰 종이를 엄마가 누운 병상의 침대처럼 사용했어요. 그다음 죽어버린 엄마를 넣은 관처럼 사용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시적 대상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시를 쓰며 애도하고 애도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이 애도가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여정임을 받아들인다. 죽음에 안겨 있는 시인. 흥미롭게도 이 산문만을 읽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시의 단어와 행간을 통한 뒤에야 산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보다 부재가 넓고, 존재의 나보다 부재의 내가 많고,”(<모래의 머리카락>)라고 중얼거리는 어떤 존재의 증명.

우린 시작을 시작했으므로이미 작별이었는데 그땐 몰랐다 <작별의 공동체> 중에서, 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