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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너는 특별해… 특별하단 건 때때로 외로워”, <엘리오>를 위한 유쾌한 여정, 디즈니·픽사 본사 방문기

디즈니·픽사 29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엘리오> 개봉을 앞두고 <씨네21>에 산뜻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엘리오>의 긴 푸티지 영상을 함께 보고 감독·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도착했을 땐 멀리서부터 픽사의 오랜 상징이자 마스코트인 거대 룩소 주니어가 보였다. 무작정 꿈과 희망 가득한 해피엔딩을 좇기보다 어른 동화의 현실감 높은 슬픔을 그려온 디즈니·픽사의 이번 주제는 ‘외로움’이다. 고모와 단둘이 사는 11살 소년 엘리오는 어느 날 문득 우주가 지닌 외로움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광활한 망망대해를 살아가는 모두가 가슴 한켠에 고립감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쩐지 따뜻하고, 차분하고, 내 안의 결핍을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았다. 천체의 온기에 스며든 엘리오가 우주 너머의 삶이 궁금해질 즈음, 아뿔싸! 진짜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만다. 그리고 천방지축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만다. 자신이 바로 지구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엉뚱하고 소란스러운 소동 사이에 새어든 외로움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스티브잡스 건물에서는 여러 각도의 질문이 바삐 오갔다.

드디어 픽사

<엘리오> 프레스 데이는 디즈니·픽사를 향한 설렘으로 북적였다. 이날은 <엘리오> 의 두 감독과 프로듀서 이외에도 프로덕션디자이너, 시각효과 슈퍼바이저, FX 테크니컬 디렉터,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조명·미술 감독 등을 만났다(스티브 잡스 빌딩에 있는 칸틴에 식사를 하러 온 디즈니·픽사 CCO 피트 닥터 감독을 만나는 행운까지). 프레스를 위한 특별 행사도 준비됐는데 디즈니·픽사 애니메이터에게 <엘리오> 그리기를 배우거나, 엘리오 역을 목소리 연기한 요나스 키브레브와 더빙을 해보는 등 어디서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자리가 마련됐다.

컨셉아트 친구

“이빨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강아지같이 앙증맞은 태도와 달리 귀여운 외형과 다소 거리가 있는 외계 친구 글로든을 보고 던진 나의첫 질문이다. 초기 컨셉아트부터 크게 변하지 않은 글로든의 캐릭터디 자인에 대해 주드 브라운빌 애니메이터 슈퍼바이저가 이유를 덧붙였 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웃음) 처음엔 상대를 죽일 듯이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과정에 글로든의 외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부적으로 글로든 외형에 이견은 없었지만 아마도 디지털 모델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웃음)”

컨셉아트 우주

광활한 천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외계인에게 납치된 지구의 꼬마 앰배서더.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단연 우주적 풍경이다. <엘리오>를 마지막으로 디즈니·픽사를 은퇴 한다고 밝힌 할리 제섭 미술감독은 외계 행성인 커뮤니버스를 구현하기 위해 ‘구체 안의 구체’를 차용했다. “행성의 외피와 내피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초기 컨셉아트를 발전시켰다. 부드럽고 반투명한 속성은 선명하게 푸른 지구와 대조를 이룬다.” 이어 클라우디아 정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는 “어둡고 음습한 전형적인 SF 장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 다”라며 반짝이는 커뮤니버스를 설명했다.

컨셉아트 초록색

<엘리오>의 키컬러는 초록이다. “초록은 외계인의 색깔이자 어두운 우주에서 별이 빛을 발할 때 내는 색이다. 그래서 엘리오의 외로움이 드러날 때마다 일부러 녹색 계열을 선택했다. 그에 반해 생동감 있고 즐거운 시퀀스에서는 보라색을 택했다. 초록색과 비슷한 어두운 단색이지만 보라 색이 지닌 영롱함, 반짝임이 효과적인 대조를 보여줄 거라 믿었다.”(도미 시 감독) 이어 <엘리오>에 합류한 이재준 FX 테크니컬 디렉터는 물(바다)의 형태에 엘리오의 마음을 투영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바다는 하루에도 수십번 변한 다. 잔잔한 바다, 파도 치는 바다, 일렁이는 바다, 햇살을 머금은 바다 등등. 엘리오의 감정을 바다로 은유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되 정서적인 반영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FX 작업물로서 물은 어떤 특성을 지닐까. “물이 불이나 먼지에 비해 어려운 것은 데이터가 무겁다는 점이다. 연산 자체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수정하기가 쉽지 않고 물 입자를 현실적으로 그리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럼에도 디즈니·픽사에서 기술적인 한계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아트디렉터의 상세하고 명확한 디렉션과 아티스트끼리 서로의 파트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안정적인 문화가 디즈니·픽사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스튜디오에서 경험하기 어려 운, 무척 합리적인 마감 스케줄 덕이다.”(이재준)

엘리오의 고모 올가는 직업군인이다. 모래 알갱이 하나를 표현하는 데에도 과학 상식을 접목하는 디즈니·픽사의 특징에 따라 몬테즈 공군기지를 묘사하기 위해 북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여러 공군기지를 답사했다. 몬테즈의 단단한 모서리가 반복되는 톤은 자유로운 영혼의 엘리오와 어울리지 않는 다는 느낌을 준다. 커뮤니버스의 활기찬 분위기와도 큰 대조를 이루는 배경지다.

컨셉아트 외계인

외계인 초기 컨셉아트. 반투명하고 흐물거리면서 스스로 빛을 내는 모습은 심해의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할리 제섭 미술감독은 “각 캐릭 터가 중력에 반한 자기만의 고유한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실제 바다 속 해양 생명의 군집을 보여주듯, 다양한 질감과 넓은 스펙트럼의 색감을 보여주기 위해 컬러링 보정에 가장 공들였다고. 이어 관객으로부터 외계인에 대한 공감각적 반응을 이끌기 위해 다채로운 외형을 창작했다.

엘리오의 어깨 위를 졸졸 따라다니는 친구는 바로 ‘우우우’(야유가 아니라 캐릭터 이름이다). 액체형 슈퍼컴퓨터인 귀여운 우우우는 다양한 팀이 마음을 합쳐 어렵게 디자인한 캐릭터다. 할리 제섭 미술감독은 “내가 아는한 다이내믹 이펙트를 통해 캐릭터를 디자인한 사례는 없었다. 우우우는 기술적, 예술적 도전”이라고 그 안에 담긴 비하인드를 밝혔다. 이재준 FX 테크니컬 디렉터 또한 메타볼 구현에 대해 설명했다. “메타볼은 오래된 기술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활용해 캐릭터를 완성한 경우는 없었다. 유동 적으로 액체처럼 변모하는 캐릭터를 메타볼로 구현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를 기점으로 많은 것을 시도해볼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