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니까 올려봅니다.” AI에 비판적인 초로의 인문학자의 프사(이하 프로필 사진)까지 지브리풍으로 바뀐 것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브리풍이 함의하는 평화와 선함,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 연대가 정말 갈급했나보다. 그러나 지브리풍으로 도배된 프사는 더이상 한 개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챗GPT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이하 지브리풍)의 ‘가상’(시뮬라크르)일 뿐이다.
오픈AI가 지난 3월25일 공개한 GTP-4o 이미지 생성 서비스 열풍은 2주가 넘어가는 지금도 여전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출시 직후부터 거의 매일 SNS 서비스 X(옛 트위터)를 통해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녹고 있다”라거나 “제발 이미지 생성 서비스 이용을 조금만 쉬어달라. 1시간에 100만명이 가입했다”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올트먼은 지난 4월4일, 원래 계획보다 수개월 앞당겨 GPT-5 출시를 예고했다. 브래드 라이트캡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같은 날 X에 “1억3천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7억개 이상의 이미지를 생성했다”라고 공지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양성과 현실성 대체한 ‘가상’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최근 인스타그램 게시물 | 출처 샘 올트먼 인스타그램.
사방이 지브리풍 프사로 도배되는 것을 보며 실감하는 이런 열풍은 심각한 우려도 동반한다. 대다수 언론이 언급하는 저작권이나 초상권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 문제들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지점이지만 제노사이드 다큐멘터리영화와 국가 폭력 이미지를 연구한 필자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다양성 삭제’이다. 근현대 수많은 국가 폭력과 제노사이드는 인간 개개인의 사정과 존엄을 망각하면서 촉발되었다. 잠깐 방심하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라도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존엄을 파괴하고 전체주의를 꺼내든다. 지난해 말 무섭게 체험한 12·3 내란과 지금도 온전히 끝나지 않은 탄핵 정국 후폭풍이 그러하다. 개개인의 소중한 다양성이 지브리풍으로 일원화되는 것은 전제주의와 전체주의를 견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프사일 뿐인데 너무 과장된 해석일까? 자, 그럼 좀더 들어가보자. 일원화된 이미지로 도배되는 현상은 ‘이미지 전제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생각하지 않고 확장되는 일원화된 현상은 인위적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의 시뮬라크르(simulacres)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원본이 삭제된 가상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가상이 원본을 대체해 원본은 사라진 상태이다. 개성이 존재했던 과거의 프사가 지브리풍으로 일원화되는 게 당연하다면 원본은 사라지고 가상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SNS에 연결된 대다수 사람들의 프사가 순식간에 ‘지브리풍’으로 바뀌고 지속되면 우리는 그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욕망과 개성을 망각한다. ‘이미지 전제주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여기서 부상되는 것이 ‘생각의 무능’(Inability to Think)이다. 해나 아렌트가 도출한 이 개념은 자신의 판단과 의지 없이 기계적으로, 혹은 대세에 따르는 행위가 ‘악’이라는 주장이다. 지브리풍 이미지들이 정감 있고 따뜻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니아여서, 남들도 다 하니까 유료 서비스에 가입해 여러 사진을 변환하고 프사를 바꾸는 과정은 각자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왜 이런 행위를 하는가, 비슷한 이미지로 도배된 수많은 프사가 문제적인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의미이다. 해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 전범인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면서 수백만 유대인을 절멸시킨 그가 사실은 평범하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생각의 무능’을 통찰했다. 시키는 일에, 남들이 하는 행위에 아무 생각 없이 따르다보면 언젠가 거대한 악을 생성하는 주체가 되거나 악을 방치하는 무능한 사람이 된다. 아이히만이 생각을 제대로 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상기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아렌트의 안타까움이다. 이는 전쟁이나 비상사태가 아니어도, 일상에서도 자주 목격하고 체감하는 상황이다.
생각의 무능이 견인하는 폭력성
이스라엘 방위군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지브리풍 군 홍보 사진들.
지브리풍 프사 열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가 지탄받은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비근한 예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팔레스타인 난민을 대량 학살한 이스라엘 방위군이 최근 공식 SNS 인스타그램에 무장 군대 사진 여러 컷을 지브리풍으로 변환하여 게시했다. 공포를 조장하는 무장군인들의 이미지가 마치 선량한 이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게시물에는 곧바로 세계 각국 언어로 이들을 맹비난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 ‘폭력을 지우려는 폭력적 행위’라는 일갈이다.
지브리풍의 특징은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이다. 어떤 사진을 입력해도 지브리 필터를 거치면 둥글둥글하고 선량한 눈빛과 따뜻한 수채화로 변환된다. 실재가 가상으로 온전히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불안감을 잠시 내려둔다. 금방이라도 토토로처럼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환상의 동물이 튀어나와 동심으로 여행을 떠날 듯하다. 바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시작점인 <이웃집 토토로>에 대한 향수이다. 1988년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은 이후 일본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팬덤을 형성하며 지금의 지브리 왕국에 이르렀다. 고도성장 속 숨가쁜 경쟁의 시대였던 냉전 말기,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정치적 혼돈은 온기와 선량함을 내포하고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삶을 담은 <이웃집 토토로>에 열광하게 이끌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나 현실이길 갈망하는 관객 입장에서 이 작품은 고달픈 현실을 잠시 삭제하게 돕는다. 원본은 가상으로 대체되었다. 모두의 기억에서 <이웃집 토토로>는 현실의 자리를 차지한 가상이자 대체된 현실이 되는 것이다. 바로 시뮬라크르이자 이미지 전제주의이며 지브리풍 프사 열풍을 견인한 동시대적 무의식이다.
AI와 경쟁하거나 귀속되어야 하는 현대사회, 세계 각지는 전쟁과 극보수주의의 난립으로 불안의 골이 깊어지는 과정에 있다. 한국만 해도 급작스러운 내란과 탄핵의 힘겨운 과정을 겪어내는 중이다. 세대간 반목, 청년세대의 실업률 급증 등은 냉전시대 말기와 닮아 있다. 우리 안의 무의식이 다시 답답한 현실을 대체할 가상의 이미지를 견인한 것은 아닐까? 조금이라도 돌아보고 인식하다 보면, 지브리풍 프사의 획일화된 이미지와 표정들이 더이상 따뜻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무능은 판단하지 않으려는 무능, 말하지 않으려는 무능, 행동하지 않으려는 무능으로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