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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의 독특한 공포영화 <헤레틱>을 즐기는 방법

<헤레틱>은 이단자를 뜻하는 원제 <Heretic>을 그대로 음차한 제목이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두 소녀와 한 남자. ‘시스터’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일명 모르몬교를 전도하기 위해 리드(휴 그랜트)의 집을 방문한다. 남자는 모르몬경은 물론이거니와 지상의 모든 종교 경전을 독파한 양 교리들간의 유사성을 꼬집으며 소녀들의 신앙을 조롱한다. 현대 종교는 서로 참조하며 분화한 상품에 지나지 않으니 당신들의 독실함 또한 무력하다고 꾸짖는다. 반스와 팩스턴은 배교를 부추기는 언설에서 나아가 감금까지 시도하는 리드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리드는 그런 두 사람을 두개의 문 앞에 데려다놓는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하려다 그 우리에 갇히고만 선교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반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싶어 하지만 팩스턴은 타협을 탈출구로 여긴다. 영화가 가리키는 이단자는 누구인가.

일본에서 <헤레틱>이 <이단자의 집>(異端者の家)이라는 이명으로 개봉했다는 사실이 답을 좁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영화를 쓰고 연출한 스콧 벡브라이언 우즈는 이 번안을 탐탁지 않아 할지도 모르겠다. 두 콤비는 여러 인터뷰에서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믿음 혹은 불신에 따른 결과가 아닌 둘 중 하나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믿음이라 적힌 문과 불신이라 적힌 문 중 무엇을 열고 나갈 것인지보다 두개의 선택지만이 놓인 방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의심 없는 확신을 관용의 적으로 명한 근작 <콘클라베>의 가르침과도 닿아 있다.

<콘클라베>가 천장을 뚫는 햇빛으로 신의 현현을 암시한다면 <헤레틱>은 지하로 뻗친 어둠을 통해 신의 부재를 연상케 한다. 소녀들을 괴롭힌 두개의 문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감옥을 쏙 빼닮은 리드의 지하실로 연결된다. 이 지옥도를 설계한 자는 신의 놀이를 하는 인간에 불과하기에, 여기서부터 영화는 영적 대결에서 두뇌 싸움으로 초점을 달리하며 익숙한 밀실 호러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 여정은 걸음을 더할수록 무참하게 젠더화된다. 응접실과 서재가 지독한 맨스플레인의 무대에 그쳤다면, 지하는 반스와 팩스턴 외에도 다수의 여성 피해자가 리드에게 포섭당해 학대받아왔음을 보여준다. 신자를 골리는 악취미를 가진 수준의 빌런에서 도약해 여성 대상 중범죄를 저질러온 소시오패스라는 민낯을 드러낸 이상, 리드의 앞선 펀치라인들도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이제 자매들에게는 모르몬으로서 믿음의 증거가 되는 일보다 다른 여성들까지 구할 수 있도록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가 우선한다.

이 전환은 의외의 효과를 낳는다. 리드가 소녀들에게 일침을 가하고자 제시한 논리를 헐겁다고 여긴 관객이라면 그것마저 작가가 의도한 헛발질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초반 시퀀스들에서 지적 유희 내지는 고약한 스크루볼코미디의 냄새를 맡은 이들은 급격히 말수를 줄이고 시각적 충격을 늘리는 행보가 싱겁게 느껴질 만하다. 리드가 내올 것처럼 기대를 부풀렸으나, 진짜로 먹을 수 있는 블루베리 파이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알아차린 소녀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초가 타들어가는 동안 블루베리 파이 향은 제대로 퍼졌다. <헤레틱>이 거대한 담론을 갖고 노는 방식도 유사하다. 남자는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일갈하면서 신을 흉내내왔다. 소녀들은 종교가 통제하는 삶의 양식을 받들지만 영리하게 통제를 벗어나왔다. 스스로 그 일탈을 비관했을지언정 그들에게는 이미 신앙을 유연히 다룰 줄 아는 근육이 있었던 것이다. 나를 통제하려는 상대를 나도 통제할 수 있다는 각성. 이 탈출기가 스테이지를 거듭하며 설교한 말씀만큼은 장르에 충실하고도 메시지로서 유효하다.

영화는 생존자의 손끝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사라지게 하면서 라스트신에서까지 수수께끼를 즐기지만 나비의 유무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나비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들 의미 없다. 나비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반대 주장도 마찬가지다. 생존자는 나비를 보았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된다면, 그거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