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한영웅 Class 1>(이하 <클래스1>)에서 시은(박지훈)이가 무리 속에서 혼자 있길 원했다면, <약한영웅 Class 2>(이하 <클래스2>>의 시은이는 타인을 경계하고 거부한다. 혼자됨의 태도 변화가 느껴지는데. 이러한 감정선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시즌에서 시은이의 감정선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소중했던 친구를 잃고 원치 않은 전학을 가면서 다시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빗장을 잠그지만 그 안에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게 시은이의 중심축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주변인들과 연결되고 사건에 휘말리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마침 그럴 시점이 온 것 같다. 부모님과도 따로 떨어져 혼자 사는 시은이를 누군가가 보듬어줄 시점. 시은이에게도 친구들이 필요하다.
- 동시에 시은이는 수호(최현욱)를 향한 독백을 남긴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이전보다 더 냉철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 외로움을 드러내야 하는, 복합적 감정 연기의 미션이 더해졌다.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시은이는 사실 수호를 너무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찾지 않을까.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수호의 자기장으로 이끌리게 되는 게 아닐까. 언제나 마음 한편에 품고 있는 친구라는 생각으로 접근해갔다. 시은이에게 싸움을 알려준 사람이 수호이기도 하고. 시청자들에게도 시은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면 좋겠다. 수호를 아직도 잊지 못했구나, 계속 안고 있구나 하면서. 그래서 내레이션에 일부러 힘을 뺐다. 기본적인 시은이 톤을 유지하되 수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목소리 톤을 슬프게 잡았는데 그게 오히려 와닿지 않았다. 무덤덤하고 당연하게 수호에게 돌아가는 톤을 유지했다.
- 벽산고등학교와 은장고등학교의 학내 분위기도 확연히 차이난다.
벽산고를 촬영할 때만 해도 이렇게 시끄러운 학교가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장고는… 그냥 무법지대다. (웃음) 무질서의 끝판왕. 연기하는 것인데도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은장고에는 다양한 동아리가 등장한다. 이 동아리는 시은이가 새로 만날 친구들의 성격과 취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박후민(려운)과 현탁(이민재)은 농구부에서, 준태(최민영)는 만화부에서 활동하고 시은이는 어느 동아리도 찾지 않는다. 각자의 캐릭터를 동아리가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 이렇게 서로 다른 친구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 이전에 자체적인 실험을 하면서 싸우던 시은이는 이번 시즌에서 보다 명확한 확신을 갖고 싸워나간다. 전투의 경험이 생겨났기 때문인데, 이 지점은 배우 박지훈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액션신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과정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다고 체감하나.
처음부터 액션신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아무래도 춤을 추며 몸을 써온 시간이 길어서인 듯하다. 다만 <클래스2>를 하면서 무술과 더 친해진 건 사실이다. 뭐랄까, 조금 더 수월해지고 과격해졌다. 망설이는 구간이 없고 더 거침 없이 날것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시은이도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면이 있다. 싸울 때 반복되는 특정한 패턴이 있었는데 이번 옥상 신에서는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금성제(이준영)와 싸울 때 그가 지닌 물건을 활용해서 공격하기도 한다. 주변에 놓인 물건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물건까지로 활용 범위를 넓힌 거다. 그 지점은 정말 신박했다. 물론 액션은 여전히 힘들다. 그럼에도 촬영 동안 한번도 부상 없이 마칠 수 있던 건 정말 큰 행운이다.
- 무술을 가르쳐준 감독님에게 받았던 피드백이 있다면. 특히 칭찬이 궁금하다.
직접 말로 하기 좀 그런데. (웃음) 합을 빠르게 외운다고… 몸을 잘 쓴다고…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쑥스러워하며) 액션 스텝을 미리 다 짜놔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무대를 섰던 경험 덕에 그런 것들을 빠르게 흡수하는 편이다.
- 이젠 악명 높은 교내 친구 한명과 싸우는 수준이 아니다. 무려 고교 연합과 싸워야 하는데.
대본을 읽으면서 과연 어떻게 표현될지 가장 궁금했던 건 8화. ‘와, 이 인원을 어떻게 찍어? 이걸 어떻게 표현해?’ 하면서 감탄했다. 또 시은이 얼굴이 궁금했다. 이 상황에서 싸울 때 시은이는 어떤 표정일까. 맞고 때리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 표정, 감정, 액션 등 챙길 게 너무 많았다. 이 구간만 한달 넘게 촬영한 것으로 안다. 내가 합류하는 건 중후반부터라 초반부터 장면을 꽉꽉 채운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을 것이다.
-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시은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나는 이제 정말 그만 싸우고 싶어. 제발 끝내고 싶어. 이런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아, 더이상. 그런 처절함을 그려내려 정말 애썼다. 나도 시은의 그 얼굴이 마음에 든다. 내가 널 이기지 않으면 이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잖아, 하는 분노와 간절함. 그게 드러나길 바랐다.
- 가만히 지켜보면 시은이는 주변으로 친구들이 몰려드는 사람 자석이다. 시은이의 어떤 매력에 친구들이 빠져든다고 생각하나.
시은이는 무뚝뚝 그 자체다. 얼음장 같고. 그런데 꼭 주변으로 불같은 친구들이 모여들어 그 냉기를 따뜻하게 녹여준다. 아마도 온화함을 지닌 친구들이 시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수호도 날것의 느낌이지만 불같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보면서 표현하고 싶은 건 다 표현한다. 후민과 현탁도 그런 편이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준태가 정말 강한 친구다. 후민이나 현탁처럼 싸움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냉랭한 시은이에게 계속 손을 내민다. 덕분에 얼음공주 곁에도 친구가 생겨났다.
- 사람 자석이 맞나보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는 얼음공주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 별명도 촬영장에서 애드리브로 나왔던 거다. (웃음) 현장에서 얘기되고서 그대로 응용됐다.
- 또래가 많아서인지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보인다.
정말 좋았다. 남자들은 가볍게 축구 한판 하면 금방 친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피, 땀, 눈물 흘리는 모든 과정을 함께 통과하니 심리적으로 끈끈해졌다. 유수민 감독님까지 형, 동생 사이처럼 생활했다. 진짜 고등학생 시절과 비슷해서 촬영장을 가는 길부터 편안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박후팸’이라고 세 배우들과의 단톡방도 있다.
- <클래스1>이 진중한 무게로 흘러갔다면 <클래스2>는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구간이 많다. 촬영을 하면서도 웃음을 참아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듯하다.
시은이는 마음 편히 웃지 못하는 캐릭터라서 항상 컷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웃음) 교무실에 끌려갔을 때 후민이가 시은의 뒤통수를 누르며 억지로 선생님께 사과시키는 장면이 있다. 다시는 머리 만지지 말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는데 갑자기 준태가 튀어나와서는 머리 괜찮냐고 손으로 다듬어준다. 그것도 애드리브였다. (웃음) 분명 바로 10초 전에 머리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 식이다. 진짜 고등학생들처럼 움직였다.
- 전에 없던 햇살캐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게 된 일상이 시은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시은이는 여전히 벽산고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은장고 친구들 덕에 아주 드물게 그 상처로부터 빠져나온다. 시은이에게 친구들이 너무나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수호를 잊은 건 아니다. 늘 수호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어쩌다 보니 자신에게 이런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을 수호에게 고백하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 금성제 역할을 맡은 이준영 배우와 계속해서 부딪힌다. 두 배우 모두 아이돌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타이밍과 무술 합을 맞추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 같다.
모든 촬영이 중요하지만 유독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순간이 이준영 배우와 액션을 맞추는 날이었다. 준영이 형이 행동과 주먹이 정말 빠르다. 물론 안 맞게 시늉만 하지만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잘못 피하거나 동선이 꼬여버리고 만다. 준영이 형, 정말정말 빠르다. 그래서 금성제와 맞붙는 날이면 어떻게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 했다. 옥상 싸움 신은 이후에 추가 촬영을 더 했는데 현장에서 늘어난 액션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외워서 진행했다. 준영이 형과 모든 합이 착착착 잘 맞았다.
- 시즌 초반을 압도하는 빌런 최효만(유수빈)과 금성제. 둘 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과몰입하며 미워하게 된다. (웃음) 이 과몰입을 살짝 풀어주기 위해 배우 유수빈, 이준영과의 에피소드를 나눠준다면.
관계 구도상 효만과 성제는 대부분이 싸우는 신이었는데 컷 소리가 나면 항상 꼬옥 안아준다. (웃음) 정말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형들이다. 어떻게 이 역할을 이렇게 잘 소화해낼까, 신기하기도 했다. 형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눈빛이 돌변한다. 단순히 대사를 읊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캐릭터가 되어 있다. 교실에서 효만이가 준태를 짓밟는 초반 장면에서는 진짜로 화가 났다. 현실적이고 압도적인 연기에 나도 감정이 점점 차오르는 거다. 하지만 컷 하는 순간 또 안아준다. (웃음)
- 시리즈를 다회차 이어간다는 것은 한 캐릭터의 생애주기와 내외적 변화, 성장을 다층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느꼈나.
이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힘 빼기. 무언가를 더 많이 보여주려고 더하면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진다. 도리어 인위적으로 보인달까. <클래스1>에서도 그런 고민을 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시은이 같지 않은 거다. 그때 힘을 빼봤다. 너무 구구절절 말하기보다 더 무뚝뚝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그제야 진짜 시은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슬퍼 보이지만 동시에 강해 보이기도 하는 눈빛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워낙 표현하지 않는 캐릭터니까. 그때 덜어냄의 힘을 빌리는 게 중요하다는 해답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