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전부터 지금의 더 로즈에 이르기까지가 담겼다. 어떻게 성사된 프로젝트인가.
이성민 3년 전 더 로즈가 양자경의 오스카 수상 소감 중 일부를 음악에 샘플링하려고 했다. 당시 더 로즈의 매니저들이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 허가 문의를 넣었고, AMPAS의 회장이었던 재닛 양이 매니저들과 논의하던 중 혹시 더 로즈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프로듀서 다이앤 퀀에게 전했다. 그리고 다이앤이 내게 연출 제의를 건네며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7개월 정도 더 로즈와 함께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김우성 앨범 발매와 라이브 투어를 몇년간 지속하다 보니 팬들에게 음악을 만드는 프로세스와 무대 바깥에서의 일상을 보일 기회가 드물었다. 지금도 충분히 리얼하지만(웃음) 정말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의 전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성민 오래전부터 도준이 더 로즈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하더라.
박도준 앨범 《HEAL》 발매 당시 한차례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공식 유튜브 채널에 릴리스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더 로즈: 컴 백 투 미>가 이전 작업의 확장본처럼 다가왔다. 감독님 말씀처럼 데뷔 초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꿨다. 언젠가 우리가 유명해지면 우리가 지나온 소중한 순간을 누군가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조금씩 영상으로 기록해뒀다.
이태겸 초창기엔 저 영상들을 다 어디다 쓰려나 싶었는데 결국 다 쓰게 되어 뿌듯하다.
박도준 결국 멤버들이 결성 3년차엔가 생일 선물로 짐벌을 사주기도 했다. (웃음)
이성민 도준이 영상으로 기록해둔 푸티지가 많았다. 다수의 과거 영상을 도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취재원으로부터 1테라바이트가 넘는 자료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김우성 그나저나 옛날 영상을 보니 좀 창피하더라. 지금이라고 나아진 건 아닌데 데뷔 초의 풋풋함은 정말….어떻게 얘네에게 투자를 했지 싶더라. (일동 웃음)
- 개봉 전 트라이베카영화제를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했다. 더 로즈를 잘 몰랐던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던가.
박도준 부산국제영화제 GV였다. 영화계 종사자로 보이는 한 50대 남성 관객이 더 로즈의 음악을 앞으로 즐겨 듣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최근 공연 예매자 성비를 보면 변화를 체감한다. 그동안 여성 관객이 우리 공연의 99%를 차지했는데 근래 남성 관객의 비율이 주목할 만한 수치로 늘었다. 또 20, 30대 관객이 다수였던 이전에 비해 가족 단위의 관객이 콘서트를 자주 찾는다. 우리가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를 연배의 관객이나 어린 친구들이 자주 눈에 띈다.
김우성 그래서 무대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거칠게 못 논다. 비속어도 자제하고. (웃음) 미성년자 관객들이 자꾸 눈에 밟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넷인데, 결혼을 했다면 충분히 자녀가 있을 법한 나이 아닌가. 최근 들어 멤버들과 어린아이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고민 중이다.
- 영화의 타임라인에 맞추어 더 로즈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려고 한다. 2011년 홍대 거리에서 제이슨 므라즈의 여러 노래를 커버하는 도준씨의 푸티지가 등장한다. 기타를 멘 20대 남자들이 홍대 일대에서 하나같이 제이슨 므라즈를 커버하던 때였다. (웃음)
박도준 아무래도 제이슨 므라즈가 버스커 출신이라 그런지 젊은이들이 쉽게 자기를 투영하곤 했다. 언젠가 그처럼 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동경을 부르는 존재고. 내겐 제1의 뮤즈였다.
김우성 운명인 건지 나도 <K팝스타> 시즌1 출전 당시 제이슨 므라즈의 곡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내게도 제이슨 므라즈가 제1의 뮤즈였다
- 다른 멤버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이 있었나
이하준 초등학생 당시 버즈의 노래를 들으며 밴드에 대한 로망을 가졌다. 보컬리스트에서 드러머로 관심을 바꾼 이래 밴드만 고집했다. 그때 만난 나의 우상은 콜드플레이였다.
이태겸 영화에도 나오지만 나는 아마추어 뮤지션으로 활동한 아버지를 보며 음악의 꿈을 키웠다. 버스킹을 한창 할 땐 제이슨 므라스 못지않게 데이미언 라이스가 대세여서 두 아티스트의 곡을 줄곧 커버했다. 맥플라이의 노래도 자주 불렀다.
- 그렇게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 밴드를 결성하고, 첫 소속사에서 발매한 데뷔곡이 <Sorry>다. 당시 회사에선 반대했지만 멤버들이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밀어붙였다고.
김우성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본능이 발동할 때가 있다. 무시하기엔 강렬한 직감이다. 더 로즈를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발동한 촉인데 이게 한번 터지면 누가 말려도 고수하게 된다.
이태겸 돌아보면 한번도 ‘타이틀곡을 쓰겠다’고 애쓴 음악은 없다. 다 운명이다.
이성민 하준이 의 멜로디를 썼기 때문에 <Sorry>가 흐르는 순간만큼은 무조건 하준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영화가 멤버별로 주목하는 모먼트가 다른데, <Sorry>에 한해선 하준을 위해 인터뷰 컷과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배정했다.
이하준 <Sorry> 작곡 에피소드가 그리 거창하진 않다. 그때 연습실에서 건반을 치고 있었다. 큰 꿈은 없었고, 그저 데뷔만 빨리 하고 싶었다. 좋은 곡이 나오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노래를 끄적였다. <Sorry>도 그렇게 흐물대며 지은 노래 중 하나라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우성 형이 듣고 좋다며 바로 가사를 써왔던 기억이 난다. 사실 <Sorry>를 포함해 사랑이 가져다주는 예술적 영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부분이 꽤 편집됐더라.
박도준 너무 심오했던 거 아냐?
김우성 인생 뭐 있나. 사랑이 가장 중요하지.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소중히 노래한다. 다만 우리 하준이가 사랑을 유독!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아주 ‘Lover Boy’야.
- <Sorry>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로즈의 몇 트랙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해외 활동 빈도가 잦아지며 2020년대엔 영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노래를 발매 중이다. 그 시작이 2019년에 발매한 <California>더라.
김우성 태겸이 멜로디를 쓴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 한국어 가사를 입히자니 부르기 까다롭더라. 그래서 영어 가사를 붙여봤다. 이후 팬덤도 글로벌해지고 해외 활동 비중이 커지며 영어 가사를 쓸 일이 훨씬 늘었다. 멜로디 또한 자연히 영어 가사와 어울리는 선율이 붙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한국어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성민 곁에서 지켜보니 멤버들이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방식이 참 신기하다. 모두가 한 유기체처럼 음악을 만든다. 작사, 작곡, 편곡 등 역할 구분의 선이 다른 밴드에 비해 흐릿하다.
- 그래서인지 포털에서 무작위로 곡 정보를 검색해도 작사 더 로즈, 작곡 더 로즈로 표기돼 있더라.
이태겸 물론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있다. 작곡, 작사, 편곡을 개별로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데 우리는 이 크레딧 구분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네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데 개인의 기여도 규정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 영화를 여닫는 곡이자 제목에도 쓰인 <Back To Me>는 에너지가 남다른 노래다. 영화를 보니 라이브 무대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노래이지 않을까 싶은데.
김우성 역시 직감으로 만든 노래다. 도입부부터 음역이 높아 힘든 노래인데 무대만 올라가면 어디서 에너지를 받는지 자연스럽게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라고 말했지만 연주 마치면 너무 힘들다. (일동 웃음) 우리 안의 조절 장치가 저절로 해제되는 곡이다.
이하준 처음엔 <Back To Me>가 어둡고 심오한 노래가 될 줄 알았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바이브로 편곡이 됐고 결국 이 분위기에 맞는 밝은 노래가 탄생했다.
- 영화엔 수많은 해외 페스티벌과 투어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더 로즈가 등장한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음악으로 소통하던 시기를 지금 돌아본다면.
이태겸 평소 우리 노래를 찾아 들을 일이 잘 없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며 옛 기억을 많이 떠올렸다. ‘그래 이 곡을 가지고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놀았지’와 같은 추억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노스탤지어를 부른다. 브라질 롤라팔루자에서 공연하던 날이 떠오른다. 해질녘에 라이브를 시작했다. 노을이 물드는 하늘 아래 사람들이 조금씩 우리 무대로 모였다. 그 공기를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데 그야말로 영화처럼 다가왔다.
김우성 한창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30명도 채 안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한 적이 있어 별다른 기대가 없었는데, 타이밍이 좋았는지 롤라팔루자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우리 무대를 찾았다. 수많은 인파가 연주에 맞춰 손을 흔드는 광경이 태겸의 말대로 영화 같았다.
박도준 그날 우리를 처음 안 관객들까지 연주에 공명 중이라는 걸 무대 위에서 절실히 느꼈다.
- 아무래도 한국 밴드 최초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선 2024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이 페스티벌에서 전혀 다른 세트리스트로 두 차례 무대를 장식했다.
이하준 영화로도 남을 무대라 멋진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더 로즈가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격조를 전부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무대에선 우리가 좀더 진솔해지면 관객도 우리 음악을 편하게 느낄 수 있겠다 싶어 컨셉을 구분해봤다.
김우성 우리가 가진 화려한 모습은 첫날 모두 소진했다. (웃음) 그래서 마지막 무대에서는 우리부터 편해지기로 했다. 평소에 입는 옷, 쓰는 모자를 갖추고 더 로즈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본다.
이태겸 ‘이게 더 로즈입니다’와 ‘이게 더 로즈였어요’의 차이지.
박도준 원래 잘하려고 힘줄수록 아쉬운 결과를 낳지 않나. 코첼라 첫 무대 때 무대 아래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자”라고 의기투합했는데, 첫곡에 그만 모든 에너지를 다 쓴 거다. (웃음) 나비는커녕 지렁이도 되지 못했다. 무대 주위를 둘러보니 멤버들도 힘들어하기에 서로 통했다며 웃었다.
- 영화는 더 로즈의 화양연화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겪은 어두운 시간까지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다.
이성민 그간 다큐멘터리의 주요 취재원을 ‘Subject’(대상)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이들을 객체가 아닌 작품 완성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Participant’(참가자)라고 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할리우드 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일파만파 대두 중이다. 용어를 바꾸는 순간 연출자 역시 참가자의 입장을 고려한 촬영과 편집이 수월해진다. 멤버들의 동의하에 영화에 더 로즈의 명과 암을 포함했다. 우리가 자극만 좇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멤버들의 고백이 영화의 심장이 됐고, 이로 인해 보통의 뮤지션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가 탄생했다고 믿는다.
김우성 어렵지 않았다. 처음 사는 인생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숨길 이유가 없고, 숨겨지지도 않으며,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개봉할 테고, 더 로즈의 리스너 또한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 그럴수록 솔직해야 한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하되 타인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다는 심경을 솔직히 드러내고 싶었다.
이태겸 우리 노래 중에 <Trauma>라는 곡이 있다. 대부분 자기가 지닌 상처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힘듦을 타인과 나누는 순간 슬픔의 무게를 함께 진다는 통념이 있어 더 아픔을 숨겼다. 하지만 다들 알지 않나. 고통은 전이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힘듦에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괴로움을 고백할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지면 세상이 1%라도 더 나아질 것이다.
- 멤버 전원이 현재 짧은 방학을 가지며 다음 스텝을 도모 중이라고 들었다. 앞으로 더 로즈의 활동에 대해 귀띔해준다면.
김우성 늘 보편적인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조금씩 작업 중인 신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넷의 개인적인 노래로 채워질 듯하다.
이하준 그렇지. 영화까지 나온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볼 최적의 시기니까.
김우성 더 로즈의 음악을 정의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치유’다. 모두에게 치유의 순간이 필요하다.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만들어 리스너들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 음악을 계속 연주하려고 한다.
박도준 치유가 필요한 네 사람이 밴드를 결성했고, 음악 안에서 치유를 받았다. 치유받고 치유하며 지금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나와 타인의 상처를 음악으로 보듬으며 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