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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타이밍’을 정확히 인지한 할리우드 블랙코미디, <더 로즈: 완벽한 이혼>

아이비 로즈(올리비아 콜먼)와 테오 로즈(베네딕트 컴버배치). 금실 좋은 이 영국인 부부는 미국에 정착한 지 10년째다. 테오는 미국에서도 스타 건축가로 이름을 떨치는 반면, 아이비는 파인다이닝 주방을 수놓던 영국에서와 달리 자신의 요리 실력을 집 부엌에서만 사용한다. 테오는 그런 아이비를 위해 마을의 빈 건물을 매입하고, 아이비는 게 요리 전문점을 열며 소소한 사업을 시작한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 전례 없는 태풍이 몰아친다. 이윽고 모든 관계가 일시에 뒤집힌다. 테오가 하루아침에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잃은 반면 아이비는 눈떠보니 스타 셰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로즈 부부의 가계 부양은 아이비가, 살림은 테오가 도맡는다. 관계의 변화는 수면 아래 도사리던 부부 사이의 갈등을 조금씩 증폭하기 시작한다.

<더 로즈: 완벽한 이혼>의 장르는 코미디다. 또한 이 영화는 80년대 할리우드 흥행작인 <장미의 전쟁>을 리메이크했다. 따라서 이 작품으로부터 혼인 제도의 맹점을 낱낱이 해부하는 사회학적 시선이나 커리어 불균형을 극복하는 새로운 담론 제시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영화가 보다 집중하는 요소는 2020년대의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가치다. 남자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가부장적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지만 자기 손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여자는 경력 단절을 극복한 후 승승장구하지만 자신이 육아에 무관심해 관습적인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동시대의 중산층 가정이 품을 법한 고민을 기저에 둔 영화는 할리우드 가족코미디의 장르 규칙 안에서 안전하게 굴러가며 제 몫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