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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따뜻한 척하는 세상, 어차피 해피엔딩은 없어, <수연의 선율>

할머니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열세살 수연(김보민)은 보육시설로 보내질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수연은 선율(최이랑)을 입양한 부부의 브이로그를 유튜브에서 발견하고 그들의 가족이 되기 위해 접근한다. 다정하고 이상적인 가족이라 믿었던 수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율의 기이한 행동과 부부의 미묘한 긴장을 감지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이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수연의 선율>은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의 절박한 열망을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침묵이 말보다 정확하다는 걸 증명하듯 울타리 밖 아이들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는 대신 그들의 눈빛과 표정, 허물어진 골목과 적막한 집 안 풍경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려낸다. 가족은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파괴적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유기되는 책임은 가족 구성원은 물론이고 사회 공동체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Waterdrop’은 인상적인 장면과 겹쳐 긴 여운을 남긴다. 건물 옥상에 나란히 앉은 수연과 선율. 쏟아지는 빗방울과 함께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속에서 선율은 물방울 안에 꼭 붙어 있는 수연과 선율을 그린다. 그들을 감싼 물방울은 작고 약해서 쉽게 흩어질 것만 같고, 영화는 물방울 속에 든 우리를 깊이 들여다보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허약하고 위태로우면서도 동시에 절실한 존재인지를 묻는다.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절제된 화법으로 서늘하게 그린 이 영화는, 따뜻한 척하는 세상을 향해 가족의 무게와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