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친환경적일 수 있을까? 넘쳐나는 일회용 컵 쓰레기를 우려해 커피차 선물을 정중하게 거절한 배우 공효진이 주목받은 건 모두가 간과했던 영화제작 과정의 과잉 소비를 다시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동시대적 환경문제를 반영한 스토리만큼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친환경영화 제작’을 주제로 에코포커스를 진행한다. GS리테일 에코크리에이터와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함께 이어가는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촬영감독 겸 감독이자 독일 미디어-모션픽처스 그린컨설턴트 연합(BVGCD)에서 활동 중인 볼커 랭호프가 제작 방식부터 환경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 구성까지 그린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한다. 이어 영화산업 내 환경 불감증에 대응하기 위해 그린슛을 설립하고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 등 영화의 지속 가능 제작을 담당한 작가 겸 감독 폴 에반스가 친환경 제작 인증, 탄소 배출 계산 및 상쇄, 지속가능성 코디네이터의 역할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 두분 모두 에코포커스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가질 예정이다. 그간 사람들에게 에코 프렌들리한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영화 제작자에게 친환경적 제작과 스토리텔링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친환경적 제작과 스토리텔링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폴 에반스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첫 커리어를 광고로 시작했다. 그때 제작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낭비가 발생하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재활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제작 자산도 엄청나게 낭비됐다. 음식, 옷, 소품 등 모든 게 원래 형태 그대로 버려졌다. 이건 환경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향한 책임에서도 중요한 몫이라 생각했다. 2009년 두명의 동료를 데리고 그린슛을 시작한 것도 영국 영화산업을 바꾸고 프로덕션 전반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이게 촬영 과정에 필요한 구조라는 것을 동의받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영국 내 영화산업도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세계적인 제작사들이 따르고 있는 에코 프로세스와 그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리스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볼커 랭호프 영화제작은 삶에서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직업 중 하나다. 그러나 동시에 환경적으로 끔찍한 산업이다. 화석에너지와 원자력산업 이후 가장 파괴적인 산업이다. 할리우드 대작영화 제작 과정에서 세트와 음식 대부분이 그대로 버려진다. 또 탄소발자국 측면으로 보아도 우리는 너무 강력한 족적을 남긴다. 영화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하고 호텔에서 일회용성 시간을 보낸다. 이번 에코포커스 프로그램에서는 2년 전 내가 작은 규모로 영화를 작업하는 동안 기록한 탄소발자국 영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과가 정말 충격적이다. 우리 팀은 딱 자동차 두대로만 이동했는데도 탄소발자국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어떨 것인가. 영화 창작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더라도 지속 가능한 방식을 계속해 생각해야만 한다.
- 볼커 랭호프 감독님은 에코포커스에서 영화제작 과정에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환경 보호 및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한 그린 스토리텔링 체크리스트를 공유할 예정이라고.
볼커 랭호프 이 체크리스트는 MOIN영화기금조직과 함께 독일영화 제작자, 영화 과학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시나리오작가, 프로듀서, 방송사 및 주요 의사 결정권자까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의견을 모았다. 이 체크리스트는 세트 제작 줄이는 법, 효율적으로 발전기를 활용하는 법, 항공 이동 과정의 낭비를 줄이는 법부터 관객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은은하게 환경적 주제를 다루는 방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실제로 독일에는 기차로 5시간 이내에 이동 가능한 거리는 비행기로 이동해서는 안된다는 강도 높은 권고사항이 있다. 또 스토리 측면에서 환경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지목하기보다 배경이나 서사에 자연스레 녹이는 게 중요하다. 마치 귀여운 핑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북극곰을 위해 싸우는 영웅담을 보여주는 것처럼. (웃음)
- 그린슛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중적 체감이 크지 않은 2009년에 설립되었다. 그 이후로 실제 영국 영화산업에서 생겨난 변화는 무엇이 있나.
폴 에반스 정말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웃음) 환경문제에 관한 인식 자체가 높지 않아서 이런 제안에 저항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까지 드러나는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생산과 기술. 지난 4~5년 동안 영국 영화산업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꾸준히 감소했다.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방식과 기술을 계속해서 모색한 결과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산업 내 전반적인 인식이 변한 게 피부로 느껴진다. 두 번째는 교육이다. 우리는 그린 스튜어드(Green Steward)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촬영 현장에서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프로덕션의 눈과 목소리가 되어준다. 그가 기록한 보고서는 촬영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제작사에 전달되어 개선점은 물론이고 친환경적 프로덕션의 성과와 이점까지도 알 수 있게 돕는다. 궁극적으로 친환경 프로덕션이 얼마나 편리하고 예산 절약에 도움이 되는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린 스튜어드가 향후 영화산업의 고위직을 맡거나 저명한 감독이 될 미래를 생각하며 차세대 제작자를 교육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 마지막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찾을 방문객들이 이번 에코포커스에서 기대할 만한 점을 말해달라.
폴 에반스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이다. 지난 16년 동안 그린슛을 운영하면서 약 30개국에서 프로덕션을 지원해온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한번도 프로덕션을 진행한 적이 없었던 만큼 우리의 경험을 나누는 게 너무 설레고 떨린다.
볼커 랭호프 나는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2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에도 영화제의 게스트로 방문했는데 이런 자리가 다시 마련돼 정말 기쁘다. 그동안 독일 영화산업 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들을 함께 나누고, 지속 가능한 영화제작에 대해 진솔하게 공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