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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절대 휴대폰을 보지 못하게, <야당> 황병국 감독

- 14년 만에 신작 <야당>과 함께 돌아왔다.

준비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연이어 세편이 엎어지니 10년이 금방 가더라. 연출에 대한 바람은 늘 품고 있었다. 오랜만에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영화에 대한 열정과 연출에 대한 소중함이 더 깊게 와닿는다.

-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가 마약사범에 관한 기사를 보내준 게 시작점이 됐다고. 이후 상당히 살을 많이 붙인 듯한데 어떤 자료조사 과정을 거쳤나.

2021년 1월21일 즈음 김원국 대표님으로부터 기사를 건네받았다. 당시 마약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마약 수사대 형사들을 만나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방문했다. 검찰에 관한 수사도 필요해 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그때 얻은 정보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상황이 실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한다.

-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고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나 방향성은 취재 단계에서 정리된 것일까.

그렇다. 마약 수사 기관의 형사들을 만난 뒤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2021년 시나리오를 쓸 당시만 하더라도 마약사범 검거율이 1만6천명이었는데 지난해엔 2만8천명으로 늘었다. 걸리지 않은 이들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마약에 한번 손대면 벗어나기 쉽지 않아서 정부 차원에서도 단순히 마약 거래나 마약 사범을 잡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투약자들의 치료를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점들을 두루 짚고 싶었다.

- 강수(강하늘)는 마약사범과 검사, 경찰의 중간다리 역할인 ‘야당’으로 활동한다. 합법과 범법의 경계에 선 캐릭터인데 묘사할 때 고민한 지점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러 사건 해결에 일조한 인물이고, 결과적으로 내 의도에 가깝게 표현됐다. 캐릭터 개인으로서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청년이고, 특정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초반에는 20대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늘 배우에게 이야기했다.

- 검사인 관희(유해진)와 마약 수사대 형사 상재(박해준)는 같은 마약사범을 쫓느라 종종 부딪힌다.

상재의 경우 롤모델이 된 형사가 두분 있다. 그중 한분이 뇌물을 받았 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이것을 상재에게 반영했다. 관희는 업무에 찌든 직장인이자 동네의 친한 형 같은 인물이다. 다만 초반부터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다. 그래서 인물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초반에는 빛에 컬러를 넣고 후 반부로 갈수록 컬러는 빼는 식으로 컨셉을 잡았다.

- 인물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공들여 보여주기보다 속도감 있게 사건을 해 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

요즘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도 휴대폰을 보더라. <야당>을 관람할 때는 절대 휴대폰을 보지 않게 하려고 배우들에게 대사를 빠르게 말해달라고 했다. 현장에 갈 때 촬영감독, 조명감독과 같이 움직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리듬감이 좋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촬영장에 도착해선 그 리듬으로 촬영했다. 일반적으로 한신이 펼쳐질 때 시작하고 끝을 맺는 기본 형식이 있지 않나. 해당 부분에서 잠시라도 늘어지면 관객들이 어김없이 핸드폰을 보더라. 그래서 편집 단계에서 전부 들어냈다.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극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장면들도 빠른 속도감으로 촬영했다.

작품을 준비할 때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실제 현장에서 있을 법한 현장감을 포착하고자 했고, 이를 반영해 이모개 촬영감독과 콘티를 완성했다.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것도 실제 사건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다. 강수가 야당으로서 활약하는 걸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2008년 강남에서 벌어진 체포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고 극중 마약 수사대 형사와 검사가 동일한 범인을 뒤쫓은 사건도 취재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다. 실제 사건이 바탕이 된 만큼 액션도 너무 합이 잘 맞는 게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싸움처럼 구성해 달라고 무술감독님에게 부탁드렸고 잘 표현해주셨다.

- 마약 파티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마약중독자의 실태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 더불어 수위에 대한 고민도 뒤따랐을 텐데.

형사들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현실이 더하다. 영화에서 보여준 건 1/10도 채 되지 않는다. 마약을 하면 제일 먼저 도덕성이 무너진다. 처음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괴로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또 댄다. 마약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마약범죄의 피해나 이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정공법을 택했다. 마약에 취한 사람들을 그리기 위해 독일의 현대무용 연출가인 채을 선생님을 섭외했다. 무술감독이 액션신을 연출하듯 채을 선생님이 무브먼트 디렉터로서 나의 의도를 반영해 배우들과 함께 마약 파티 신을 만들고 여러 차례 리허설도 가졌다.

- 출연배우들에게 형사 등 실제 인물을 만나게 해줬다고. 감독 본인이 오랜 경력의 배우이기도 한 만큼 본인의 연기 철학이 반영된 제안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감독과 배우는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연기를 펼치는 이들이지만, 그 가상 속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면 표현에 더 힘이 생긴다.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납득 가능해지니까. 그래서 연기나 연출을 할 때 개인적으로 자료조사와 실존 인물 취재를 상세히 하는 편이다. 배우들에게도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줬다. 특정 장면의 연기를 위해 배우들은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나는 배우로서 그걸 고민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그래서 ‘메가박스에서 만나자’는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9호선 봉은사역 7번 출구로 나와라’라고 배우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럼 배우들은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제안한 방법 안에서 집중력 있게 신을 준비해 올 수 있다. 배우들의 에너지 누수를 최대한 줄여주고 싶었다.

- 마약 수사만큼이나 검찰의 비리도 비중 있게 다뤘다. 검사 부속실 내부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구성했는데.

마약 관련 취재보다도 검찰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검사 부속실은 실제보다 영화에서 더 크게 만들었고, 자세히 보면 내부에 ‘소훼난파’(巢毁卵破)라는 액자를 걸었다. ‘둥지가 부서지면 그 안의 알도 깨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둥지는 법 테두리를, 알은 국민들을 의미한다. 법을 잘 수호하면 국민들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고위급 검사들 중 ‘소훼난파’ 액자를 걸어놓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영화를 다 보면 이 액자를 걸어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