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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 씨의 수행' 치엔시앙 감독 인터뷰

인간 내면의 억눌린 갈망을 찍고 싶다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정이다. 남편은 기업 임원이고, 아들은 결혼을 앞뒀으며, 딸은 성실하고, 반려견은 항상 가족의 곁을 지킨다. 하지만 옌 부인(천샹치)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기 수련장을 찾고, 여러 약을 복용 중이다. <옌 씨의 수행>은 중년 여성의 억눌린 욕망과 심리를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다. <남색대문>(2002), <20 30 40>(2004), <요리대전>(2013) 등 수많은 대만영화의 촬영을 맡은 촬영 감독 출신의 치엔시앙 감독은 2014년 <회광 소나타>로 감독 데뷔했고,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회광 소나타>와 <옌 씨의 수행> 모두 지난 19회와 올해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되었을 만큼 아시아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치엔시앙은 연출과 촬영을 동시에 하는 드문 사례의 감독이다.

- <옌 씨의 수행>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작품인가.

= 대만 단편소설 <요정>이 원작이다. 짧고 훌륭한 소설인데 읽고 나서 소설 속 주인공 부부가 어떻게 살아갈지가 궁금해 시나리오로 각색 하게 됐다.

- <요정>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 아내의 복수.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삶인데 속으로는 욕망이 억눌려 있는 여성이 결국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단편소설에서 이부분을 가장 표현하고 싶었다.

- 영화의 주인공 옌 부인은 중산층 가정의 여성이다. 남편은 회사 임원이고, 아들은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딸은 잘 자란 데다가 반려견이 그의 곁을 지킨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가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고 기 수련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 개인적인 일화를 얘기하면 이웃집 가족을 거의 매일 접한다. 남편은 회사원이고, 아내도 잘 지내고, 아이 둘은 인사성이 바른 청소년이다. 겉으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가족이다. 대만은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이웃집 남자가 핸드폰으로 야한 동영상을 보더라. 이어폰이 휴대폰에 완전히 연결되지 않아서 소리가 다 들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속으로는 각자의 동물성이 내재해 있구나 싶었다.

- 이 영화는 단편소설 <요정>과 이 일화에서 출발한 셈이다.

= 그렇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저마다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대만뿐만 아니라 아시아 사회에서 옌 부인 같은 욕망이 억눌린 중년 여성이 많은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리서치를 위해 기 수련 도장을 많이 찾았다. 기 수련 도장은 선생님을 제외하면 수강생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 선생님이 맨 앞에서 수련생들에게 큰소리를 외치라고 하고, 수강생 들이 다 함께 큰소리를 외치며 기 수련을 받는다. 소리를 외친 뒤 펑펑 울더라. 그 광경이 내겐 충격이었다. 이건 대만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인 동아시아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다 비슷할 거라고 본다.

- 여성들이 각자의 삶에서 억눌린 감정을 쏟아낸 건가 보다.

=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도 그만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물론 여성과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겠지만.

- 전작 <회광 소나타>에서도 중년 여성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가.

= 중년 남성의 상태를 그려낸 영화는 많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연적인 상태일 때 사람의 심리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특히 여성이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욕망과 갈망을 억누르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 그건 내가 여성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관객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다.

- 옌 부인을 연기한 배우 천샹치는 <회광 소나타>에 출연했다. 그의 어떤 점이 옌 부인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나.

= 천샹치청몽홍 감독 영화에선 킬러를, 차이밍량 감독 영화에선 그것과 완전히 다른 역할을 연기했었다. 또 어떤 작품에선 기생 역을 선보인 적도 있다. 이처럼 그는 여러 앵글에서 각기 다른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 같은 배우다. 이것이 그를 선택한 이유다.

- 촬영 전 그에게 특별히 주문한 게 있나.

=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대본 리딩을 했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현장에선 연출자이자 촬영감독으로서 연기하는 천샹치를 자유롭게 찍었다.

- 이번 영화의 촬영도 직접 했나.

= 그렇다. 전작 <회광 소나타>에서도 연출과 촬영을 함께했다. 이번 영화 현장에서 테이크를 많이 가진 않았지만 배우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컷을 찾았다. 컷의 상당수가 핸드헬드라 정확한 감정을 담기 위해 여러 앵글에서 배우를 자유롭게 찍으려고 했다. 촬영감독으로서 빛은 심플하고 사실적으로 설계했다.

- 촬영까지 하는 건 피곤하지 않나. (웃음)

= 다시는 이렇게 안 하려고. 너무 힘들다. (웃음)

- 남편에 대한 옌 부인의 복수가 굉장히 잔인한데, 복수가 그녀의 응어리를다 풀어주지는 않는 듯하다.

= 단편소설에 있던 설정이다. 옌 부인의 복수는 단편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인데 복수를 하더라도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 지를 던지고 싶었다. ‘Increasing Echo’는 복수의 뒷맛을 비유해 지은 영화의 영문 제목이다.

- 당신은 <요리대전>의 진옥훈, <20 30 40>의 장애가, <남색대문>의 이치엔 등 대만의 유명 감독과 작업한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회광 소나타>가첫 장편 연출작인데 촬영하다가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 2012년을 기점으로 영화가 디지털화되었다. 필름 시절에는 무엇을 찍었는지는 촬영감독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도 쉽게 촬영할 수 있고, 촬영감독으로 활동하는 신비감이 사라진 것 같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서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건 필름 시절보다 훨씬 쉬워졌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연출에 도전했다.

- 촬영감독으로서의 경험이 연출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스스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통해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다. 촬영감독으로 일했던 경험은 이야 기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전에는 촬영하다 보면 “컷” 하기가 아쉬워서 계속 찍었다. (웃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촬영할 때 일찍 마무리하지만 말이다. 일찍 퇴근해야지.

- 차기작은 무엇인가.

= 평생 한 가지 주제만 얘기하고 싶다.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 인간 내면에 있는 동물성 등. 다음 영화는 법률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지금은 휴가 중이라 자세히 얘기해줄 수 없다. (웃음)